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 살 스무 살 하는 것 같은 설렘으로 2020년을 맞았다. 큰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 예정이었고, 둘째도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두 아이 모두와 잠시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몇 년 만에 생긴 것이다. 첫 아이의 임신부터 시작하자면, 6년 만에 나는 진정한 홀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그렇게 기뻐했다. 그런데 이것 무엇? 코로나바이러스? 전 세계가 처음 겪는 초유의 현상이었다. 한 20년쯤 전에 사스가 강타한 적이 있고 바로 몇 년 전에 메르스가 유행한 적이 있지만 펜데믹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감염자는 혐오의 시선을 받았으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어울림을 경계하고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개학이 줄줄이 연기되었다. 누구는 개학 연기에 찬성하고, 누구는 개학 연기에 반대했다.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제대로 알았던 사람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이래 봐야 다 소용없다는 회의적인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아이에게 친구와 만나면 안 된다고 했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왜?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은 나의 말에 토 달지 않았다.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집에 갇혔다. 집 “안”에 갇힌 건 아니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이 가정보육, 나의 돌봄 안에 갇힌 것이다.
긴급보육이라는 정책으로 보육이 꼭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문은 일부 열렸다. 하지만 정식 수업이 아닌 통합 보육의 형태였다. 입학도 제대로 안 한 신입생인 두 아이를 어수선한 분위기의 유치원에 들여보내기는 미안했다. 더구나 둘째는 처음 엄마를 떨어지는 거여서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하여 놀다가, 30분 떨어졌다가, 한 시간 떨어졌다가, 점심까지 먹었다가 하는 단계별 적응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아이만 덜렁 맡길 수도 없는 노릇. 거기에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집에서 애 보는 엄마가 이 코로나 시국에 애를 어린이집에, 유치원에, 굳이 보낸다는 불편한 시선도 팽배할 때라 혹시라도 아이가 등원했다가 감염되는 날엔 내가 그 죄책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내 기억에 그런 가정보육은 5월 말까지 이어졌다가 개학을 했고, 그 후로도 확진자가 늘어나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정책적으로 휴원을 하기도 하고, 확진자가 발생하여 또 폐쇄를 하고 등등의 상황으로 2020년은 스무 살처럼 설레기는커녕 스무 살 치기의 숙취처럼 어지럽고 빙빙 돌았다.
그 시기의 우리의 일과는 이러했다. 아이들과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오전 산책을 다녀온다. 집 근처에 걷기 좋은 탄천길이 있는데 오전시간엔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내복 차림으로 마스크를 쓰고 킥보드를 타고 한 번 나갔다 왔다. 그리고는 손 발을 씻으며 옷을 갈아입고, 점심을 먹고 잠깐 집안 놀이를 하거나 집 앞 놀이터에 사람이 없으면 잠깐 나갔다가, 둘째 낮잠을 재우고, 그동안 나는 첫째와 뭐 라도하고 놀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저녁나절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산책을 다녀왔다. 길거리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았고, 중국이 역시 코로나로 멈춰서 그 해 봄에는 미세먼지 수치도 괜찮은 편이었다. 2019년부터 우리 가족은 에버랜드 연간 회원이어서 에버랜드도 자주 갔다. 에버랜드가 텅텅 비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놀기 좋았다. 몸이 힘들었다. 집에서 좀 쉴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하루에 만보 걷기가 일상이 되었고 그렇게 걷는 만보 안에는 둘째 안고 걷기, 킥 보드 두 개 내가 다 들고 걷기, 첫째를 유모차에 앉혀 유모차를 밀면서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걷기가 포함이었다. 만성 피로와 근육통, 소화불량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픔에도 총량이 있는지 그 환절기에 아이들은 콧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냈는데 내가 그렇게 골골거리고 아팠다. 병원에 가서 위장약, 진통제 등등을 처방받아 약국에 갔는데 내 앞에서 아이 엄마가 소화제와 갤포스를 사 가는걸 보기도 했다. 집집이 난리였던 시기였다. 