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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8. 2022

1999년생 띠부띠부실

포켓몬 빵은 만드는거 아니야.  

대답해 드리는게 인 지 상 자!! - 둘째- 나는 봐도봐도 저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막눈이다. 그림, 만화, 캐릭터를 보는 눈이 정말 무딘데, 아마 그쪽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작거나, 아니면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아 거의 새 것 수준을 유지하고 있진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만화를 잘 못 본다. 다 그게 그거 같다. 그림으로 말하는 미세한 변화, 감정 등을 캐치하기는커녕, 캐릭터 자체를 구별 하는 것이 힘드니 그냥 안 본다고 하는 것이 맞을것이다. 소싯적 엠티를 가면 종종 고스톱 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짝도 못 맞추는 나는 그저 술이나 마시며 구경을 했고, 눈에 불을 켜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기만의 징크스에 예민해지는 플레이어들도 나에게는 패를 잘도 보여주었다. 어차피 봐봐야 모르는 까막눈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40년 가까이 화투도 못 배울 만큼 그림,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20년 넘게 간직한 포켓몬 스티커들. 아빠가 보물상자를 오픈했다. 아빠의 보물들



포켓몬 빵이 부활했다. 내가 중학교 다닐 즈음 포켓몬 빵이 대 유행을 했는데, 나는 빵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포켓몬 캐릭터에도, 띠부실이라고 하는 그 스티커에도 관심이 없었다. 빵이 먹고 싶으면 다른 빵도 많았고, 포켓몬 중에는 아는 애들이 없었고, 스티커를 모으는 아기자기함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올해 포켓몬 빵이 다시 나왔다. 나는 거기에 얽힌 추억이 없으니 큰 감흥이 없는데 이번에 나오는 포켓몬 빵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우리 어른들과 지금 아이들이 함께 열광하는, 빵 이상의 존재인가보다. 포켓몬빵을 도통 구하기가 힘드니 애들 아빠가 비장의 무기를 오픈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자기가 중학생일 때 모아 둔 띠부 띠부실을 공개한 것. 엄청난 보물을 보여 주 듯 으쓱대며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해 주고는, 뒤돌아서 어찌나 아까워하던지. 여하튼 우리 아이들은 무려 90년대에 태어난 묵고 묵은 띠부실을 구경하고, 선물로 받았다.


오래 된 띠부실은 스티커로서의 기능을 거의 잃었다. 그 어디에도 붙일 수 없는 스티커라니. 그저 관상용으로 바라봐야할 뿐, 그마저도 슬쩍 잘못 만지면 그냥 떨어져 나간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스티커가 스티커가 아니게 될 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니 침 묻은건 니가 먹으렴.


동네 친구들을 보니 포켓몬 초코빵을 주로 많이 먹길래, 그냥 집에서 만들어 보자 하고 생각했다. 사실 초코빵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띠부실이 문제일 뿐. 그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미지들을 출력해서 네임 스티커에 풀로 붙이고 그걸 띠부실이라고 하자고 하니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온 방에 풀로 떡칠을 했다.애들이 캐릭터들의 이름을 줄줄 꿰는데 하나도 공감 해 줄 수가 없어서 조금 미안하더라.


수제 포켓몬빵. 선물용.


초코빵을 굽고, 수제 띠부실을 한번 포장 하여 빵 포장 봉투안에 함께 넣었다. 무슨 스티커가 들었나 겉에서 보이지 않도록 스티커 두 개를 마주보게 넣어서 까는 재미가 있게 했다. 우리가 집에서 먹을 것은 아이들이 초코렛과 아이스 블루베리를 침과 함께 토핑으로 얹어 만들었고,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로 한 것은 토핑 없는 플레인 초코빵에 수제 띠부실이 두 개 씩 들어갔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초코빵을 싫어 할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



띠부띠부실은 아빠 수염처럼 까끌거려야 하는데 우리가 만든 건 너무 매끄럽다는 아이들.


그렇게 포켓몬빵 에피소드가 끝나는듯 했다. 아니, 끝내려고 했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다른 엄마들은 포켓몬 빵 사주려 당근거래도 하고, 몇 시간씩 줄도 선다는데,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는 게으른 엄마이자 캐릭터 감성을 이해 못하는 막눈이 엄마인데 그래도 스티커는 늬들이 만들면서 즐거웠고 빵은 파는 것보다 건강하고 맛있는 맛이니,  그거면 됐다.


하고 있었는데 오늘 큰아이가 말한다.


엄마 코스트코에 아침 일찍 가면 한 사람당 여섯개씩 살 수 있대. 엄마, 우리 유치원 보내고 좀 갔다 와봐.


왜?? 수제 싫어? .


붙임


오픈런에도 실패하여

무려 당근거래를 했다. 아빠 최고.


나는 대기업에 상술에 죄지우지 된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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