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Feb 04. 2023

아들의 세계

엄마는 딸이었거든. 

나는 아들이 둘, 아들만 둘이다. 둘째가 직립 보행을 하던 2019년부터 양 쪽에 두 녀석을 데리고, 한 놈씩 손을 잡고 걸어 다닐 일이 많은데 길거리,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른들께 여러 말씀들을 듣는다. 아들만 둘이여, 엄마 힘들어 어째. 아들만 둘이네, 잘했네, 아들만 둘이네, 엄마 딸 한나 더 낳아야 겄네 진짜여. 딸은 한나 있어야 뒤야, 나이 들어 보험이다 생각하고 꼭 있어야 혀. 얼른 한나 더 낳아. 지금의 나는 옛날에 큰아이가 작네, 엄마가 작아서 그렇네, 무슨 애기가 양말도 안 신었네 하는 얘기를 들을 때 보단 250배 정도 유해지고 그쪽 방면으로의 사회성이 발달하여 지금은 그렇게 스트레스받거나 발끈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에 따라 그냥 웃기만 하거나, 괜찮아여... 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아유 저는 열을 더 낳아도 다 아들 일거 같아서 그냥 안 낳으려고요. 하거나, 힘들어서 더는 못 키우겠어요. 아니면 둘째를 가리키며 얘가 딸 노릇 해여.... 라고 하기도 한다. 점점 오지랖 지수가 높아지는 나를 보며, 아유 나는 정말 다른 집 가족계획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할머니가 되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한다. 


아들만 둘이라는 것, 두 남자의 돌봄과 양육을 맡은 여자에게는 분명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임이 맞다. 남자와 여자의 두뇌 회로의 작동 방식이 어찌나 다른지, 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어려움을 보듬으며 아들 키우기 특강, 아들 특화 미술, 아들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아들 키우기에 특화된 서비스도 많이 생겼다. 딸로, 여자로 몇 십 년을 살아온 엄마에게 아들은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같은 존재 일수 있으니.그러나 육아와 돌봄에 종사하는 어른들이 대부분 여자 어른들이라, 아들들도 본능적으로 자기를 이해해 주는 남자 어른의 부재가 클 것이다. 이렇게라도 여자인 엄마들이 남자인 아들을 이해해 보려고 하는 노력이 아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아들 키우기가 그렇게 힘들고 골 때린다 하던데, 나는 딸을 안 키워봐서 이게 더 힘든 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딸 키울 일도 없을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이다. 나이 들어 여자에게 필요한 게 돈, 친구, 딸이라는데 친구라도 있음에 감사하며 달리 혼자 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 두면 된다. 


나는 딸이 없어서 그런지 아들에게 별 짓 다 해보며 키웠다. 온갖 핑크색 의상과 머리핀을 해 줘 본 것은 기본. 큰 아이가 네 살 때에 핑크색 튜튜를 입혀서 문화센터에 발레를 다니기도 했다. 아이는 발레를 해 보겠다고 했는데 자기의 옷이 검은색 쫄쫄이임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네 살, 성별에 대한 편견이 하나도 없을 시절, 자기는 왜 저걸 안 입냐고 해서 핑크색 발레복과 토슈즈까지 신겨서 반년정도 발레 클래스를 다녔다. 우리 큰 아이의 성정체성을 걱정하며 발레 클래스를 만류하시는 어른들도 계셨다. 나와 신랑의 반응은? 이 발레 클래스를 하고 말고 가 성 정체성에 영향을 줄 일일까? 때 되면 알아서 그만두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 발레를 안 해도 붉어져 나올 일일 텐데. 나는 엄마이니 그냥 아들이 행복을 기도할 뿐, 지금 튜튜를 입고 까치발을 하며 행복해하는 아들을 눈으로 담아 둘 뿐이었다. 지금은 핑크색 발레복을 입은 첫째와, 엄마 품에 안긴 아기 둘째, 그 둘을 돌보는 초보 엄마인 나, 그 세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칼싸움하는 아들 둘, 툭하면 치고받고 싸우는 형제와 소리를 꽥꽥 지르는 엄마가 있을 뿐이었다. 


