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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7. 2022

카레.

나의 카레는 어디에 속할까. 

오늘 저녁은 카레다. 바로 한 그릇 요리, 일품 요리. 각종 채소와 고기를 넣어 뚝딱 만들어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맛도 좋고 영양도 챙기는 카레, 하지만 우리집 카레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요괴다!! 요괴가 나타났다!!! 하고 아이들을 불렀다. 밥먹어라 보다 더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순한 맛 카레도 맵다고 한다. 그럼 유치원 급식으로 나오는 카레는 어떻게 먹는지 물어보니, 밥 위에 얹어 주면 밑에 맨 밥만 파 먹고, 아니면 반찬 칸에 조금 배식 받아 찍어 먹는 수준으로 맨 밥만 먹는 것 같았다. 맵다고 안 먹으면 굳이 집에서는 안 해 먹이면 그만이지만 카레는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카레 재료는 보통 냉장고 사정에 맞추는 편이지만 꼭 들어가야 하는 재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볶은 양파다. 그냥 볶은 양파가 아니다. 두시간 반 정도 달달 볶아 캬라멜라이즈드 된 달달한 양파다. 이미 손이 많이 갔다. 그래도 그 양파를 넣으면 단 맛이 많이 나서 매운 맛이 중화된다. 


양파가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 볶은 양파는 큐브에 냉동해 뒀다가 파스타, 짜파게티, 볶음밥등에 넣어주면 뚝딱 풍미를 높여주는 재료가 된다.



오늘의 카레 재료는 며칠 전 볶아 둔 양파에 채 썬 당근, 채 썬 새송이 버섯, 그리고 물 양은 방울 토마토를 갈아서 맞추었다. 대략 물 100 밀리 정도만 넣고 650 미리의 토마토물을 만들어 두었다. 물의 정량은 700밀리 인데 나머지 50 밀리는 마지막에 우유나 생크림을 한 두바퀴 둘러 넣어서 맞춘다. 그것도 매운 맛 중화에 도움이 된다. 대충 완성이 되면 불에서 내려 휘휘 저으며 한 김 식힌 후 달걀 두개 정도를 풀어서 조금씩 넣으며 섞는다. 그러면 달걀 넣은 티가 하나도 안 나고 매운 맛 또한 중화되며, 부족한 단백질을 채울 수 있다. 뜨거울 때 계란을 잘 못 풀면 스크램블드 에그 카레라이스가 된다. 뭐 맛은 똑같으니 이래저래 시도해 봐도 나쁘지 않다. 참고로 나는 카레에 고기를 거의 넣지 않는다. 애들이 잘 안 먹기 때문에. 


오늘의 카레 재료, 카레 가루 대용량이라 100그람을 계량했다. 사실 108그람. 칼계량은 언제나 힘들다. 


내가 카레를 만드는 과정은 빼기의 과정이다. 매운 맛을 뺀다. 양파 볶기부터 매운 맛을 빼야 한다. 눈물 콧물 쏟게 만들며 채 썬 양파들이 볶고 볶고 볶으며 연해지고 달아진다. (해본 적은 없지만) 나쁜 남자 길들이는 과정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나를 울게 만들던 그 녀석, 내 손에 길들여져 연해지고 달콤한 사랑을, 아니 항산화효과를 선물한다. 카레를 만들면서도 빼기는 계속 된다. 달달 볶은 달달한 양파, 각종 채소를 볶으며 매운 맛을 중화시킨다. 생크림과 우유로 매운 맛을 한 번 더 뺀다. 그걸로도 모자라 달걀을 풀어 조금씩 섞으며 매운 맛에 KO를 날린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빼기의 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이 엄지척 하는 카레가 완성된다. 사실 엄지척은 카레 보다는 카레위에 올라간 토핑에 하는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고기가 안 들어가는 대신 토핑을 올려준다. 그것 역시 매운 맛을 빼는 삶은 달걀, 혹은 계란 후라이, 여름에는 밤호박 구이, 겨울에는 군 고구마 큐브 크루통(?) 이 대부분인데, 요즘엔 소시지나 용가리 치킨도 단골 토핑이 되었다. 일종의 미끼상품처럼 좋아하는 반찬이 토핑으로 올라가면 카레를 더 잘 먹는다. 나는 토핑 따위 필요 없이 후추 톡톡, 신김치면 족하다. 


최근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레시피라며 신라면에 그릭 요거트, 레몬즙, 허브 등을 넣어 똠냥꿍 스타일로 만들어 먹다는 인터넷 짤을 본적이 있다. 그것에 기겁하며 우리 한국인들은, 아메리카노를 극혐하는 이탈리아인의 마음을 알겠다며 정체성이 모호해진 신라면을 애도했다. 


비슷한 경우인 듯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짜장면이 그렇다. 북경에서 먹는 북경식 짜장면 (炸酱面)은 그냥 국수 위에 볶은 춘장이 소량 올라간 미지근한 비빔국수 느낌인데, 한국에 와서 온갖 화려한 속재료가 불 맛 까지 입고는 변화에 변화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왠지 변이에 변이 란 말이 더 익숙하다)를 겪으며 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내가 아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의 炸酱面 보다 한국식 짜장면이 더 맛있다고 했다. 


나의 카레는 과연 어디에 속할까. 


오늘의 토핑은 단호박과 삶은 계란, 크랜베리, 새우튀김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카레가 맵다고 생각 한 적이 별로 없다. 20대의 독하디 독한 혀에 카레가 매울리가 없었다. 심지어 향신료라고 생각 하지도 못 했다. 카레에 후추를 뿌리고 온갖 파, 마늘, 생강이 범벅이 된 김치를 얹어 먹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내가 이런 저런 이유로 순한맛 카레만, 더 순하게 만들어 먹는다.


보통은 고형 숙성 카레 순한 맛을 쓰는데 오늘은 일반 가루 카레 순한 맛을 사용해서 매운 맛 빼기가 조금 더 신경 쓰였다. 미세하게 가루 카레가 더 매웠다. 카레가 매운 줄도 모르던 나의 미각은 아이를 낳고 매운 맛 감별에 특화된 기미상궁마냥 예민해졌다. 나의 위장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할 지 모르겠으나, 삶의 재미는 뚝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저녁, 카레. 

한 끼 잘 때웠다.때웠다 라고 표현 하기 억울 할 만큼 구석구석 손과 정성을 들였지만, 식탁에 떡하니 차려낸 밥상이 아닌, 한 그릇에 다 때려 넣고, 올려 놓은 한 끼라. 때웠다고 말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나의 카레들. 그저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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