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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21. 2023

은혜 갚은 아이들.

엄마는 초콜릿 상자를 가득 채웠다.

 나에게는 얼렁뚱땅 지나가는 이번 겨울이다. 12월 말부터 겨울방학, 1월엔 설 연휴, 2월이 되자 아이들의 유치원에서 학습 발표회 (라 쓰고 재롱잔치라 읽는다)와 졸업식이 있어, 아빠는 부지런히 일을 하며 연차를 준비하고, 나는 일정에 맞추어 의상과 준비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큰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하던 해에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여 외부 행사를 전혀 못 하는 5세와 6세를 보냈는데 그래도 올 해엔 거리 두기가 해제되어 소풍부터 운동회, 발표회, 졸업식까지 여러 행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엄마로서는 행사가 없어서 편하고 좋기도 하였다. 소풍이라면 간식이라도 싸서 보내야 하고, 운동회라고 갔다 와서 하루 이틀 근육통을 앓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엄마라서 행사가 있어서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 아이의 성장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내가 보는 모습과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이 사뭇 다른데, 엄마 아빠가 함께 하는 행사에서는 그 중간 어느 모습을 보여준다. 선생님도, 엄마도, 그런 아이를 보며 함께 웃었다.


 2월 초에 발표회가 있었다. 원장님께서는 시내의 문예회관을 빌려 통 큰 행사를 진행하셨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이런 큰 무대에 서 보겠냐고,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박수받는 그 모든 과정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고 싶어 하셔서 감사했다. 엄마들은 그런 큰 행사가 낯설었다. 코로나 시국에 입학한 아이들이라, 엄마들에게도 유치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어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7세 엄마들도, 6세 엄마들도, 5세 엄마들도 모두가 아이들의 발표회는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겐 처음이고, 누군가에겐 마지막인 이 발표회를 위해 아이들은 몇 달간 열심히 연습을 했고, 엄마들은 귀찮다 하면서도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하고 오랜만에 색조 화장품을 꺼내 들었다.


아이들의 사물놀이 외침으로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짹짹이는 목소리가 들리자, 엄마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참으로 신비로워서 제각각 떠들 때엔 정신이 하나도 없이 혼이 빠지지만, 함께 모여서 한 목소리의 외침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맑고 순수한,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청정구역의 소리가 된다. 그 소리는 오직 아이들만이, 그것도 아이들 여럿이 모여야만 낼 수 있는 소리라서 무척 귀하다. 그 우리 아이, 남의 아이 할 거 없는 귀한 소리에 엄마들은 첫 장부터 눈물이 터졌다.


무대에 올라오는 아이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엄마와 아빠는 있는 힘껏 뜨거운 함성을 내 지르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함성을 듣고 힘을 내어 있는 껏 재롱을 떨었다.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엄마와 아빠들은 더 큰 함성을 질렀고 아이들은 컴컴한 객석에 앉아있는 엄마를 기어이 찾아내어 손을 흔들며 퇴장한다. 그렇게 재롱과 함성을 주고받으며 엄마 아빠와 아이의 관계는 더 돈독해져, 아마 아이가 떼를 부릴 때에, 엄마가 화를 낼 때에, 아빠가 힘들 때에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약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발표회를 하고 2주 후, 졸업식이 있었다. 3년 만에 부모님과 함께 하는 졸업식이라 모두가 기뻐하였다. 코로나 시국, 그동안은 원내 행사로만 진행하고 하필 작년 이맘때는 오미크론이 창궐하던 때라 행사 참석 자체가 불가능했던 아이도 있었는데 올해는 아이들이 마스크도 벗고 학사모를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을 일찌감치 아침을 먹이고 머리에 생긴 까치집을 정돈해 주었다. (평소에는 까치집 지은 채로 그냥 갈 때도 많은데) 의상을 챙겨 입히고 엄마도 꽃단장을 하고 휴가 낸 아빠와 함께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유치원에 갔다.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엄마들이 꽃단장을 한 서로의 모습을 어색해하며 반갑게 인사를, 아이들의 졸업에 모두가 느끼는 그 오묘한 기분을 함께 나눈다. 아이들이 학사모를 쓰고 엄마의 손을 마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와 아빠 하늘이고 바다이고 냇물이고 해님이라고, 키워 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아니, 세상에 2.3킬로로 태어나 커다란 고구마 같기만 하던 나의 쪼꼬미가 벌써 이렇게 컸다. 아이가 이렇게 크는 동안 나는 아이의 하늘이고 바다이고 냇물이고 해님이었다. 나는 딱히 은혜라는 걸 베푼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키워 주신 은혜에 감사하다 한다. 그것도 모자라 재롱으로, 노래로, 짹짹이는 목소리로 베푼 은혜에 비해 너무 많은 이자를 쳐서 갚아 주었다. 이걸 어쩐담.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에게 꽃다발을 한 아름 안긴다. 한 아름 중에 큰 꽃다발 하나는 원장님께, 또 하나는 선생님께 드리며 졸업의 감사와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감사했습니다. 내가 아이보다 더 꾸벅 깊이 인사를 드렸다. 아이가 저 혼자 자란 게 아니라는 걸, 선생님께 배꼽 인사를 드리는 엄마를 보며 어버이 은혜 말고 스승의 은혜도 알기를 바랐다.


 은혜 갚은 아이들, 어쩌면 앞으로 속 썩일 일 많으니 미리 선불로 재롱 결제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재롱의 기억은 엄마의 인생에 커다란 초콜릿 상자가 되어, 엄마가 지칠 때에, 화날 때에, 힘들 때에 한 개씩 꺼내어 먹으며 힘을 낼 수 있는 충전기가 될 것임을 안다. 얼렁뚱땅 지나가는 것 같은 2월에 내 인생의 초콜릿 상자가 가득 채워졌다. 부디 초콜릿을 가끔씩만 꺼내 먹기를, 아이들이 다 자라기 전에 바닥나지 않기를 바란다.  큰 아이의 유년기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내 자리가 앞에서 뒤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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