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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15. 2023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

이런 마음이었어.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란다. 콧물, 코막힘, 기침, 중이염, 기관지염, 미열, 고열, 두드러기 같은 일상적인 증상부터 코로나, 노로바이러스, 수족구, 폐렴, 돌발진 같은 자주는 아니지만 많이들 걸리는 질환까지. 아이들이 아플 때, 나는 현대 의학의 수혜를 입음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항생제가 없던 옛날에는 이런 작은 질병에도 아이들이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 일인가. 


 아이들이 아프면 엄마는 겁부터 난다. 자기의 증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기에, 어디가 얼마큼 아픈 건지 내 자식이지만, 내 몸이 아니라 나는 알 수가 없기에, 게다가 나는 의학에는 일자무식인 그냥 엄마 아닌가, 그래서 저러다 갑자기 큰일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든다. 나의 무지와 무능이 가장 원망스러운 순간도 애가 아파 골골대는데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을 때이다. 


 큰아이가 첫돌이 지났을 여름 무렵, 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처음에 외래 진료를 보고 장염이라 해서 약을 먹이고 물을 먹였는데 먹는 족족 다 토해버렸다. 목이 마르니 물을 찾는데 먹은 물 보다 더 많은 양을 토해내고 애가 힘없이 축 쳐져 버려 놀란 마음에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었다. 연락을 받고 내려온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증상을 듣고 입술을 만져보더니 바로 입원 결정을 내렸다. 탈수가 시작되니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나는 겁이 나고 걱정이 되어 눈물을 쏟았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며 금방 치료되는 병이니 울 거 없다고,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지는 거니까 걱정 말고 엄마 밥이나 잘 챙겨 먹으라고 등을 토닥여 주셨다. 그때의 나는 누가 봐도 아픈 아이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초보 엄마로 보였을 것이다. 내 머리는 파발이었고, 옷에는 아이가 토한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게다가 여름이라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깡 마른 나의 팔뚝을 보며 의사는 되려 나를 걱정해 준 것이다. 그렇게 수액을 맞으며 영양을 공급받고 항생제를 맞으니 아이는 며칠 만에 괜찮아져 퇴원을 하였다. 아픈 뒤에 쑥 큰다 하는 아이들이지만, 우리 아이는 장염으로 더 마른 몸을 한동안 유지했다. 너무 속상했다. 나도 아이의 병치레에 퀭해진 몰골을 회복하는데 한참 걸렸다. 우리 엄마가 속상해 하셨다. 


 둘째는 두 돌이 지났을 무렵 바이러스성 폐렴에 걸렸다. 어린이집에서 친한 친구들끼리 나눠가진 모양인지 같은 반 친구들 중 서너 명이 집단으로 걸려 어린이집 선생님과 원장님께도 걱정을 끼친 일대 사건이었다. 40도가 넘는 고열과 심상치 않은 기침 소리가 계속되었고 처음으로 두 종류의 항생제와 해열제, 스테로이드제를 함께 처방받아 약봉지가 두툼했다. 입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돌봐야 할 첫째도 있으니 가능하면 집에 있고 싶다고 하여 집에서 간호를 했다.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40도가 넘어가면 아이가 축 쳐지는데 해열제로 40도 밑으로만 내려오면 평소와 다름없이 들고뛰며 놀았다. 아이 둘이 함께 폐렴에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큰아이는 조금 더 컸다고 면역이 좋았는지 감염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린이집의 다른 친구들은 근처 큰 병원에 함께 입원하여 아이들의 모닝 엑스레이 모임과 엄마들의 병원 스타벅스 커피 모임을 함께 하였지만 우리 아이는 그래도 집에서 약만 먹고 잘 나았으니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다. 


 엄마가 되고 난 후 비로소 처음 느껴본 감정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예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절절한 모정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 둘을 키우며 몸소 느낀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모성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극단의 실용주의, 가성비 추구에 입각한 표현이기도 하다. 애가 아프면 애도 아프고 나도 아파지는데, 내가 대신 아프면 나만 아프고 끝날 일이니 엄마 입장에서는 내가 대신 아프고, 나만 아프고 끝내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한 일이다. 물론 내가 아픈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일도 서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는, 아이가 쾌차한 후 어차피 내가 앓아누워, 아픈 몸으로 쌩쌩해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일보다는 그냥 나 하나 조용히 아프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엄마 마음이 암튼 그렇다. 그렇게 아름답고 절절하지만은 않다.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보다는 그냥 내가 아프고 말지에 가깝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조금 커서 아픈 일이 많이 줄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코로나 거리 두기가 없어지고,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야외 활동이 늘어 콧물, 기침은 더 잦아졌다. 다만 툭하면 열이나 색색 거리며 끙끙 앓는 횟수는 점차 줄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체온계를 잘 쓰지 않는다. 체온계를 쓰지 않아도 안아보면 알 수 있다. 어? 좀 뜨거운데? 38도 넘는 거 아니야? 하면 내 느낌이 맞다. 어떤 땐 눈으로만 봐도 체온이 보일 때가 있다. 누워 있는 거 보니 39도가 넘었나 보군, 저렇게 노는 거 보니 39도 밑으로 내려왔나 보네, 노는 건 놀아도 먹는 게 션찮네, 아직 38.2-3도 되나 보다. 먹는 거 보니 37도대로 내려왔나 보네. 다 나았군. 


 큰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전에 준비해 둔 브라운 체온계를 아직 쓰고 있다. 별로 쓸 일이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쭉 있으며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새 체온계를 구매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요즘도 콧물, 기침, 중이염으로 항생제 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아프고 낫길 반복하며 잘 자라고 있고 다행히 현대의학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세상, 건강보험의 혜택이 많은 나라에 살고 있어 큰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이의 아픔에 도가 튼 엄마 같지만 최근에도 아이를 데리고 간 병원에서 콧물 기침 진료를 받으며 중이염이 와서 열이 나면 큰 병원에 가야 하나요, 어쩌고 하며 사색이 되었는지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중이염 항생제로 치료 잘 되는 병이니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애 컨디션 보니 멀쩡한데요 뭘, 이라는 말을 듣고 온 엄마이다. 엄마는 영원한 초보다. 특히나 아이의 아픔은 아무리 배워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그저 그때그때 마치 처음인 양 헤쳐 가야 하는 왕초보의 영역, 아이는 아프고 나면 쑥 자라는데, 엄마는 여전히 초보이다. 


아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다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어차피 다칠 것, 나는 아이의 상처에 속상해하기보다 그를 통해 아이가 배우고 커가는 모습을 보려고 한다. 그래야 내 마음도 한결 낫다. 애태우며 상처만 들여다보는게 아니라 그 상처 너머를 보겠다는 얘기다. -아이라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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