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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4. 2022

홈메이드 피자

나의 병후 회복식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쿠킹클래스로,


나는 어릴 때 어지간히 잔병치레를 자주 하던 아이였다. 원래도 작고 마른 아이가 한 번씩 앓고 나면 더 허여멀건 하게 비리비리 해 지니 엄마가 속 꽤나 상했겠지 싶다. 입도 짧아서 뭘 많이 먹지도 않았고 가리는 것도 많았고 잘 먹는다 싶으면 어김 없이 배탈이 나는, 한 마디로 손 많이 가는 애. 그게 바로 나였다. 열병을 자주 앓았다. 열 감기라고 하기도 애매한,이유 없는 고열에, 며칠씩 열에 시달리고 못 먹고 토하고, 그렇게 한겹 더 빠지고 나면 엄마가 해 주던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피자였다.


아이들과 만들어 먹은 피자. 각각 2020년 11월, 2021년 7월.



때는 80년대 후반이었다. (올해 내 나이 서른 아홉). 내 기억에 피자집에서 처음 피자를 먹은 것이 90년대 초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1, 2학년 때이니 80년대 후반엔 적어도 피자는 엄마가 해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당시에 피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토마토 소스와 치즈는 어디서 난 건지 의문이지만 엄마가 후라이판에 버섯이며 토마토 양파등 평소에 잘 안 먹는 야채들과 치즈를 듬뿍 올려 구워서 따뜻하게 만들어주면 내가 참 잘 먹었다고, 그렇게 한끼, 두끼 먹고 나면 허여멀건 하던 애가 다시 혈색이 발그레해 졌다고 엄마가 그랬다. 채소 듬뿍에 치즈 지방과 단백질이 더해진 고 영양식, 고 칼로리식이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테다. 그래서 피자는 나의 병후 회복식 중 하나였다.


그게 벌써 30년전.


오늘의 반죽 재료들.


나도 피자를 만드는 엄마가 되었다. 아니, 아이들과 피자를 함께 만든다. 요새는 또띠아 피자, 식빵 피자등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도 많이 알려져 있고, 사실 사먹는게 더 편하고 저렴할 정도로 피자가 흔해졌지만, 둘째가 어느정도 큰 후로는 나는 어쩌다가 한번 씩 피자를 집에서 만든다. 아이들이 조금 더 어릴 때는 등원 시켜 놓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토핑 올리는 작업 정도만 함께 했는데 이제는 완전 처음부터 같이 한다. 마침 여름이라 발효가 빨라 아침에 반죽을 하여 점심에 피자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둘째가 저러다 계량 해 둔 물을 쏟아서 어쩔 수 없이 또 감으로 알아서 반죽했다. 서로 하겠다 난리인 뽀글머리 둘.


도우도 직접 굽는다. 발표 빵 반죽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도 하고, 솔직히 홈메이드로는 닭고기처럼 쪽쪽 찢어지는 빵의 식감을 살리기가 쉽지 않은데, 피자는 빵의 비중이 적은 편이라 빵반죽 부담이 덜하니 도우 반죽부터 집에서 한다. 애들이 이제 많이 컸다. 오늘은 반죽도 같이 했다. 계량이 무색하게 둘째가 물을 바닥에 쏟았고 첫째는 올리브 유를 콸콸 쏟아 부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홈메이드 피자이니 별로 상관 없다. 우리끼리 먹을거니까. 이스트가 반죽을 부풀게 하는 거라는 걸 알려주었다. 단번에 반죽이 포켓몬처럼 거다이맥스가 되는거냐며 신기해한다. 신이 난 아이들이 밀가루 반죽을 탕탕 내리치고 손으로 조물거리며 이제 제발 하지 말라고 뜯어 말릴 때 까지 도와? 주었다. 덕분에 아주 쫄깃한 피자 반죽이 되었을까. 여름이라 그런지 반죽을 해 놓고 속재료를 준비 해 놓으니 벌써 부풀었다. 얘들아!!!! 거다이맥스로 진화했다.!!!!



어머니, 쫄깃 쫄깃 한 피자를 만들어 드릴게요.



한 시간도 안 걸린 1차 발효.


재료는 냉장고 사정에 맞추는 편인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통조림 옥수수는 꼭 넣어준다. 남편은 깡통을 까서 그냥 주지만 나는 한번 헹군다. 남편은 맛 없어진다고 질색을 하면서도 정작 헹구거나 안 헹군 맛을 구별하진 못한다. 오늘은 가지, 새송이버섯, 며칠 전 캬라멜라이징으로 볶아 둔 양파, 방울토마토, 닭고기 햄, 캔 옥수수, 싹이 난 감자를 도려내어 삶아 으깨 만든 감자무스를 준비했다. 마침 덩어리 치즈가 있어 오늘의 피자는 무려 치즈 크러스트다.


애들은 여러 번 해 봐서 그런지 포크로 구멍을 뚫고 소스를 바르고 재료를 얹고, 먹어도 되는 재료, 안 되는 재료를 구별하여 적당히 먹으면서 요리 활동에 집중한다. 감자 무스를 짜 내면서는 똥싼다며 즐거워하는 영락없는 일곱살 다섯살 사내녀석들.


나는 어릴 땐 미국식 피자헛 스타일 피자를 좋아했는데 커서는 이태리식 얇고 심플한 피자를 더 선호한다. 그런데 집에서 만드는 피자는 만들때마다 뚱뚱이가 된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애들이 평소에 안 먹는 야채를 먹이려 아무래도 이것 저것 더 넣게 된다.



애들이 피자 토핑을 올리기에 열중할 때 나는 오븐을 250도로 예열한다. 그리고 피자 토핑이 마무리 되면 바로 오븐에 넣는다. 고온에 짧은 시간 구우면 화덕피자 처럼 맛있다는데 우리의 피자는 뚱뚱이이니 온도를 220도로 낮추어 일단 15분 굽고 나중에 상황을 봐 가벼 온도와 굽는 시간을 더 조절한다.


홈메이드 피자는 맛있다. 아이들도 고사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뿌듯함에, 그 생 반죽과 식재료들이 요리가 된 신기한 마음을 더하여 맛있게 먹는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홈메이드 피자는 건강한 느낌이다. 치즈를 폭탄으로 때려 넣었는데도 배달 피자보다 덜 짜고 신선한 채소들이 들어가니 먹고 먹이면서도 마음이 좋다. 피자 도우에도 밀가루, 올리브유, 소금, 설탕, 이스트 외에 다른 첨가물은 일체 들어가지 않았으니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는 부담도 덜 하다.




어린 나의 병후 회복식이었던 홈메이드 피자는 애들 말마따나 거다이맥스 메가 진화를 하여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즐거운 쿠킹 시간이 되었다. 밀가루 반죽이 커지는 것, 치즈가 줄줄 녹아 흐르게 된 것, 가지와 버섯도 맛있게 먹는 경험을 했다. 야채를 골라내지 않는다. 이쁘다.


오늘도 대 성공

다음에도 만들어 먹자. 나도 내가 만든거 맛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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