힘들어 죽겠는데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그래도 신랑은 회사에 별 일없이 출근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집에 있는 엄마라 아이 돌봄에 남의 손을 빌릴 필요도, 고로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는 건 당시로서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바이러스 쇼크>라는 책을 읽으며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못 할 짓을 많이 하였는지, 인간이 얼마나 정성껏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잔칫상을 차리고 있었는지를 생각하였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주범 중에 하나였다. 아이들의 기저귀, 물티슈, 플라스틱 장난감, 배달용기, 택배 포장재, 일주일에 한 번씩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마다, “재활용” 쓰레기 그만큼씩 버리는 중에, 타는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는 또 따로였으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보기로 했다. 택배 줄이기, 배달음식 줄이기, 테이크 아웃 커피 줄이기, 물티슈 줄이기, 깨끗하게 쓴 물티슈는 빨아서 다시 한번 쓰기. 아이들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런 것 밖에 없었다. 어른으로서 진심으로 미안했던 순간이었다. (덕분에 배달음식과 테이크아웃 커피는 지금까지도 많이 줄인 상태라 건강과 가계에 많은 도움이 되고있다.)
아이들과 무기한 가정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집안에 갇혀보니, 에버랜드의 동물들도 달리 보였다. 바이러스에 일상을 잠식당했다며, 화난다, 우울하다, 불안하다, 불편하다 불평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 동물들은 인간에게 잠식당한 이 일상이 일생이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이 동물들을 통제할 자격이 있을까?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바이러스라는 이유로 우리를 통제해도 할 말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저기에 다소곳하게 홀로 앉아 닭고기를 받아먹는 호랑이처럼 저렇게 바이러스에 통제하는 세상에서 집안에서 다소곳하게 있으면 안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사자도 코끼리도 코뿔소도,부자연스럽고 부당했다. 내가 코로나에게 당해보니, 인간에게 당하고 있는 저 동물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는 확실히 재앙이었다. 마스크와 플라스틱 쓰레기로 환경은 더 파괴되었을 것이다. 사람 간에 불신과 미움이 팽배하면 우리가 얼마나 우아함과 교양을 잃고 추해지는지도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우리에게 강펀치를 날린 이유는 사람아, 사람아, 제발 사유를 하거라.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너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 지, 단 한 사람이라도 사유를 하거라. 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환경과 지구와 동물들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기적이기 짝이 없게도 환경과 지구와 동물들 보다는 내 새끼들을 위한 일이지만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행복과 사랑, 긍정의 힘이 골고루 감염되기를 바라는 듯 행복 바이러스, 웃음 바이러스등의 이름을 붙였다. 바이러스는 어느새 긍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탈바꿈하고 있었다. 사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 쇼크
버크와 토크빌은 또 다른 의미에서 공포의 순기능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집단적으로 두려운 순간이 닥치면 이는 강한 충격이 되어 사람들을 깨우고 생생히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온 이 전염병의 공포는 불행하게도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매일매일 숨 가쁘게 달려가던 우리는 달리기를 멈춘 채 집안에 갇히게 되었다. 달려가느라 힘들어서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르고 살았던 삶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는 불행하고도 소중한 기회다. 나는 이 공포가 부디 사람들을 생생하게 깨어나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그렇게 2020년 봄을 보내고 초여름 무렵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갔다.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가지고 등원하는 모습이 미안해서, 코로나가 너무너무 무서운데도 등원을 시키며 나는 또 울었다. 코로나가 이렇게 3년이나 갈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그냥 내가 데리고 있고 싶기도 했다. (허튼 생각) 물론 하루 이틀 맛본 자유의 꿀맛이 미안함과 무서움을 KO로 이겼다. 나는 빛의 속도로 혹시 또 휴원령이 내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휴원과 유치원 폐쇄를 무서워하는 엄마가 된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이렇게 갈대와 같이 낭창낭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