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장에서 배운 육아 제 n장, 거리두기
아이들과 롤러스케이트장에 다녀왔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갔을 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데려갔다. 8세, 6세 된 아이들이 잘 탈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롤러장에 전화를 걸어 운동화 170 신는 둘째의 롤러 사이즈가 있음을 확인하고 갔을 정도이니, 몇 번 휘청거리다 간식이나 사 먹고 와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간 것인데 아이들이 의외로 너무 금방 배우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큰 아이가 먼저 가자고 졸라서 가게 되었다. 스케이트를 타고 매끄럽게 움직이는 그 상쾌함이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롤러스케이트는 내가 8살 때 즐겨하던 운동이자 취미생활이었다. 그때는 모든 곳이 롤러장이라 주차장이고 어디고 다 롤러를 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애가 주차장에서 롤러를 타고 다닌다니 위험천만이지만 그때는 그게 너무 당연했다. 나 말고도 많았는걸, 그리고 위험하다고 말리는 어른도 없고 그냥 일반적인 일이었기에 그냥 사고 안 나고 잘 살아남은 걸 다행이라 여기고 감사히 생각하는 중이다. 여하튼, 롤러스케이트를 한참 잘 타고 다녔다. 고등학생이던 언니들의 저녁 도시락 배달을 롤러스케이트 타고 가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학교도 외부인 출입 가능한 곳이었나 보다. 동생이 큰언니, 작은언니 저녁 도시락을 들고 3학년 몇 반, 1학년 몇 반 앞에서 기다리다가 종 치면 전달하고 나왔다. 내리막길을 쌩쌩 내려오다가 뒹굴어서 온 무릎이 완전히 까진 적도 있었다. 무릎 보호대? 그런 게 있었나?
그렇게 사연 많고 추억 많은 롤러를 아들 둘과 타러 가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처음엔 많이 휘청 거렸다. 휘청 거리다 보니 본능적으로 엄마에게 손을 내민다. 나도 본능적으로 아이의 손을 잡다가, 앗, 이러다 같이 넘어지면 나의 회복 탄력성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큰 일이지 싶어 손을 놓아 버렸다. 아들아, 미안하지만 너 혼자 넘어지렴.
보조기구를 가지고 와서 뒤에서 같이 잡고 끌어주긴 했다. 아들은 저 혼자 쌩쌩 타고 싶은지 자꾸 보조기구를 놓아 버린다. 몇 번 발을 굴리다 또 휘청, 엄마를 부르며 손을 뻗지만 엄마는 휙 지나가며 일어나, 허리 숙여서 중심 낮춰, 만 말 하니 참 야속했을 것이다. 그래도 같이 넘어져 내가 다치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으로 미안함을 달랬다. 아이는 허리를 숙이고 살살 움직인다. 허리를 숙이니 넘어지려 하면 금방 중심을 잡을 수 있고, 아차하고 넘어져도 충격이 적다. 그렇게 움직임에 익숙해진 후 점점 허리를 펴고 속도를 내며 롤러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따라가며 우리 애 근처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 가서 막아주고, 아이가 넘어지면 근처에 머물며 2차 사고를 방지하는 데에 힘썼다. 나도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신랑은 내가 가장 신나게 탔다고 한다. 아니야, 난 나름 애 보고 있었어.
나는 매정하게 아이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엄마 손을 잡지도 말라고 하고, 엄마 다리 붙잡고 늘어지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손 잡고 같이 타며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넘어지면 같이 다치는데 더 위험하다고 하니 아이들은 말귀를 알아먹는다. 혼자 낑낑 거리며 휘청 거리고 때로는 넘어지고 뒹굴더니 어느새 제법 타는 아이들, 가끔씩은 꽈당 넘어져서 내 마음이 덜컹할 때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금세 일어나고, 그다음 날 몸이 쑤셔하지도 않는다. 역시, 유연한 몸, 부럽다. 슬렁슬렁 타며 넘어지지도 않은 나는 왜 이리 팔다리가 쑤실까.
때로는 도와주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아이들을 가르쳐 주는 게 나에게 무리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은 의외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 그런 것이 아이들의 배움에 성장에 그리고 나의 삶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롤러장에서 한 번 더 깨달았다.
세상에, 애들한테 이 손 놓고 혼자 넘어지라고 하는 엄마라니, 매정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다 내가 손 잡아 주다가는 나는 근육통에 타박상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배우는 속도가 늦어질 것이다. 그래, 매정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일환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