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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27. 2023

오늘의 카레.

방학이니까. 

 아이들의 방학엔 카레 만한 것이 없다. 한 그릇 요리,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한 끼. 오늘도 카레를 한 솥을 했다. 카레가루의 뒷면엔 대강의 계량과 재료, 레시피가 나와 있지만 우리 집 카레는 대부분 오늘의 카레이다. 한 마디로 주인장, 아니 엄마 맘대로, 냉장고 사정에 맞추어 끓인 오늘의 카레. 재료는 그때그때 많이 다른 편인데 카레가루가 들어가며 맛은 평균에 맞추어진다. 


 오늘의 카레는 조금 푸짐하다. 팬에, 아니 솥에 양파를 잔뜩 채 썰어 넣고 양파즙을 조금씩 넣으며 볶아 단 맛을 극대화시켰다. 그리고는 당근 하나를 채칼로 썰어 넣었고, 감자가 많아 두 개나 채 썰어 넣었다. 냉장고에서 새송이 버섯을 하나 꺼내어 역시 채 썰었고 냉동실에 있던 소고기 한 덩이를 해동하며 얇게 저며 썰었다. 한 시간 넘게 볶은 양파에 나머지 재료들을 넣고 볶다가 냉장고에 남은 토마토 퓌레를 몽땅 털어 넣었으며 지난번에 먹고 남은 코스트코 버섯 소스도 두 스푼 떠 넣었다. 그리고는 역시 남아 있는 탱글탱글한 사골 육수를 넣어 푹 끓였다. 이 정도면 평소엔 먹을 수 없는 프리미엄 맥시멈 카레이다. 각종 재료들이 풍성하게 잘 어우러졌고, 육수로 무려 물 대신 사골국이 들어갔으니 고소함과 깊은 맛이 난다. 카레 가루를 풀지 않아도 그냥 비프스튜로도 훌륭한 음식이 되었을 만큼 오늘의 카레는 고급, 고오급 카레라 하겠다. 


 양파만 달달 볶아 카레를 만들기도 한다. 다른 재료 없이 양파만 들어간 카레는 생크림이나 우유를 넣어 맛을 더 부드럽게 만들고 마지막에 달걀을 풀어 넣어 단백질을 더한다. 그래도 허전하면 토핑으로 소시지나 용가리 치킨을 올려 주기도 한다. 카레에 자꾸 뭐를 넣는 이유는 매운맛을 빼기 위해서인데 처음엔 건더기가 큼직하고 매콤한 맛이 나는, 우리 엄마가 해 주던 카레가 그리웠지만 이젠 슬슬 내가 만든 내 카레에 익숙해졌다. 부드럽고 순한 맛.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또다시 똑같이 못 만드는 그때그때 다른 카레. 


 분명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만드는 카레인데 아이들은 엄마 카레라고 부른다. 유치원 급식 카레는 매운데 엄마가 해 주는 카레는 맵지 않아 좋다고 하니, 장시간 양파 볶는 정성을 들이는 보람이 있다. 아이들이 무슨 음식 앞에 “엄마”라고 수식어를 붙여주는 음식은 카레가 유일하기도 하다. 다른 반찬들은 어디서 먹어도 엄마의 반찬과 비슷하거나, 더 맛있기도 한데 카레만큼은 자기들 입맛에 꼭 맞추어 주는 사람이 엄마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는 우리 엄마의 제육볶음, 떡볶이, 육회, 녹두전, 꽃떡, 엄마만의 엄마 음식으로 기억하는 음식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 애들한텐 고작 카레라니,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이 쌓이면, 세월이 지나면 엄마의 음식으로 기억하는 것들이 많아지려나. 요즘처럼 인스턴트나 레토르트, 배달음식, 각종 소스들이 잘 나오는 세상에는 나만의 특별한 맛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예전 우리 친정집만 해도 엄마가 직접 장을 담근 적도 있고 이모가 담근 장을 받아 다가 음식을 하여 우리 친정집만의 손 맛이 담긴 음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집에서 담근 장이라니, 상상도 안된다. 집에서 담근 장을 사다가 먹을 순 있겠지만, 이미 시판 장류, 각종 첨가물과 단맛이 많이 들어간 고추장, 된장, 간장에 익숙해진 손이라 수제 장류로 음식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 아이들이 엄마 카레라고 부르는 것, 그것처럼 양파를 장시간 볶아 내고, 토마토 퓌레, 아니면 으깬 고구마, 생크림과 달걀등으로 화려하게 변주를 해 주면 시판 소스로도 엄마 반찬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낼 수 있을까. 


 오늘의 카레로 한 끼를 먹는다. 엄마 카레는 맵지 않으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이 잘 먹으니 나도 좋다. 역시 방학에는 카레만 한 것이 없다. 옛날에 왜 그렇게 급식으로 카레가 자주 나왔는지, 엄마가 방학을 하면 카레를 해 주었는지, 캠프를 가면 한 끼 이상 카레가 나왔는지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그 이유를 깨닫는다. 이렇게 저렇게 여기저기에서 카레가 나왔던 이유는 아마 열 가지도 넘을 것이다. 굳이 손꼽아 세어내지 않아도, 나는 그냥 알겠다. 왜 카레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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