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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01. 2023

펜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일상의 회복? 

 아이들은 그렇게 조금 늦게 유치원에 입학하고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어린이집에서는 며칠 간의 적응과정을 거친다. 손소독을 하고 열 체크를 하고 방문자 기록을 남기고 마스크로 무장한 채 아이와 어린이집에서 적응기간을 함께 보냈다. 마치 어린이들의 깨끗한 성역에 더러운 내가 침범하는 기분이었다. 올망졸망 다른 아이들도 참 귀여웠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른 아이들에겐 손길조차 내밀지 못하고 처음 보는 나를 향해 기어 오는 아이도 평소 같았음 한번 안아 줄 수 있었을 텐데 조심스러워서 접촉을 피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무서웠던 건 그렇게 사람의 사람다움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적응을 했다. 아니 적응을 시켰다. 당연한 수순으로 엄마를 떨어지며 눈물바람을 했지만, 금방 미끄럼틀을 타며 깔깔 웃고 있는 사진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는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고 돌아선 마음이 안 좋을 엄마를 위해 초반엔 사진을 수시로 보내주셨다. 안심하시라는 뜻. 세심한 배려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몇 달 늦은 감이 있지만 6년 만의 홀몸을 누렸다. 처음 아이들을 떼어놓고 홀몸을 누리던 날. 나는 아무도 없는 집의 고요함을 즐겼다. 아무 소리도, 음악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 냄새 안 나는 무 향의 집안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하루 종일 집에 음식냄새가 나는데 그게 그렇게 싫고 지겨웠다. 첫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던 날엔 점심 메뉴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그냥 빵 하나 먹고 때우고 싶었는데 둘째 임신 중이라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소고기를 구워 뱃속의 둘째와 함께 먹었다. 둘째가 어린이 집에서 처음 점심을 먹고 오던 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먹지 않을 자유를 누렸던 것 같다. 밥이고 뭐고 누워서 뒹굴었다. 어차피 점심만 먹고 하원을 하니 곧 간식을 먹을 것이고 그때 같이 뭐를 좀 먹으면 되니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웠던 그 몇 시간 누린 꿀 맛을 기억한다.


2020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등원과 휴원을 반복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단계가 올라가며 휴원령이 내려오기도 하기도 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2주간 폐쇄를 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확진자가 발생한 어느 지방에 다녀오거나 하는 등의 찜찜한 경우 자체 결석을 권장하기도 하고, 콧물, 기침등의 가벼운 감기증상에도 등원을 하기가 어려웠다.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좋게 생각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정신없는 줌수업에 참여할 일도 없었고, 학습 격차등을 걱정할 일도 없었다. 코로나 관련한 여러 기사들 중에 고액 과외를 붙여 성적이 더 오른다는 상위권 학생들과 학교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해 학습 부진이 더 심해진 하위권 학생들의 학습 격차 기사가 제일 마음이 아팠다. 원래도 공평하지 못한 교육의 기회가 더 불공평해졌다. 우리 집은 학습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유아들이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슬펐다.


아이들은 등원을 하면 하는 대로, 안 하고 집에 있으면 집에 있는 대로 즐거웠다. 택배 박스 하나를 가지고 한참 놀이를 하기도 하고 베란다에 나가서 물을 한 동이 받아 놓고 컵으로 분무기로 한참을 놀다 들어오기도 했다. 킥보드를 타고 나가 나뭇잎으로 벌레 아파트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텅 빈 놀이터에서 꽈배기 그네를 타며 깔깔 거리기도 했다. 가끔 나는 쿠킹 클래스를 열어 주었고, 마루에 튀밥을 뿌려주고 조리 도구를 내어 주어 밥 짓기 놀이를 하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연극을 보듯 아이들의 놀이 만담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나와 신랑이 들어있었고, 선생님도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자주 만나는 어른을 거울로 삼아 따라 하기 놀이를 가장 많이 했다. 내가 저렇게 말하는구나, 선생님이 저런 말투를 쓰시는구나, 맞아 우리 신랑이 저렇게 말하는데. 나를 돌아보았다. 더 예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추리알을 삶아 까라고 주기도 했다. 작은 손으로 한참을 열심히 깠다. 조림 용으로 건질 만한 건 몇 되지 않았지만 까면서 먹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에 안 가도 둘이 놀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던지.  등원을 하게 되면 그것대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발표를 하고 순서를 기다리고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하나를 먹어 보는 것. 그렇게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새로운 노래와 율동을 배워 오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아이들에겐 매 순간, 모든 활동이 놀이이자, 곧 공부였다. 아이들은 내 걱정보다는 코로나의 타격을 덜 받았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40,1 대림 2주일, 인권주일.
아기예수님을 기다리며 보속하고 회개하는 시간,
근 십 개월째 근신처분받고 있는 우리가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피조물로 살기 위해 보속 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코로나 종식 후에 가장 하고 싶은 것 탑쓰리.
성가대찬양. 찜질방세신. 해외여행.
2020.12.

코로나가 완전 종식 된 건 아니지만, 성가대 찬양과 찜질방 세신은 가능해졌다. 해외여행도 가능은 해졌지만 우리 사정이 가능하지 않아 지금은 불가능하다. 시간은 이렇게 지났다. 이제는 엔데믹. 펜데믹이라 단어를 알려주더니 엔데믹이라는 단어도 새로 가르쳐준다.


물리학에서는 특이점이란 것을 지나면 그 이전과 이후의 성질이 같지 않다고 한다. 마치 빅뱅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달라지는 것처럼. 엄마가 되는 일 역시 내 삶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었다. 성질이 바뀌기 때문에 특이점이 오면 그 이후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출산이라는 특이점을 지나 내 삶은 그렇게 예측하기 힘들었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나는 지금껏 내 인생은 첫째가 태어난 전 후로 달라졌다고, 내 인생의 특이점은 첫째가 태어난 2016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인류의 특이점이 2020년 코로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전과 후는 분명 같을 수가 없다. 마치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듯이, 각자 인생의 개인적인 특이점은 다르겠지만, 2020년은 모두에게 특이점일 것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전반적으로 바뀌었다. 조금 아쉽고 슬픈 면도 있지만, 오 예 이 참에 이런 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있었다. 바로 불필요한 회식, 모임, 접대였는데 어쩜 그런 것들은 코로나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벌떡 살아났는지. 정말 생명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래도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비말, 펜데믹, 엔데믹, 이런 어려운 말도 가르쳐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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