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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an 17. 2023

집밥의 늪.

뫼비우스의 띠?

오늘 아침 로켓 배송으로 장을 본 것을 냉장고에 넣었다. 지난주에 장을 본 것들을 대충 다 먹어서 냉장고를 다시 채운 것이다. 아이들의 방학이 지나고 냉장고는 꽉 차지 않은 약간 할랑한 상태를 유지 중이다. 이번 주말에 설이 있어 다시 음식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고기, 생선류는 사지 않았다. 냉장고가 꽉 차면 든든해서 기분이 좋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냉장고가 채워지면 마음이 무겁다. 저걸 만들어서 먹고 치워야 하는 것 역시 내 몫이기에, 사실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요리한 음식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브런치에 발행을 하고, 가끔은 메인에도 떠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는다는 게 아직도 좀 미스터리하다. 


지난주에는 시금치나물을 넉넉히 만들었다. 시금치를 나물 반찬으로도 먹고, 김밥도 싸고, 김밥을 또 넉넉히 싸서 이틀 후에 김밥전으로 부쳐서 또 먹었다. 바로 싼 김밥도 맛있지만, 김밥전도 별미이다. 김밥전을 부치려고 김밥을 싸는 건 아니지만, 김밥 쌀 땐 싸는 김에 조금 넉넉히 싼다. 하루이틀 지나 김밥전을 해 먹으려고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김밥의 속재료에 계란이 빠졌다. 계란 부치기도 귀찮고 어차피 김밥전에는 계란이 들어갈 테니, 이차 저차 한 손 줄여 나 조금 편하려고. 시금치 나물이 넉넉히 있을 때에 시금치의 초록을 넣어 잡채도 만들었다. 잡채는 한번 먹을 양의 당면만 삶아서 한 번 맛있게 먹고 끝냈지만, 잡채의 속재료, 채소와 고기들은 넉넉히 볶아두었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잡채를 한 번 더 해 먹을까 하다가, 야채에 쫄면 양념장을 넣고 매콤 새콤하게 비벼서 쫄면 없는 쫄면으로 먹었다. 그것으로 시금치와 잡채 재료는 완판. 지난주에는 무려 아귀탕을 만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집에서 홍합까지 넣어 넉넉히 끓이니 국물이 좀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냉장고에서 차게 굳은 아귀탕의 국물은 꼬리곰탕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탱글 탱글한 젤리가 된다. 콜라겐이 듬뿍 들은 보양식이 맞는 모양이다. 그것을 털어 넣어 미역국을 끓였다. 소고기도, 참기름도 넣지 않은 맹 미역국에 아귀탕 남은 국물을 넣으니 감칠맛이 끝내주는 맛있는 미역국이 되었다. 그것으로 아귀탕도 온전히 다 먹어 치울 수 있었다. 국물이 남은 것이 버리긴 아깝고 다시 먹기엔 조금 애매했었는데 그렇게 미역국으로 다시 살아났다. 회귀,라고 할 수 있을까. 



음식을 버리지 않고 다 먹으면 기분이 참 좋다. 우리 집은 외식과 배달음식의 횟수는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네 식구 장 보는 식비는 만만치 않게 드는 편인데 (가계부를 쓰지 않아 얼마가 드는지, 다른 집보다 적은 지 많은 지도 정확히 모른다), 비싸게 장을 봐도 집에서 음식을 하면 알뜰하게 먹을 수 있고, 애들 입맛에 맞추어 주기도 편하며, 간 조절이 가능해서 덜 맵고 덜 짜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나는 소화불량과 친구처럼 함께 사는 어쩔 수 없는 소식좌인 데다, 신랑은 바깥에서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 집에서라도 조금 덜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하니, 이 정도면 귀찮아도, 억울해도 밥 할 맛이 나야 정상인가. 나는 속이 안 좋아 못 먹는데 요리를 하려면 억울하긴 하다. 그래도 식당에 가서 사 먹고 더 안 좋아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밥 하기가 귀찮은 건, 지나간 끼니가 무색하게 다시 돌아오는 끼니들이 야속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가 한 번 음식을 좀 넉넉히 하여 요리조리 돌려 먹는 꾀가 나는 것이 말이다. 



 어제저녁을 해서 먹고 나니 냉장고가 조금 휑 해졌었는데 다시 이것저것들이 들어가 자리했다. 이번주가 설 연휴이니 아이들과 꼬치 전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이번엔 좀 컸으니 꼬치에 김밥재료들만 꽂지 않고 버섯과 쪽파 같은 채소도 좀 꽂아볼 생각으로 쪽파,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그리고 무 하나, 다 먹은 시금치의 초록을 대신할 브로콜리 두 개, 그리고 소시지와 단무지가 자리했다. 그리고 시댁에서 얻은 김치, 과일, 계란이 초란 포함 두 판이나 있어서 냉장고는 꽤 묵직하다. 꼬치전 재료들을 손질하고 남은 자투리 채소들로 이번 주에는 아마 볶음밥이나 계란말이가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참치 캔 하나를 까서 다진 채소와 계란을 넣고 전을 부쳐주어도 냉장고 털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무는 무나물을 하거나, 어묵국을 끓여 샀을 때 얼른 먹어야지. 냉장고가 채워지면 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냉장고를 열심히 털어서 비워놓고 또 채워 넣으며 머리를 싸매다니, 장을 안 볼 수도 없고, 참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는 집밥의 늪, 집밥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나는 아직도 냉장고, 주방이 내 것 같지 않은 초짜 주부이다. 세월이 더 흘러도 주부 고단수가 되고 싶진 않다. 나만 힘들지 뭐. 간단한 집밥이란, 뚝딱 만들어 내는 간단한 음식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한 집밥 한끼란, 쌀씻기부터 설거지까지 모두 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이다. 나는 그저 오늘도 골골대고 투덜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집밥이란 누군가의 수고와 정성이 필수요소로 하는 고귀한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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