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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an 23. 2023

이순신의 바다

장군과의 만남.

삼십 년 만에 위인전을 읽었다. 이순신 위인전은 초등학교 다닐 적에 몇 번 읽은 것 외에는 소설, 영화로 접하곤 하였는데 한 권의 역사서로 영화보다 생생하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역사 소설은 즐겨 읽지만 역사서는 그렇지 않은 편이다. 칼의 노래는 세 번 읽었는데 난중일기는 읽다가 만 것만 몇 번이고 정조와 정약용의 시대도 흠모하지만, 역사서보다는 소설로 접한 부분이 크다. 해설 없는 원본 역사서를 내가 붙들고 해석할 능력은 없고 해설에 따라 읽기의 난이도나 인물 평가 등이 크게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 더 그랬다. 그래서 역사를 기반으로 한, 고증이 비교적 잘 되고 왜곡이 적다 하는 역사 소설을 주로 읽는 편. <이순신의 바다>라는 책도 장바구니에 한참 담아두고 구매를 못 했었다. 지루하고 어려우면 어쩌지 하는 부담이 있었고, 다른 책도 아니고 이순신의 이야기를 책장에 꽂아만 놓기 읽지 않는다는 것 역시 큰 숙제를 안는 기분일 것 같아서였다. 결론은? 이 책 너무 재밌다. 진작 살걸.


책은 이순신의 가계도로 시작해 어린 시절을 훑고 무과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며 이순신이 등판하는 모든 해전을 다루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연승기록에 입이 턱 벌어진다. 소설을 써도 이렇게 쓰면 에잇, 소설 좀 작작 써라 할 판이다.


옥포해전

1명 부상

전함 26척 침몰, 4080명 사망


한산도 대첩

3명 전사, 10여 명   부상

전함 47척 침몰, 9000여 명  사망



부산포해전

7명 전사 25명   부상

전함 128척 침몰, 3834명  사망



명량 대첩

11명 전사 21명   부상

31척 침몰 92척   난파, 3000명 사망



 대충 책을 다시 들추어낸 전투 기록만 이 정도이다. 인생이 소설, 영화와 같던 분. 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순신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밀하며 휘하의 장졸들을 섬세하게 헤아리고 적은 낱낱이 파헤치는 훌륭한 사람인데 겸손하기까지 하였다.


이순신은 이름조차 없었던 노비 출신들의 격군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전쟁 중 공을 세우거나 사망했을 경우를 대비한 섬세한 행정이었다.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던 노비들이 격군으로 끌려왔으나 이순신은 그들을 군인 이상의 자원으로 여겼고 본영의 격군들만을 모아 잔치를 치러주기도 하였다. 이순신은 아군이 사망했을 경우, 그 시신을 배에 실어 고향에 보내주었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격군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 책에는 우리 시대에 없는 우리가 절실히 바라는 리더가 있다. 남에게도 엄격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며 휘둘림 없이 사람을 등용하고 공과를 공정하게 살핀다. 칠천량 전투 이후 백의 종군하여 오랜만에 만난 부하 장수에게도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군량미를 태우지도 않고 챙기지도 않은 죄를 물어 곤장부터 쳐서 군법의 지엄함을 내 보이는 이가 그다. 이.순.신. 신분제가 강했던 시대에 금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 이상은 되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이순신은 노비까지 헤아려 살핀다. 그만큼 조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장군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장착된 사람이 아무리 일본군에 대한 분노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하더라도, 일본군을 그렇게 죽이고 베는 전장에 있는 것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들도 많다. 선조 때까지 큰 전쟁이 없어서 조선은 전쟁 대비가 미미하였고 그래서 전쟁 초반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조총이 없었을 뿐, 조선은 요즘 세상의 미사일에 비할 수 있는 화포를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것들을 장수들이 제때 준비하여 활용하지 못하였을 뿐이었다 한다. 인재들도 두루 있었지만 붕당과 임금의 무능으로 제대로 등용되지 못하였다. 왕과 조정은 이순신을 질투하였고 두려워하였다. 그 무능과 무지, 무책임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런데 2023년이라고 다를까?


 책은 무척 풍성하다. 지도와 인물도, 각종 사진들로 이해를 돕고 볼거리도 많다. 대화체도 자주 등장하여 이것이 역사서인지 소설인지 뭔 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무척 재밌게 읽었다. 참고로 장군들의 대화체는 우리가 아는 표준어의 사극체이지만 군인, 의병들의 대화체는 남도 사투리이다.


“늦어서 좀 거시기 하네, 이제 우리가 왔응게 힘들 내자고.”
“많이 무서웠는디, 느그들이 온게 든든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책의 저자 황현필 선생님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진심으로 이순신과 왜군들에 맞서 싸웠던 이름 모를 병사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독자들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느껴진다. 황현필 선생님은 역사학자 이기도 하지만 교사 출신, 현직 강사, 교육자 이기도 한데, 학자들의 책은 어렵고, 교육자의 책은 쉽다는 평소의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굳히게 되었다. 나와 같이 무지몽매한 사람도 어렵게 느끼지 않고 쉽게 읽히도록 쓰였는데 이순신의 바다, 그 전장의 위대함을 망라하고 있으며, 인간 이순신도, 피아가 예외 없었던 죽음들에 대한 애도도 놓치지 않고 있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 황현필 선생님이 수험서, 문제집들 말고 이런 역사서들 좀 많이 써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을 정도이다.


이 책을 읽어 가장 좋은 것은 이순신이라는 훌륭한 인물과 만났다는 것이다. 성웅 이순신을 만나서 나의 그릇을 조금 키울 수 있었다고 할까. 책을 읽으며 잘 두었다가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이 흥미는 있지만 읽기를 어려워하면 기꺼이 한 챕터씩 소리 내어 읽어줄 의향도 100퍼센트. 모든 이에게 강추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너무 재밌는 책이니 말이다.          


   


황현필 선생님, 다른 책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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