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싸움 앞에 무효인 오늘의 싸움.
한산: 용의 출현 을 조조로 보고 왔다. 진작부터 보고 싶었지만 이래저래 또 못 보게 되겠거니 하고 있던 차에 왠일로 아침 부지런을 떨어 다녀왔다.
역시, 이순신이었다.
큰 싸움을 하는 장군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힘있는 목소리로 제압했다. 포로들이 난동을 피우고, 동료가 성가시게 굴어도 분노하지 않았다. 진중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일의 경중을 따져 다음을 도모할 뿐이었다. 일희일비, 경거망동, 부화뇌동 이런 말들은 당연히 장군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종국엔 죽었지만 승리했고, 영원히 살았다. 정말 불멸의 이순신. 싸울 때마다 새로운 싸움이 힘겹고, 두렵고, 다급했다지만 장군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칼의 노래에서 내 죽음이 자연사라고 하던 이순신이 떠오른다. 적장의 칼에 죽는 장수의 죽음은 자연사. 그 자리지킴이 얼마나 든든하던가. 이런 위인들이 계셔서 내가 지금 한글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왜 이렇게 싸움 얘기가 구구절절 나오느냐 하면, 오늘 아침에 애들 하고 싸웠다. 이유는, 차려준 아침이 맵다며 떼를 부리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나는 장군이 아니라 큰 소리를 내었고, 분노했고,마침내 뚜껑이 열려 전장에 나간 화포마냥 마구마구 화를 쏘아댔다. 의 義도 불의 不義도 아닌 울화통 때문에.
아이들의 떼부림에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는 건 요즘 애들 키우며 오은영 박사님을 아는 부모라면 누구나 알 만한 상식이 되었지만, 그 상황에 그렇게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아 그랬어야 했는데. Should have PP, 그 영문법을 떠올리며 후회를 한다. 딱 그 상황에 쓸 수 있는 문법 패턴이다.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버렸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미뤄 놓고 영화관으로 뛰쳐나갔는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을 만나고, 그의 싸움을 보고, 힘있는 목소리, 단호한 눈빛, 일의 경중을 따지는 지혜를 보고 이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왔다.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법을 알려주자.
아이의 그림일기에 편지를 써 주었다. 그러자 아이도 답장을 써 주었다.
그리고 무려 세번이나 읽었던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항상 싸우지만 매번 싸움이 두렵다는 장군을 만나고 싶어서. 그 난중일기에 비하면 나의 마음은, 뭐 평온하기 그지없는(그지 같은) 평화. 그 자체 이려니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너와 나의 싸움은 계속 될 것이지만, 나도 이 싸움이 매번 처음 같고 그래서 지난 싸움은 다가올 싸움앞에 무효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