 

 아들들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칼싸움을 하며 논다. 싸움 놀이라는 호응이 맞지 않는 단어 두 개를 붙여 사용하기도 한다. 싸움...놀이? 내가 아무리 소리를 꽥꽥 질러도 조금 있다가 와서 딴 소리를 하여 나의 화를 더 돋우기도 하는데 그건 정말 못 들어서 그런 거라 하니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가까이 가서 눈을 보고 이야기하고 확인을 받아야 그게 들은 거 지 아무리 큰 소리로 얘기해도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정말 들리지 않는다나 뭐라나. 엄마가 긴 머리를 뎅강 자르고 와도, 검은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와도 엄마가 엄마지 뭐냐 뭐 엄마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 내가 그렇게 존재만으로 빛나는 사람이었다니, 아니 존재만 있는 사람?) 세상 재미없고 속 터지는 아들들이지만 편하기도 하다. 아직은 아무 옷이나 던져주는 대로 입고 (딸들은 아침마다 착장에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신발도 운동화 하나, 크록스 하나, 겨울용 부츠 하나면 족하며, 다른 액세서리 류도 취급하지 않으니 아기자기한 것과 거리가 먼 나의 성향과 잘 어울린다. 좋은 말을 해도, 잔소리를 해도 5분 후면 까먹어 속 터지게 만들지만, 내가 고래고래 꽥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어도 5분 후면 까먹어주니 고마울 때도 있다. 아들들은 말을 쳐 안 듣고 제 성에 못 이겨 발광할 때가 많지만 아주 작은 일에 삐지거나 눈물을 글썽이진 않으니 자잘한 일에 감정 소모 하며 에너지를 쓰는데 소질이 없는 나와 또 잘 맞는다. 얘기 들어보면 딸 키우기도 장난이 아니게 힘들 것 같다. 


  아들 둘이 크니 엄마는 점점 같이 놀 일이 적어진다. 아들의 칼싸움에, 싸움 놀이에 엄마가 낄 자리는 없다. 아들들이 엄마는 끼워주지 않는다. 땡큐. 둘이 속닥이며 작당 모의를 하기도 하는데, 그 역시 엄마는 오지 말라고 문을 닫아 버리니 얼마나 고마운지. 잠시 후면 평화가 깨지고 치고받고 싸우며 울며 불며 둘 다 나에게 와 매달리기 일쑤지만, 그래도 아들 둘이 통하여 잘 노니 나는 조금 편하고 아이들은 더 즐겁다. 꼿꼿한 원칙주의자인 형아는 유연함의 끝판왕인 동생에게 맨날 당하는 형국이고, 동생은 해가 갈수록 형아 찜 쪄먹기 기술이 늘어나지만, 형아는 매번 당하면서도 5분 후면 까먹는 아들이라 둘의 조합은 환상의 궁합이다. 톰과 제리. 바로 고양이와 생쥐가 우리 집에 살고 있으며, 나는 불쌍하고 죄 없는 그 집주인이다.  



아들이 둘, 딸이 없는 노후는 어떨지, 정말 외로울지 의외로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아들 둘 키우는 나의 일상은 그런대로 괜찮고 즐겁다. 수영장이나 찜질방에 가서 우리 집 남자 셋을 남탕에 밀어 넣고 홀로 여탕에 가서 호젓함을 즐길 땐 딸이 없어 좋기도 하다. 나의 급변한 헤어스타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날은 돈 쓴 보람도 없이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런 무심함이 나의 일상을 편하게 해 줄 때가 더 많기에 그 정도는 참고 넘어갈 수 있다. 가끔 엄마와 옷을 똑같이 맞춰 입은 딸내미들을 보면 부럽기는 한데, 그렇다고 또 낳을 순 없다. 정말 열명을 더 낳아도 다 아들일 것 같아서, 그리고 둘째가 애교로 무장하여 정말 가끔 딸 노릇을 해 주니 나는 그냥 아들 둘 엄마로 족하다.  


기쁨도 슬픔도 온몸으로 표현하며 매 순간 치열하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환희에 차 소리 지르고, 엉엉 울고, 즐거우면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희한한 춤을 추고, 재미있거나 신나는 일이 있으면 방방 뛰며 세리머니를 하고, 그렇게 아이들은 온몸으로 삶의 찬가를 부르며 산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이번 육아 매거진은 사진 없이 글로만 쓰기로 스스로 약속하였는데 이번 편은 사진을 안 넣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나의 마음은 유해 빠졌다. 

이전 08화 엄마가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