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너희에게.
갓 태어난 아기들을 데리고 집에 왔을 때, 그 작은 생명체들은 기가 막히게도 이불에 내려놓으면 울고 안아주면 울음을 그쳤다. 엄마 품을 아는 건지 사람 냄새를 아는 건지 아기들은 안겨서 먹고 자고 웃었다. 내 품에 쏙 들어와 편안해하는 강아지만 한 아기들을 토닥이며 생각했다. 만약, 나보다 몸집이 스무 배쯤 큰 거인이 나를 이렇게 안아 들고 토닥이고 재워준다면 나는 편할까? 내 몸집은 아기의 스무 배, 내 손바닥은 아기의 등짝을 다 덮을 만큼 컸고 아기의 발바닥은 내 엄지손가락 길이만 했다. 네 눈에는 내가 그런 거인으로 보이겠구나. (신생아의 눈에는 엄마가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덩치 큰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듯 무서울 것 같은데 이 작은 생명체는 나를 편안한 안식처로 생각해 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몸집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엔 스무 배 정도 차이가 났는데 지금은 내가 아이보다 두 배 조금 더 크다. 나는 누가 봐도 키도 체구도 작은 사람인데 아이는 그래도 제 엄마가 키가 크다고 한다. 엄마만큼 클 거야, (안돼! 무슨 소리야, 더 커야지), My mom is tall.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창피함) 아이에게 나는 여전히 큰 사람이다.
구글 포토, 소셜미디어는 매일 옛 추억을 보여준다. 아기의 성장 사진, 이 계절 즈음 찍었던 사진들을 랜덤으로 보여주며 추억여행을 시켜주는데 잊고 있던 예전 모습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 쏠쏠한 와중에 내 마음이 무겁게 하는 사진이 두 장 있다. 한 장은 첫째가 첫돌과 두 돌 사이, 팩 우유를 먹다가 우유 팩을 주물주물 하는 바람에 다 흘려버려 뚜껑이 열린 나에게 등짝을 맞고 울고 있는 사진이고, (사진 찍을 정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의문), 또 한 장은 둘째가 13개월 크리스마스이브에 케이크를 손과 얼굴로 뭉개고 역시 뚜껑이 열린 나에게 엉덩이를 찰싹 맞고는 엉엉 울다가 싹 씻고 나와 남은 케이크를 먹으며 웃고 있는 사진이다. 아이들이 그날 나에게 맞았다. 두드려 팬 건 아니다. 보드라운 살결에 남았던 빨간 손자국은 하루 만에 없어졌지만 그날 찍은 사진은 몇 년째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보이며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즈음의 상황을 복기해 보자면 이렇다. 내가 힘들었다. 아마 신랑의 계속되는 야근에 육아가 온전히 내 몫이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끝도 없이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를 혼자 반복하며 쌓인 화가 아이가 우유를 쏟았을 때에, 케이크를 뭉갰을 때에 아이를 향해 폭발한 것이다. 화를 담아두는 마음의 저수지는 항상 저수율이 90프로를 넘나들고 있었고 조그마한 일만 추가되어도 범람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컸다고 화의 저수율은 7-80퍼센트대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날 나는 화를 내며 아이의 등짝에 엉덩이에 손바닥을 날렸고, 아이는 울었고, 나도 울었고, 나는 미안하다 사과하며 끌어안았고 아이도 나에게 다시 웃으며 안겼다. 그리고 구글 포토가 일 년에 한두 번 그 사진을 보여주고, 그때마다 다짐하며 반성한다. 그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그 어린것들한테. 나보다 몸집이 네 다섯배는 더 큰 거인이 내 앞에서 화를 내고 나를 한 대 쥐어 박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한데 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기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키워내는데 에는 그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와 주변의 도움과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는 뜻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가정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식구 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시대에는 더욱이 더 다양한 사람의 사는 모습, 많은 사람들과 상호 작용, 소통을 하는 법을 배우며 자라야 건강한 사회적 동물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화의 저수지가 항상 범람의 위기에 놓여있던 그때, 나에게는 온 마을이 필요하기에 앞서, 애 아빠라도 필요했다. 가족이 저녁식사 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나에게 어른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마음 편히 씻으러 들어가고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화 저수지가 범람할 일이 확연히 줄었을 텐데, 왜 애 아빠는 매일 야근을 하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네 어쩌네 하는지, 순서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늦어도 여섯 시면 퇴근해 집에 와서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는 외국 사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부러웠다. 