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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4. 2022

나를 위한 초콜릿 쿠키

적당함에 대하여.

몇 년 전 뚱카롱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프랑스의 대표 디저트 마카롱이 왜 한국에 와서, 왜 유독 한국에서만 뚱카롱으로 진화했는가에 대한 심층 기사였는데, 그 기사에 따르면 가성비를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동전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마카롱 한 개 의 가격이 3천원에 육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모름지기 든든하고 배부르게 먹어야 먹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밥 문화, 그리고 단 것, 설탕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큰 편이라 그렇게 단 디저트는 썩 적합하진 않다는 것, 그래서 가성비를 고려해 크기를 키웠고, 크기가 커졌는데도 그렇게 달게 만들 수는 없으니 당도가 낮아졌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뚱카롱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사였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취재를 탄탄히 한 기사라는 것이 느껴졌다. 후반부에는 프랑스 쉐프들에게 우리나라 뚱카롱을 보이며 어떠냐고 물었는데 첫 말은 이건 마카롱이 아니다. 그럼 뭘까? 하니 글쎄? 마카롱 샌드위치? 한 번 맛 보라고 하니 이리 저리 둘러 보더니 나이프로 잘라 포크로 한 개를 찍어 먹었다. 음. 맛이 괜찮다고, 하지만 마카롱은 아니라고 했다. 이걸 돈 주고 사먹겠냐 물으니 물론이라고, 훌륭한 맛이라고 하면서도, 디저트는 보석과 같아서 작고 반짝여야 한다고, 설탕이 많이 들어가면 작고 반짝이는 디저트가 나온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사실이다. 하나만 먹는다면 마카롱의 설탕이 뭐 대수겠는가.


원래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초코초코한 초코 쿠키였다.

작년 언젠가부터 스모어 쿠키, 아메리칸 르뱅 쿠키 라는 주먹만한 쿠키가 종종 보인다. 코스트코 쿠키가 대표적 미국 쿠키로 달디 달면서도 손바닥 절반만하게 큼직 했지만 그래도 두께라도 얇았는데, 이젠 그것마저 더 크고 퉁퉁해졌다. 맛있어서 더 달라고 한다는, I want some more. 에서 유래되었다는 마시멜로가 들어간 두툼하고 큼직한 쿠키는 여러가지 Variation 을 거치며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다. 하나만 먹고도 배 부르려고 이렇게 만들었다.


영유아기의 애를 키우는 애 엄마에게, 더군다나 작년, 재작년의 긴장 털리고 기 빨리는 코로나 사태와 가정보육을 맞이한, 젊은 시절 까페에서 달다구리 좀 먹어 봤다는 우리 애 엄마들에게 (나에게) 그 아메리칸 르뱅 쿠키는 한줄기 빛 과도 같았다. 틈틈히 당 떨어지고, 애들 밥(유아식, 이유식), 내 밥(으른 밥)이 따로이던 시절, 애들 밥 먹이고 나면 내 밥은 죽어도 먹기가 싫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오히려 저체중이 되었는데, 애들이 남긴 이모저모들을 주워 먹다 보면 내 밥먹을 밥맛이 뚝 떨어져 제대로 식사를 안 챙겨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언니가 한 말이 있는데, 애들 밥 먹이고 나서 이건 먹은 것도 안 먹은 것도 아니라서 안 먹은 셈 치고 처음부터 다시 먹으면 살찌고, 대충 먹은 걸로 먹은 셈 치고 그걸로 말아버리면 살이 빠지는 거라는. 나는 딱 후자여서 밥양은 애들 밥 수준으로 줄었고 그 자리를 쿠키로 채웠다.



하나만 먹기 힘들 수도 있고, 밥도 먹고 이것도 하나 다 먹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오호라. 이리저리 알아보니 만드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애들 쿠키는 모양이 중요해서 밀대로 밀어서 모양틀로 찍고 위에 뭐로라도 장식을 해 주어야 하는데 이건 뭐 슬슬 섞어서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떠 동그랗게 말아 놓으면 알아서 퍼지며 구워지고, 동글동글한 반죽 그대로 냉동해 두었다가 자연 해동해서 또 구워 먹어도 되는 거였다.


