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Jan 11. 2023

소중한 나의 손목.

시금치나물과 바꾸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처음 한 경험 중에 하나가 바로 손목과 손가락이 아픈 경험이다. 예전엔 손목이 아플 일이 없었다. 손가락도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몸살을 앓아도 고열에 시달릴 뿐, 다른 데도 아니고 손목과 손가락이 시큰거리고 아픈 일은 없었다. 학창 시절, 수련회를 갔다 온 후, 아니면 체력장을 마친 후 허벅지나 허리가 뻐근한 적은 있었지만 손목과 손가락은 아픈 적 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손목이 왜 아파? 손가락은? 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수시로 시큰거리는 곳이 손목과 손가락이다. 첫 아이를 낳고는 약해진 관절로 아기를 매일 받치고 안아주니 아팠고, 계속해서 물질을 하며 힘을 써야 하니 쉬고 나을 틈이 없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났으니, 내 손목과 손가락은 더 수시로 아프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지만 한번 약해진 곳은 다시 튼튼해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아이들은 엄마에게 매일 안긴다. 안아줄 만하다. 여덟 살 된 첫째가 18킬로, 둘째는 16킬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적게 나가는 몸무게가 이럴 때는 뭐 괜찮다. 더 크면 진짜 못 안아줄 테니.


사정이 이러다 보니 나는 손목과 손가락을 무척 아껴 쓰게 되었다. 불필요하게 손목에 힘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손빨래, 아들 둘에게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것을 진작 포기했다. 흰 양말? 안 산다. 하루 만에 똥색이 되어 돌아오니. 아이들과 볼링장엘 가도 나는 볼링을 치지 않는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볼링수업을 들었는데, 학교 근처의 볼링장에 가서 볼링을 한 두 게임 치는 것이었다. 아, 그때 참 재밌었는데, 발걸음을 하나, 둘셋 하며 볼링공을 쫙 밀어 넣으며 절반은 도랑으로 빠지고, 절반은 볼링핀을 때리는, 나의 볼링 실력은 일관성 있게 일관성이 없었지만, 스트라이크를 때리든, 도랑으로 빠지든 볼링은 참 재미있었다. 그러던 내가 볼링을 치지 않는다. 매일 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무거운 볼링공을 들었다 놨다 하면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다. 한 때 나의 스포츠와 여가 생활이었던 볼링이 이제는 손목 낭비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도 볼링장엘 갔는데 딱 한 번만 쳤다. 11호짜리 공을 들고서. 어차피 애들이랑 재미로 간 거니 누가 치든 상관이 없었기에 엄마는 딱 한 번, 그 한 번으로 스트라이크를 쳤다. 그리고는 끝. 엄마 손목 아파서 더는 못 쳐.



 나는 손목을 이렇게 아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목을 마구 써야 하는 날이 있다. 바로 나물 짜는 일. 나물 짤순이라고 불리는 스퀴져를 사긴 했는데, 손으로 꽉 짜는 것만큼 물기를 짜주지 못한다. 오늘은 포항초가 세일하길래 두 봉지나 사 와서 데쳤다. 시금치 된장국을 끓일 것은 짤순이로 한 번만 짜낸다. 그리고는 국을 끓이거나 다음에 국 끓일 것을 소분하여 냉동 보관. 그리고 나물로 무칠 것은 손으로 한 번 더 꽉 짰다.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부탁하는데 대부분 평일 낮에 반찬을 만들다 보니 그럴 일이 많이 없다. 계획을 세우고 주말이나 밤에 부탁할 걸, 이런 무계획의 삶이라 손목이 고생한다. 참고로 빨래도 그렇고 나물도 그렇고 내가 온몸을 바쳐 짜낸 물기도 남편이 한 번 더 짜면 물이 내가 짜낸 것만큼 더 나온다. 그래서 더 남편이 해야 하는 일인데, 저 나물 짤순이라는 것도 왜 짤순이라 하는지, 짤돌이 가 더 낫지 않을까. 저 제품의 공식 이름은 <쭉 짜보게>이지만 저런 종류의 제품들을 보통 나물 짤순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짤돌이 가 더 나은데.


 아무튼, 오늘 시금치를 짜내며 손목을 한 사흘 치를 미리 땡겨다 다 쓴 기분이다. 내 손목과 바꾼 시금치나물, 제 철을 맞아 아주 달큼하니 맛있다. 그러고 보니 시금치나물에서 단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예전에는 몰랐던 느낌이다. 나물이 달다니, 그런데 정말 제철을 맞은 채소는 달다. 지금은 겨울이니 시금치가 달고, 무가 달고 배추가 달다. 예전에 몰랐던 시금치나물의 달콤함과, 역시 예전에 몰랐던 손목의 시큰거림을 바꾼다. 시금치가 내 손목을 거쳐 맛있는 나물이 되었으니, 이걸로 김밥도 싸고, 오랜만에 잡채도 만들 생각이다. 냉장고 색색의 파프리카와 당근이 있다. 거기에 시금치의 초록을 더해 잡채를 만들면 예쁘고 맛이 좋겠다. 애들은 당면만 먹겠지만, 어쩌다 얹어주는 채소를 먹기도 하니 그거 하나 바라고 나는 채소를 만진다. 손목을 아끼지 않고.


#내돈내산시금치

#내돈내산짤순이




매거진의 이전글 굴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