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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an 07. 2023

책가방이 생긴 아이.

그리고 자라지 않는 애착인형 이야기. 

입학을 앞둔 큰 아이에게 책가방이 생겼다. 엄마의 삼십 년 지기 오랜 친구가 입학 선물을 해 주고 싶다며 가성비 좋은 가방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으라고 보내주었다. 나는 아직 책가방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냥 까맣고 튼튼하고 싼 걸로 준비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재래시장 가방집에 가야 할까. 요즘 아이들 책가방은 뭐가 뭐가 많고 이리저리 복잡하고 비싸다. 이런 태평한 내가 못 미더운지 친구가 직접 아들 가방 몇 개를 골라 보내주니 아들이 직접 보고 고른다. 대충 아무거나 찍은 것 같지만, 나름의 취향이 있나 보다. 단색, 무지. 이제 다섯 딸과 6개월 아들을 남매로 키우는 친구는 우리 아들이 직접 고른 밋밋하고 어두운 디자인에 웃어버렸다. 핑크 공주와 단색 아들놈의 갭이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들과 뭐든지 함께 하는 숭숭이. 울지도 않고 떼도 안 부리는 젤 착한 내 새끼.


어린이집 가방, 유치원 가방만 메다가 처음을 사제 가방을 메었다. 아이를 보니 내가 속으로 울컥한다. 과연 저 가방이 등에 잘 붙어 있을지 의문이지만, 학교 갈 때 가져가고 집에 올 때 갖고 오기만 해도 감사하다는 아들의 가방이지만, 그래도 저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다니.  아무리 또래보다 작고, 마르고, 이빨 요정도 늦게 오는 늦게 자라는 아이이지만, 어느새 훌쩍 컸다. 아이와 함께 자란, 아이의 애착인형 숭숭이에게 가방을 메어줘 본다. 너는 아직도 똑같이 아기인데, 우리 아이만 훌쩍 자랐구나. 


동생 출산을 앞두고 숭숭이도 동생이 생겼다. 동동이.


숭숭이는 큰 아이가 백일 조금 넘었을 때에 우리 집에 왔다. 아이의 애착인형을 사 주는 것이 좋다는 말을 주워들은 초보 엄마가 원숭이띠인 아이에게 원숭이 인형을 사준 것이다. 아이가 서너 살이면 애착 인형을 떼겠지 하고 데려온 숭숭이는 아이가 입학하는 책가방도 같이 메어 보며 지금까지 우리 집에 함께 산다. 아이의 애착 인형이다 보니 물고 빨고 뭉개고 이로 지근지근 물기도 하여 빨래도 자주 하여 그런지 잘 낡는다. 구멍 난 것, 뜯어진 것을 꿰매기도 하지만 수명은, 형태를 온전하게 유지하여 동심을 파괴하지 않는 수명은 1년 남짓이다. 그래서 숭숭이는 한 마리이지만 사실 한 마리가 아니다. 일 년 반에 한 번씩은 헌 숭숭이를 은퇴시키고 새 숭숭이로 바꿔 주었기 때문에. 아이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다. 엄마가 어디 큰 세탁소에 가서 숭숭이의 솜을 갈고 천을 수선하여 기계로 깨끗하게 빨아 오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숭숭이가 먼 길을 다녀오는 날, 유치원에 갈 때는 더 꼭 안아주며 인사하고 갔다 와서 목욕재계한 숭숭이를 보면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숭숭이랑 입학할 때까지 같이 살고 있다. 숭숭이는 이미 번외로 내 새끼이다. 때에 따라 딸도 되고 아들도 되는 멀티 내 새끼.


잠잘때도, 여행갈 때도 함께.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보면 주인공 라일리가 어린 시절 영혼의 친구 봉봉과 이별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일리가 사춘기가 되며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 중에 봉봉과 이별하며 한층 성숙하는 장면에서, 라일리를 위해 저쪽으로 떨어져 나가 주는 봉봉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린 기억이 있다. 나의 봉봉은 누구였는지 나이 마흔이 다 된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우리 아이의 봉봉은 숭숭이인데, 숭숭이가 우리 아이와 이별하게 되면 나는 인사이드 아웃의 봉봉과, 누군지 모를 나의 봉봉과 숭숭이를 함께 그리워하며 슬퍼할 것 같다. 


인형도 늙으면 주름이 생기고 키도 작아진다. 빳빳한 젊은 녀석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똑같은 인형을 몇 개를 산건지. 시중에 팔지 않을 때는 본사에 전화해서 재고를 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아이가 집에 있을 때면 아이의 반경 1미터 이내에 항상 숭숭이가 있다. 엄마한테 혼나고 슬플 때, 무서운 영화를 볼 때, 할 일 없이 뒹굴거릴 때 숭숭이를 끌어안는다. 숭숭이보다 덩치가 작던 아이는 꾸준히 자라 이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저의 첫 책가방을 숭숭이에게 메어 준다. 유치원에 다녀올 때쯤 되면 나는 들어오는 현관 쪽에 숭숭이를 앉혀둔다. 아이는 오자마자 숭숭이를 보고 끌어안는다. 어느 날은 숭숭이를 쳐다볼 틈도 없이 다른 놀잇감에 정신이 팔리기도 한다. 학교에 입학해도 하교 시간에 맞춰서 숭숭이를 현관에 앉혀놓을 생각이다.  낯선 학교에 갔다 와서 낯익은 숭숭이를 품에 안고 안정을 취하도록 말이다. 아이는 자라고, 동생도 자라고, 엄마와 아빠는 점점 나이 드는데, 우리 집에서 그 모습 그대로 인 것은 숭숭이 밖에 없어서 그런가, 아이는 숭숭이가 주는 안정감을 아직도 무척 좋아한다. 언젠가 숭숭이를 왜 그렇게 좋아하냐는 질문에 숭숭이는 언제나 웃고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해서 엄마를 뜨끔하게 한 적도 있다. 


유치원 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숭숭이 동동이 형제. 

 학교 가는 아이에게 처음 생긴 책가방, 지금은 숭숭이가 먼저 메고 있다. 아이는 숭숭이에게는 엄청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성장을 느낄 것이다. 학교 가는 아이의 첫 번째 준비물, 책가방. 하나도 자라지 않은 숭숭이가 메고 있는 아이의 책가방을 보며 엄마는 지난 시간을, 언제나 숭숭이가 함께 했던 아이의 유년기를 하나하나 떠올린다. 이제 유년기가 아니라 학령기이다. 숭숭이는 언제까지 아이와 함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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