부모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가족과 저녁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아이들은 8시쯤 잠을 잔다. 그리고 부부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이들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니 건강에도 좋을터, 한 때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한국의 밤문화가 지금 이렇게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내가 아는 내 주변의 애 키우는 여자들은 대부분 화가 많은데 거의 다 아빠의 퇴근이 늦어 혼자 독박을 쓰는 경우 이거나, 맞벌이로 부부가 다 일을 하는 경우 일과, 시간과, 육아와 끝없는 죄송과 미안함에 쫓기는 경우였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마을이 힘을 합치기는커녕 엄마 아빠가 저녁 식사에 힘을 합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그 피로로 인한 피해는 엉뚱하게 아이들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아이들의 등짝을 딱 두 번만 때린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등짝 스매싱은 수시로 나간다. 다만 나의 화와 분노가 함께 들어갔던 가장 큰 사건이 그 두 번이라 내가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두고두고 미안해하며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것이다.
측은지심 인지단야라고 했을 때 단 이라는 글자는 양 끝난, 즉 어떤 일의 처음과 끝을 의미하기도 하고 근본, 실마리나 아주 작은 새싹 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 맹자는 도덕성의 성장과 성숙을 식물이 커가는 생장 과정에 자주 비유하곤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씨앗이나 새싹처럼 작은 알맹이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새싹같이 적은 가능성의 상태로 주어진 본성에 햇빛과 물을 주어 잘 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혐오의 가지와 분노의 잎이 너무나 무성하게 자라나 측은지심의 새싹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사회로 보인다.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사회에서 결국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약자들이다. 우리 사회에 날로 부풀어가는 혐오를 누그러뜨리고 분노를 매만져주는 일이 정말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측은지심이 옅어지고 혐오와 분노가 가득한 사회, 이런 사회의 문제는 그 사회의 일원인 나 자신도 결국은 그 돌고 도는 분노의 희생양이 된다는 점이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사랑의 매에 찬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아기를 낳기 전에 그랬다. 어른이란, 부모란 언제나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서 그런 사람이 드는 사랑의 매란 컴퓨터처럼 계산된 일관성과 독립성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육아가 사실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여러 가지로 굉장히 동물적인 영역임을 그때는 몰랐다. 새끼를 돌보는 가장 동물적인 영역에서 역으로 내 안의 동물성을 최대한 억누르고 인간의 이성을 죽을힘을 다해 쥐어짜 내야 하는 고난의 연속임을 정말 몰랐다. 그래서 그때는 사랑의 매가 필요악이며 어쩌면 합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나도 이렇게 감정 조절이 힘든 엄마가 될 줄 알았다면 감히 그런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사실 맞아야 할 만큼의 잘못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의 매라도 일관성과 객관성 감정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상당히 결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매로 해결되는 것도 없다. 심지어 화도, 분도 풀리지 않는다. 다음 매질을 앞당길 뿐이다. 그래서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되고, 말로도 때려선 안 되는 것이다.
매일 이렇게 다짐을 해도 나는 소리를 꽥꽥 지르고 등짝 스매싱을 수시로 날리려다가 몇 번은 참아내지만 한두 번은 결국 날려버리는 엄마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의 화의 원인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코 아이들이 화를 돋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은 화를 내고 방탕하게 한 바탕하고 돌아오는 탕자와 같은 엄마를 언제나 받아주는 성경에 나오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내가 사실은 매일 용서를 받고 사랑까지 받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엄마가 저희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엄마를 사랑해 준 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