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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an 13. 2023

내가 아귀를?

하얀 아귀탕과 빨간 아귀찜, 하양과 빨강 사이.  


일주일에 한 번씩 아파트에 알뜰장이 선다. 생선가게도 들어오는데 생선은 보통 상비식품으로 냉동된 구이용 생선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는 것이 대부분이라 이토록 또렷한 눈깔의 생물 생선을 볼 일이 나도 아이들도 많이 없었다.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아귀, 크고 물컹거리고 못 생긴 아귀 말이다. 엄마가 고등어, 삼치도 이름표가 없으면 구별을 잘 못하지만 아귀는 알거든, 얘들아, 저게 아귀야 엄청 크지? 애들은 저게 아귀 거나 말거나 누워있는 생선들의 자태에 정신을 빼앗겼다. 한번 찔러보고 만져보고 싶어 죽겠는 눈치다. 신기하겠지, 나도 어릴 때 엄마 손잡고 수산 시장 가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우리 엄마는 물어보는 생선 이름을 다 알려 주었는데, 나는 어릴 때 그렇게 물어봐 놓고도 생선이름을 지금도 잘 모른다. 아무튼, 누워있는 많은 생선들 중에 아귀에게 꽂혔지만 요리할 자신이 없어 가자미만 몇 번 사다가 구워서 먹었다. 사장님께서 손질을 다 해주시니 끓는 물에 데쳐서만 먹어도 된다지만, 아귀를 만지는 나의 모습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저, 우리 엄마였음 저걸 사다가 요리해 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과 예전에 먹었던 매콤하니 맛있었던 아귀찜에 대한 기억만이 소환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귀찜 먹은 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아귀, 아귀, 꼭 쇼핑몰에서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은 옷 한 벌처럼,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고 더 생각이 안 나면 안 사도 되는 옷이지만, 잊히지 않으면 그냥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운 법, 그래서 일주일 넘게 계속 아른거리던 그 아귀를 샀다.  그까짓것, 한 번 해 보지 뭐.  


안녕? 


흐물거리는 아귀를 깨끗하게 한 번 더 씻었다. 큰 생선이라 살도 많지만 뼈도 억세다. 아귀를 토막 치시며 사장님께서 위는 더 깨끗이 씻으라 하셔서 더 신경 써서 깨끗이 씻었다. 내가 아귀의 위를 만지게 되다니, 아줌마 지수가 크게 상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무, 파, 마늘, 홍합, 바지락을 넣고 팔팔 끓이다 아귀와 곤이를 투하했다. 비린 맛을 잡으려 맛술을 한 숟갈 넣었고, 다시마 간장을 조금 넣었다. 애들에게 살을 발라 주고 남편과 나는 사장님께서 챙겨 주신 매운탕 양념을 넣어 얼큰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맑게 끓인 아귀탕도 맛이 훌륭해서 그냥 먹기로 하였다. 뼈가 큰 생선이라 그런지 차가운 몸을 뜨끈하게 데워줄 몸보신의 비주얼을 뽐내며 국물이 곰탕처럼 뽀얗게 우러난다. 잔 가시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살을 발라주는 것도 어렵지 않다. 살이 부드러워 애들도 잘 먹는다. 매콤한 양념에 콩나물 듬뿍 넣은 아귀찜만 먹어보았는데, 맑은 아귀탕도 담백하고 맛있다. 



아귀탕을 먹다 보니 종로 낙원상가 근처의 아귀찜 집에서 매콤한 아귀찜을 안주로 차가운 소주를 들이키던 20대의 어느 겨울날이 생각났다. 무슨 일 때문에 술을 먹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야 술을 먹던 시절이 아니고 그냥 술을 먹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매운 것, 차가운 것, 술, 다 못 먹게 되었는데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아귀찜의 콩나물을 오물거렸을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귀엽다. 그때의 나를 만나 함께 술 한잔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술을 정말 못 먹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보다 열다섯 살은 많으니, 한 잔으로 계속 꺾어 마셔도 뭐라 할 사람 없겠지. 대신에 아귀찜을 대자로 사줄게, 콩나물 말고 아구살을 먹으렴, 그리고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어. 스물 다섯 언저리를 살던 나의 이야기. 지금은 생각조차 안 나지만, 나름 소주를 계속 들이켜야 했던 그 시절 나의 고민들.


곧 없어진다는 한국 나이이지만, 내가 올 해로 마흔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뭐? 마흔? 나는 내 나이 마흔을 밖에서만 사 먹었던 빨간 아귀찜이, 하얗게 되어 내 집으로 들어온 나이로 기억하려나 설마. 이 하얀 아귀탕이 다시 빨개질 무렵이면, 우리 아이들이 스물 다섯 언저리가 되어 밖에서 아귀찜을 사 먹으며 또래들과 술잔을 기울인텐데, 그러면 나는 어떤 모습의 사람일지 모르겠다. 이십 대의 내가, 나이 마흔이 된 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국물이 아주 맛있었다. 

 맑은 아귀탕 한 그릇을 먹으며 빨간 아귀찜을 추억하니 몇 십 년을 왔다 갔다 한 기분이다. 맑은 아귀탕이 맛있었지만, 그래도 빨간 아귀찜이 그리운 모양이다. 조만간 한번 아귀찜을 한번 먹으러 가야겠다. 순한 맛으로, 소주도 못 먹겠지만, 그래도 빨개야 그래 이 맛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이란 추억도 담고 있으니, 그 추억의 맛도 함께 먹어줘야 음식에 대한 예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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