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엄마표 크리스마스 과자 집 만들기 행사를 마쳤다.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 때부터 12월이면 해 온 것이 벌써 3년째이다. 헨젤과 그레텔을 읽고, 유튜브로도 한 번 보고, 그리고 과자집을 만든다. 먹기만 하던 둘째는 다섯 살이 되며 손끝이 매우 여물어져서 이젠 꾸미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먹으라고 내밀어도 이거 먼저 꾸며야 한다며 거절을 한다. 우리 둘째의 변화가 기특하기도, 섭섭하기도 하다. 내 아기, 어디 갔지?
얼마 전 헨젤과 그레텔을 읽을 때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는 여기 나오는 사람 중에서 아빠가 제일 나쁜 것 같아, 어떻게 새엄마가 아이들을 버리자고 한다고 아빠가 같이 버릴 수가 있어? 아빠는 정말 나빠. 그랬더니 두 아이가 약속한 듯 입을 모아 말한다. 아빠는 나쁘지 않다고, 왜? 하고 물으니 돌아오는 말. 아이들을 사랑하잖아, 안아줬잖아. 엄마의 눈에는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며 계모의 학대 및 유기를 방임하고 동조한 악질 중에 악질인데, 아이들 눈에는 그래도 사랑한다고 안아주는 아빠니까 나쁜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은 이토록 순진하고 순수하고 착하고 맑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아이들이 몸소 알려주었다. 아이들 눈에는 마녀와 새엄마만 나쁘다. 혹시 모르겠다. 마녀가 아이들을 잡아먹기 전에 안아 주었으면, 새엄마가 빈말로라도 사랑하니까 좀 버려야겠다고 했으면 이 동화엔 나쁜 사람이 없다고 했을지도.
저 손!
과자집 짓기는 시간이 꽤 소요된다. 일단 쿠키를 구워야 하고, 슈가파우더로 아이싱을 만들어 튼튼하게 집을 지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꽤 어렵고 번거롭다. 일단 자주 하는 일이 아니니 할 때마다 반죽의 양이며 아이싱의 점도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디다가 좀 적어놓으면 이런 일이 없겠는데 매번 적는 것을 까먹으니 아마 내년에도 어렵다고 헤맬 것 같다. 집을 짓다가 깨질 가능성에도 대비하여 반죽을 조금 넉넉히 한다고 했는데도 집 두 채에 겨우 맞추었다. 아이싱으로 집을 짓는 것도 어렵다. 오랫동안 붙들고 마르고 굳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손이 움직였는지 집이 기울고 모퉁이가 맞지 않게 지어졌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은 그런 것은 보지 않으니.
휑뎅그렁한 오두막 두 채와 장식할 젤리, 과자, 마시멜로, 초코펜 등이 주어졌다. 몇 번 해봤다고 알아서 척척이다. 웨하스로 울타리를 짓고, 개구멍도 뚫어주고, 미끄럼틀이라며 기둥처럼 세워 두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콘을 거꾸로 세워 나무를 꾸며주니 더 그럴듯하다. 허여 멀 건한 과자집 원형이 화려하게 채색되는 과정이 나도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재밌을까, 보기만 해도 혈당이 오르는 광경이지만 일 년에 한 번이니 기쁘게 허락한다. 어쩌면 나의 일상도, 나의 인생도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화려하게, 달게, 맛있게, 재밌게 꾸며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리치고, 웃고, 울고, 기쁘고, 힘들고, 그렇게 나의 썰렁한 과자집 원형 같은 일상을 아이들이 꾸민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과자집 꾸미기를 하고 나면 집에서 그런 것도 하고 애들 참 좋겠다는 칭찬을 곧 잘 듣는다. 지금 기뻐 웃는 사람은 아이들이지만, 이 사진들을 두고두고 꺼내 볼 사람은 바로 나라는 생각에, 나도 애들에게 고마워할 일이다.
과자집 만들기 행사가 3년 차를 맞으며 조금 달라진 것은 저지레를 조금 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조금은 익숙해지고 덜 어지르는 요령이 늘었고 아이들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일취월장하였으니 뒷정리가 대환장에서 그냥 환장으로 강등되었다. 아마 하얀 설탕가루, 과자 부스러기, 스프링클 가루 같은 것들이 일주일 넘게 계속 여기저기에서 출몰할 것이다. 그래도 벌레 없는 겨울이니 이 정도쯤이야.
즐거웠다, 오늘 하루. 완성된 과자집을 합체로봇 액자 앞에 놓아 두니 그럴듯하다. 올 해의 작품이다. 훌륭하다. 크느라, 키우느라 모두 고생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 집도 이렇게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판 과자집 키트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진저브레드 쿠키하우스라서 과자의 생강이 애들 입맛이 아닐 수도 있다 하여 귀찮음을 누르고 구웠다. 내년엔 집 모양 빵틀에다 머핀으로 구워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