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도 잘 모른단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 많다. 키울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하긴, 나도 살면 살 수록, 육아를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고, 모르는 것, 이해 안 가는 것이 더 많아지는데 자라나는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책을 읽을 때 난감한 경우가 많이 있다. 아이가 모르는 것, 내가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도통 모르겠을 때 말이다. 메주, 옷감, 떫은 감, 구들장, 아랫목과 같은 단어들, 알려주기가 참 애매하다. 다른 건 몰라도 떫은맛에 대해 알려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떫은맛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감도 말랑말랑 달콤한 연시만 먹어보았지 떫은맛 나는 감은 나도 먹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냥 맛이 없는 것 하고는 또 다른데, 혓바닥이 마비되는 듯한 그 기분 나쁜 맛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먹여 볼 수 도 없고 말이다.
큰 아이와 동시를 읽고 독후 문제를 풀었다. 양말에 구멍이 조금 나서 발가락들이 서로 그 구멍에 얼굴을 내밀어보겠다고 <저리 좀 가~비켜, 나 좀 보게~> 하는 "활발하고 명랑한 분위기"의 글인데 읽기에 따라, 읽는 이의 감정이나 어조에 따라, 또 받아들이는 아이마다 그 동시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일 것이라 그 문제의 정답이 활발하고 명랑한 분위기라고 단정 짓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답은 이것이지만 이건 느끼기 나름이라고 말해주며 <저리 좀 가~비켜, 나 좀 보게~>를 여러 가지 어조로 읽어 주었다. 세상 귀찮은 어투로도 읽어보고, 씩씩하게도 읽어 보고, 화가 난 어투로도 읽어보았다. 나 잘하는 것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해 보았다. 예전에 <이 글의 분위기로 알맞은 것은?>이라는 문제를 유독 싫어하고 어려워하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정답은 유머러스였는데, 약간 호러틱한 코미디여서 그 아이는 공포스럽다는 것에 정답 표시를 하여 문제를 틀렸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데 나는 이게 무섭다며, 왜 정답을 하나로 두냐고 투덜투덜거리던 아이에게 그냥 출제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여 옛다 정답~ 하고 던져 주라고, 그 투덜거림은 나중에 독서를 하며, 글을 쓰며, 아님 교재를 직접 만들며 푸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아이를 달랬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전쟁에 대해 묻는다. 전쟁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래서 총 쏘고 대포 쏘고, 사람이 죽고 다치고 그러는 거라고 했더니 그건 자기도 안다며 어떻게 해야 전쟁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 전쟁이 왜 나는 거냐고? 누가 전쟁을 일으키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걸 어떻게 말해주나, 싶었다.
각 나라에는 대통령이 있거나 총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군대를 움직일 수 있어. 군대는 그 대통령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해. 대통령이 공격하라고 명령해서 전쟁이 나는 거야. 이유는 여러 가지야, 땅을 뺏으려고 할 수 도 있고 그 나라에 있는 중요한 자원, 금이나 기름 같은 걸 뺏으려고 할 수 도 있고, 그래도 전쟁은 무조건 나쁜 건데 전쟁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지?라고 마무리 하였다.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는 간단히 말해주었다. 아이에게는 너무 충격적일 것 같아서.
욕이랑 거짓말 중에 뭐가 더 나쁘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엄마는 욕이 더 나쁜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거짓말은 거짓말하는 마음을 때로는 이해해 줄 수 도 있지만, 욕은 욕하는 마음을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해 줄 수 없다고, 그래서 엄마는 욕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사람마다 아마 대답이 다를 거라고 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물으니 엄마처럼 욕이 더 나쁜 것 같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는 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는 모르는 것이 참 많다. 그래서 질문도 많다. 간단명료한 산수 같은 질문도 많지만, 떫은 감처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질문도 있고, 전쟁이나 욕, 거짓말처럼 살아가는 가치관에 영향을 줄 질문도 많다. 질문에 답하며 엄마는 곰곰 생각한다. 어떻게 얘기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까, 가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맞을까 하고 말이다.
아이가 말을 떼며 시작된 <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질 않는다. 질문은 수준을 높여가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아이의 삶에 다소간의 영향을 줄 테니, 잘 대답해 줘야 할 것 같은 부담도 높아졌다. 그만큼 아이와 나의 관계가 밀접하고 절대적이라는 반증이라 이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좋은 건 아이와 나의 관계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는 점이고 나쁜 건 나도 사실 귀찮고 어렵다는 점.
아이에게 엄마도 모르겠다고 할 때도 있다. 어려운 사고력 수학 문제 (1학년 문제인데도 경우의 수가 열몇 가지씩 나오고 그걸 하나하나 대입해서 풀어줘야 하니 정말 모르겠더라)라든지, 복잡한 종이접기, 컴퓨터나 온라인 게임에 관한 문제들은 엄마도 모른다 하면 알아서 하던지, 아니면 안 하던지 그렇게 넘어간다. 아이가 크면 체력 부담이 적어지고 정신 부담이 커진다는데 그 과도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체력적으로도 힘든데, 정신부담이 더해진 기분이라 조금 억울하지만,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물놀이장에 무지개가 피었다. 왜?라고 물어볼까 봐 문과 엄마는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예쁘다, 하고 배고프니 밥 먹으러 가자~ 로 마무리 되었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