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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24. 2023

내가 거저 받은 것.

세 권의 책 이야기.


1.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남방의 포로감시원, 조선인이지만 일본군 소속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본군의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감시원이다. 월급을 받기로 한 2년 계약직이었고, 동남아 지역에서 전쟁을 하며 포로로 잡은 서양인, 주로 화란인(네덜란드인)들을 수용한 수용소에서 포로들을 감시하는 일을 하는 일본군 소속이었다. 국적은 모르겠다. 분명 조선인이었으나, 일본군 소속이었고, 일본군의 일을 했으며 너는 코리안이지? 하고 묻는 대답에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다.라고 대답하고는 죄책감을 느낀다. 30년대 후반, 45년의 일본 항복까지의 일인데 비슷한 시기를 다룬 책들 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제강점기에 나고 자라 창씨개명까지 하며 민족적 자의식이 흐려져 있었고, 만주나 중국 등지에서 활발히 있었던 독립운동에 대해 철저히 은폐한 일제의 통치로 독립에 대한 의지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한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무장투쟁, 전쟁, 공출, 노역, 징병으로 배우고 소설 읽은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 소설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이었다. 해방을 맞았으나 포츠담 선언의 마지막 조항, <연합국의 포로를 학대한 자들을 포함해 일체의 전쟁 범죄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가해질 것이다.>에 포로감시원들은 다시 갇혀버린다. 조국은 해방을 맞았지만, 연합국 포로로 있던 자들의 증언에 의해 자신들은 전범으로 처벌받을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어떤 이는 징역을 살고, 어떤 이는 형장의 이슬이 되고, 어떤 이는 조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분명 피해자였으나, 이들은 가해자로 처벌받았고, 풀려난 이들도 비극에서 자유롭게 살 수 없었다.


이 책은 작가의 외할아버지의 친필 일기를 바탕으로 많은 자문을 받아 재구성된 것이니, 실화이다. 그들은 전쟁 범죄자일까? 전쟁의 피해자일까? 일제 강점기를 이렇게 살아낸 분도 계시다. 온몸으로 자신의 시대를 받아낸 분이다. 시간은 백 년이 흘러 그의 조국은 세계 속에서 우뚝 솟았지만, 책장을 덮으며 참으로 슬펐다.



2.     변사 기담.

      1920년대에 무성 영화 시절에 무성영화를 해설해 주는 변사라는 직업을 가진 윤기담의 이야기이다. 이른바 문화통치기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엔터테인 산업을 일선에서 이끌어간 사람이라 볼 수 있겠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모였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으며 그렇게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다. 1920년대에 아리랑을 연행하던 변사 기담의 인생 역시 순탄할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맞으며 그는 말과 눈빛을 잃었다. 이 책에 인천 상륙작전이 나온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한국전쟁의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갈 수 있게 한 그 작전. 그런데 이 책은 그 상륙작전 때에 미국에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월미도 주민들이 증언을 한다. <피난 가라는 말도 없고 전단도 없고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다 자고 있는데 불바다를 만든 거라고, 이게 말이 돼? 그날을 똑똑하게 기억해, 9월 10일 새벽에 첫 폭격을 하고, 11일은 안 하고, 12일, 13일, 14일에 사흘 연짝 폭격을 했지. 사람들이 갯벌로 도망가니까 흰 옷을 입은 사람들한테 또 쏴. 작전이 끝나고 그냥 갔으면 수습이라도 했지 자기네가 부대를 만든다고 여기를 불도저로 싹 밀어버렸어. 흔적도 없어. 그래서 유골도 없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왜 학교에서는 맥아더 장군만 가르치고 월미도의 이야기는 가르치지 않을까? 월미도 주민들에게도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작전일까. 변사 기담이라는 책을 집어 들며 아, 옛날에는 이런 직업이 있었겠구나, 시대가 바뀌며 사라진 직업 중에 하나겠구나, 우리 시대는 어떻게 바뀔까, 무슨 직업이 없어지고 또 새로 생길까. 생각하며 페이지를 열었는데 사라진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사라진 인권, 빼앗긴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에 나오는 변사 윤기담은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보다는 나이가 스물몇 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비극의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 낸 우리들의 외할아버지 이야기이다.



3.     난독증 이야기.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고, 노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글씨의 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 글씨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일상이 전쟁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가정에서, 학교에서 모두 비난을 받고 버림을 받으며 상처를 친구 삼아 살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중 한 명인 김하종 빈센트 신부님은  <난독증인 사람으로서 많이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이 저의 영을 연마 시켰으며 고통은 제 정신을 더 민감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고통받는 사람을 만나면 말할 필요 없이 그 사람과 즉각적으로 교감 할 수 있게 되어 그 사람의 고통이 제 것이 된다> 고 고백한다. 그의 농아적 절규가 심부로 파고들어 고통을 본능적으로 교감하게 되니, 머나먼 이국 땅에서 노숙인 친구들에게 25년째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계실 것이다. 고통을 너무 잘 알기에.


적어도 학교에서는 한 번도 글을 읽는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글을 읽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들의 고통은 나의 안타까움의 몇 배나 될 까. 내가 거저 받은 것, 그들은 당연하게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내가 가진 것 중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이번 책 이야기에 세 권의 책을 한 번에 묶으며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는 것. 그 모든 것이 거저 받은 것이고, 당연한 것은 없으며, 누군가가 갈망하던 세상을 공짜로 누리고 살고 있음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 것을.



너희들이 가진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건지. - 드라마,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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