내 쿠키가 훨씬 쉽다. 애들 쿠키는 손이 많이 간다.

초콜릿 르뱅쿠키. 난 그것에 한동안 중독이었다. 대충 아침 때워서 등원 시킨 후 200 그람 짜리 쿠키 하나를 앉은자리에서 ,혹은 왔다 갔다 하며 오후 내내 먹다가 저녁을 차리면 배도 안 고프고, 단 거 먹어 좋고, 일석 이조 같았다. 일타 쌍피. 오로지 나를 위한 초콜릿 쿠키였다. 내가 먹을 거니 설탕양을 줄이는 연구를 할 필요도, 밀가루 대신 밤가루나 아몬드 가루를 섞어야 할 것 같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점심으로 그것만 먹고 살았다. 나의 엄마가 알면 기절 할 일. 그런데 어쩌랴, 내 밥 내가 차려 내가 먹고 내가 치우는 게 너무 너무 너무너무 싫은데 말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것만 먹었더니 종국에는 질려서 이제는 잘 먹지 않는다. 질리기도 했지만, 코로나 백신 맞고, 확진 받고 면역력이 뚝 떨어져 이제는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먹으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매운 것 빼고는 얼추 은 반찬을 먹을 수 있어진 것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쿠키만 먹고 살면 골다공으로 뼈가 없어질 것 같은 걱정이 들어서. 주식으로는 끊은지 꽤 된 것 같다. 오늘 문득 생각난 것 보니.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마카롱이 너무 달다며 뚱카롱으로 진화하여 당도라도 줄이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스모어 쿠키는 왜 단거 그대로 크기까지 커져서 사랑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 것에 그 만큼 익숙해지고 무뎌졌나, 아니면 관대해졌나,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의 입맛이, 식문화가 바뀐 걸까. 최근 몇 년간 저가의 커피숍, 버블티 가게들이 많이 생겼는데  어린 학생들이 엄청난 당도의 벤티 사이즈 음료와 이런 쿠키를 하나씩 주문해 먹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드는 생각 하나, 아니 애들 용돈을 얼마씩 줘야하는 건가. 드는 생각 둘. 저렇게 단거 먹고 집에 가서 밥은 먹니 늬들. 드는 생각 셋, 이렇게 어릴부터 저렇게 단거 먹으면 건강에 좋을거 하나도 없는데. 난 늬들만큼 어릴 땐 안 먹었다 얘.


참깨 베이스의 발바닥 쿠키는 르뱅 쿠키에 비하면 건강한 간식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입맛도 변하고, 식재료도 변하고, 식문화도 변했다. 나의 식습관도 건강한 식습관은 못 되지만, 요즘 음식들이 너무 자극적인 것 같다는 걱정은 든다. 단 건 더 달아지고, 매운 건 더 매워지고, 매운거 먹고 단 거 좀 먹어 줘야 국룰이라며 주류에 포함되고, 양배추 쌈에 잡곡밥, 단호박 찜을 좋아하면 관리하는 정 없는 사람이 되곤 한다. 괜한 걱정일 수도 있다. 나도 자극적인 음식 어지간히 좋아하던 사람인데, 임신 출산 육아 하는 동안 입맛이 애들만큼 순해졌으니, 그래 그런 생활도 길어야 몇 년 일수도.


아메리칸 르뱅 쿠키를 생각하며 별 생각을 다 하는 밤이다.

내가 만들었던 그 쿠키가 먹고싶다. 조만간 굽게 생겼다. 아니다. 이젠 애들이 커서 엄마꺼 커피 맛이라고 뻥을 칠 수 없을 테니 그걸 차마 애들 하고 나눠 먹을 수가 없어 굽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애들도 나 처럼 쿠키만 먹고 밥을 안 먹는 꼴은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온전한 나의 버전과, 엄마의 버전, 두 가지의 나로 살고 있다.


즉. 나는 되지만 너희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 중에 하나. 쿠키로 식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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