남편과 둘째가 이마트에 가서 조각 피자를 한 조각 사 왔다. 식은 피자 한 조각을 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니 뭔가 감질나고 맛이 없었다. 큰 아이는 장염이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았는지 아직 속이 안 좋아서 한 입만 먹고 포크를 내려놓으며 지금 이건 못 먹겠다고 다음에 엄마랑 만들어 먹자고 한다. 그래, 그러자. 일단 얼른 나으렴. 그놈의 노로바이러스, 엄마 아빠는 다 회복하고 요요가 올 지경인데, 아이는 병 끝이 오래간다.
아이들은 피자에 페퍼로니나 아삭한 피망, 시즈닝에 매운 가루가 뭐라도 들어가면 매워서 못 먹는다. 그래서 시켜 먹는 피자에서는 선택지가 그렇게 다양하지가 않다. 멋모르고 시켰다가 매워서 못 먹은 경우가 많아서 토핑이 많이 없는 치즈 피자나 포테이토 피자 정도만 시켜 먹는 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는 피자는 자극적이지 않아서 잘 먹는데 그런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외식할 일이 자주 없다. 그래서 피자를 가끔 만든다. 또띠아에 간단히 만들기도 하고 시간이 많은 방학이나, 아니면 애들이 원할 때 반죽부터 쳐서 발효해서 토핑을 있는 대로 올려 오븐에 구워 먹는다. 겨울 방학, 시간이 많고 애들이 피자 만들기를 하고 싶어 하는 바로 요 때. 피자를 한 번 만들 때가 되었다.
밀가루에 이스트, 따뜻한 물, 소금, 올리브오일을 준비한다. 계량은 대충 한다. 어차피 애들이 물을 넣다 쏟기도 하고 올리브 오일을 콸콸 쏟아붓기도 하는데 집에서 먹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이스트가 반죽을 크게 만들어 줄 거라는 것, 그걸 발효라고 하다는 것, 따뜻해야 발효가 금방 되니 따뜻한 물을 이용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얼른 밀가루 반죽 장난감을 받아 들어 내리치고 주무르며 갖고 놀고 싶을 뿐.
치대는 반죽은 힘이 꽤 들어간다. 자주 할 일은 없지만 어쩌다 밀가루 손반죽을 하고 나면 손목이 시큰거리기 일쑤였는데, 아들놈들이 이럴 땐 꽤 도움이 된다. 반죽을 넉넉히 하여 두 놈에게 나누어 주고 신문지를 깔고 수건도 깔아 쾅쾅 내리쳐도 덜 시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처음에 밀가루와 물을 주걱으로 살살 섞는 걸 해 보겠다더니 가루를 폴폴 날려 먹는다. 올리브 오일을 한 바퀴만 넣으랬는데 콸콸 쏟아붓고는 미끈거리는 손을 밀가루에 닦으며 즐거워한다. 쾅쾅 때리고 주무르고 내리치라 하니 신나게 반죽을 하는 아이들. 나는 손목이 아파지는 과정인데 아들들의 손목은 아무 지장이 없나 보다. 반죽은 정말로 엄마를 도와주었다. 밀가루는 조금 날렸지만, 너무 신나 입을 헤 벌린 채로 반죽에 열중하다가 그만 침을 떨어뜨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집에서 먹을 거니까 괜찮다. 그렇게 쫄깃쫄깃하게 만든 반죽을 정리하여 전기장판에 묻어두었다. 지금 크기에서 두 배만큼 커질 때 까지 기다려보자. 점심 먹고 반죽을 하였으니 저녁엔 먹을 수 있을 거야.
토마토 페이스트에 다진 소고기와 볶은 양파를 잔뜩 넣어 만들어 놓은 소스를 꺼냈다. 일반적인 피자소스와는 다른 든든한 비주얼, 소스를 얇게 한 번 바르는 게 아니고 두껍게 이불처럼 깔았다. 아이들의 음식을 만들며 아이들이 먹을 건 고칼로리, 고양양식으로 만드는 재주가 생겼다. 소고기 소스를 깔고, 테두리에는 스트링 치즈를 넣어 치즈 크러스트로 만들었다. 살짝 말려 얼려 둔 표고버섯, 덩어리 치즈와 피자치즈를 모두 총 동원하여 치즈 가득 올리고 한 번 구워 낸 후, 살라미를 올려서 조금 더 구웠다. 살라미는 너무 짜고 기름져서 안 올리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한다. 마침 지난번에 피자를 해 먹고 남은 것이 조금 있어서 냉장고 재료를 다 털어버렸다.
피자가 아주 두툼하다. 소고기도 듬뿍, 채소도 듬뿍, 치즈도 듬뿍, 엄마표 피자는 듬뿍 피자이다. 모양은 고르지 않아도 재료만큼은 넘치게 넣는다. 갓 구운 피자의 크러스트 부분도 아주 맛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치댔는지 쫄깃쫄깃하고 고온에서 구워 내어 바삭하며 치즈가 들어있으니 고소하고 짭짤하기까지. 피자는 원래 맛있는 음식인데, 맛있는 재료들이 듬뿍 들어간 데다, 갓 구운 맛, 그리고 제 손으로 만든 맛까지 있어 아이들은 아주 맛있게 먹는다. 또 남편에게 카톡으로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 하라고,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물어보라고.
아이들이 요리를 도와주면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져 사실 도와주는 것이 아닌 게 될 때가 대부분인데 오늘의 피자 반죽은 정말 아이들이 도와주었다. 아들의 쓸모를 피자 반죽에서 찾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