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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an 05. 2023

요리를 돕는 아이들 1.

1. 치킨가스, 계란물이 뚝뚝뚝, 내 한숨은 푹푹

치킨가스나 돈가스는 거의 우리 집 상비 식량이다. 냉동식품이나 시장에서 튀긴 것을 사다가 냉동실에 얼려 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생고기를 사서 집에서 재어 소분하여 얼려 둔다. 한동안 치킨 너겟을 많이 사 먹었었는데 치킨 너겟도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뻣뻣해져 맛이 없어 어차피 기름에 튀기게 되고 이러나저러나 기름질을 하느니 직접 만든 돈가스를 튀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언젠가부터 치키너겟을 먹는 횟수가 줄고 생고기 가스류를 주로 먹는다. 치킨가스는 닭 안심을 사서 만들고 돈가스는 돼지 등심이나 안심 중에 아무거나 고르는데 나는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를 좋아하지만 집에서 만들고 튀겨 익히기는 어려워서 보통 두께의 고기를 고기망치로 한두 번 탕탕 내리쳐 만드는 편이다. 그래야 빨리 익고 애들 먹기가 편하다.



이번 겨울 방학을 맞아 치킨가스를 준비하였다. 애들이 방학이면 요리 활동을 자주 한다. 시간도 때우고, 한 끼도 때울 수 있어서 일석이조이다. 애들이 엄마 요리 할 때 옆에서 알짱거리는며 거든다고 이것저것 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생고기를 만질 때는 저리 가라 훠이훠이 했었는데 이젠 제법 자라 위생장갑도 잘 끼고 있고 정해진 반경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져 이번엔 같이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닭 안심 1킬로 준비.


고기망치를 준비해 탕탕 치는 것을 역시나 가장 좋아한다. 아랫집이 공실이긴 하지만 망치질 소리가 위아래로 울릴까 봐 도마 밑으로 수건을 두툼하게 깔았다. 신이 난 아들들이 한쪽면만 두들겨 패서 거의 으깨는 바람에 골고루 때려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유에 소금을 한 티 스푼씩 넣게 하고 휘휘 저어 고기를 퐁당퐁당 담갔다. 고기에 간이 배며 부드러워지는 시간, 엄마가 다음 준비를 하는 동안 장갑을 벗고 잠시 놀다 오라 했다.


돈가스의 과정은 밀계빵. 채반에 받쳐 우유를 한번 헹구어 물기를 쪽 뺀 고기에 밀가루를 묻히는 작업부터 같이 해 볼까 하다가 폴폴 날리는 고운 가루를 보고 아들 두 놈이 흥분이라도 하면 그날로 우리 집은 온 세상이 하얘질 것만 같아 나 혼자 지퍼백에 넣고 밀가루를 묻혔다. 계란과 빵가루, 그것만 같이 하자.  


계란을 풀어 밧드에 넣고 큰 사이즈의 오븐 트레이에 빵가루를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 이 빵가루로 말할 것 같으면 집에 모닝빵이 두 봉지나 생기는 바람에 모닝빵의 일부를 믹서에 갈아 오뚜기 빵가루에 섞은 것이다. 치킨가스를 더 맛있게 만들어줄 치트키가 생각지도 못하게 생겨버렸다. 아이들이랑 요리를 하면 설거지도 더 많이 나오고 재료도 더 많이 든다. 흘리고 어쩌고 하다 보면 아무래도 손실분이 생기니, 애초에 마음도 재료도 넉넉히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이제 어떻게 하는 걸까?라고 하니 계란 묻히고 빵가루 묻히는 거라고 엄마가 지난번에 하는 거 다 봤다고 대답을 한다. 어쭈?


 엄마는 동선과 저지레의 범위를 생각해서 나 혼자 할 때보다 큰 그릇에 준비해 바짝 붙여 두었는데, 고기에 계란을 묻히고 바로 빵가루 그릇으로 던져버릴 수 있도록, 흘릴 틈이 없이 바짝 붙여 놓았는데 그런데 아들은 계란을 묻힌 고기를 손에 들고일어나 앉아있는 동생 뒤로 성큼성큼 걸아간다. 빵가루 묻히러. 계란물을 뚝뚝 흘리며, 흘린 계란 물을 발로 밟으며. 예상밖의 행동, 비 효율적인 행동, 나의 뒷 처리를 더 성가시게 행동에 빽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야 이 놈아 그릇이 옆에 있는데 뭐 하러 걸어가냐!! 그랬더니 아, 바로 옆에 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린 계란 물을 깔고 앉아 버린다. 그렇게 닭 안심 1킬로로 치킨 가스를 완성하였다. 계란을 앞 뒤로 골고루 묻히는 것, 빵가루를 묻힐 때에 꾹꾹 눌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아이들에겐 모두 새로운 촉감 체험이었을 것이다. 엄마에겐 지겨운 집안일 중 하나이지만.


 생고기의 차가움, 계란의 미끌거림, 빵가루의 꺼끌 거림 장갑 낀 손이지만 고사리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끼며 촉감을 느끼며 집안일의 숭고함, 밥 하기의 지겨움까지 느꼈을는지. 아니, 엄마는 매일 이렇게 재미있는 요리놀이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장갑을 고이 벗기고, 빵가루와 계란 범벅이 된 옷과 양말을 고대로 벗겨서 화장실로 보내 먼저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계란과 빵가루로 얼룩진 주방을 정리하고 완성된 치킨가스를 기름에 튀긴다. 집에서 튀김을 하면 아보카도유처럼 비싸고 좋은 기름에는 못 튀겨도 깨끗한 기름에 튀길 수 있어서 좋다. 가스레인지와 남은 튀김기름을 정리하고 치우는 것은 내 몫이지만, 뭐.


 그렇게 완성된 치킨가스 한 상. 자기가 만들었다고 더 좋아하는 둘째, 장염의 여파로 아직 입맛을 되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입 먹으며 맛있다고 엄지 척해주는 첫째이다. 나는 내가 만든 것이 맛이 없다. 하는 동안 질리는 모양이다. 계속 냄새를 맡게 되어 그런지 기름을 쓰는 일은 특히 그렇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한 입, 두 입 간을 봐서 더 그럴 것이다. 아이들에게 한 상을 차려주고 먹는 것을 보았다. 먹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진 않다. 나는 출출함과 더부룩함 그 사이 어딘 가에 있다. 아마 환기가 조금 되고, 남편이 오면 그때나 식욕이 동할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면 기분은 좋다. 제 손으로 만들었다고 더 맛있다 한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따가 치킨가스 엄청 맛있게 먹으라고 말이다. 누가 만들었어? 어떻게 만들었길래 이렇게 맛있어? 하고 꼭 물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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