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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26. 2023

애들은 과식하지 않아요.

뷔페에서도.

 결혼식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어 결혼식이란 경사 자체가 드물어진 데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때문에, 또 나의 임신과 육아라는 예측 불가의 일상 때문에 간혹 있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결혼식엘 다녀왔다. 내 인생에 한창 웨딩붐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15년 전쯤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5-6년 정도 결혼식을 많이 다녔다. 항상 엄마 아빠의 지인의 아들, 딸의 결혼식에 쫓아다니다가 처음 내 지인의 결혼식에, 축의금 봉투에 내 이름을 적어 내던 때를 기억한다. 내가 비로소 다 큰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압도당했다. 한동안은 가는 결혼식마다 부케도 많이 받아왔다. 부케를 받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본인의 아들이 XX대학 박사과정인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는 뜬금없는 중매 제안도 받은 적이 있다. 내게도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너무 아득해서 거짓말 같지만.


 그때엔, 주말마다 결혼식에 다니기도 하던 그때엔 결혼식 뷔페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했었다. 실제로 그랬다. 음식들은 거의 비슷했다. 맛도 모양도 차림새도. 그냥 먹었다. 지인들과 어울려, 간혹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있었기에, 이래서 어른들이 경조사 때나 얼굴보지,라는 말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늘어놓고 얘기하며 먹었다. 술도 먹었고, 때로는 2차도 가고 3차도 갔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건강했는지, 뷔페에서 조금 많이 먹고 와도 한 끼 정도 소식하거나 굶으면 바로 원상복귀가 가능하였다.  뷔페 음식과 술집 술안주의 간이 얼마나 센지 몰라도 될 만큼 건강하였다. 지금은 바깥음식이 맛있긴 한데 너무 짜다.


 몇 년간 집 밥 위주의 식사를 하였다. 집밥도 그냥 집밥이 아니고 유아식 위주의 집밥이다. 맵고 짠 것을 잘 안 먹다 보니 몸이 그렇게 적응을 해 버렸다. 신라면 정도의 맵기,라고 하면 신라면이 매운가?라고 생각하던 나는 튀김우동에서도 매운맛을 찾아낼 수 있는 장금이가 되었고 각종 스트레스와 피로에 시달린 위장은 조금의 과식과 자극적인 음식에도 일박 이일, 이박 삼일씩 앓아눕게 되었다. 며칠 전 다녀온 결혼식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그렇게 되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애들은 배가 고프다고, 빨리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들들 볶아 댔다. 20분밖에 안 하는 결혼식이었지만, 친구들의 사진촬영시간까지 계산을 하면 40분은 족히 되는 시간이었으니 아이들은 지루했다. 피로연장으로 입장을 하는 순간, 아이들의 눈빛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식사를 하는 곳, 초대받은 곳, 나에게는 익숙한 결혼식 뷔페식당이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얼마나 크고 멋진 식당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등받이가 높은 의자들과 하얀색 식탁보가 둘러진 식당의 분위기에 아이들은 동화 속 식당에 입장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다고, 엄청 많이 먹을 거라고 나를 들들 볶아대던 아이들의 접시에 음식이 담긴다. 큰 아이는 토마토 스파게티, 크림 스파게티, 짜장면 조금, 냉 모밀 한 입,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작은 아이는 꿀떡부터 작하더니 이것저것 조금씩 담아 먹었다. 하얀 밥과 도넛을 한 접시에 담아 오기도 하고, 시리얼을 먹다가 탕수육을 먹다가 하기도 했다. 나는 양념 꽃게장을 담아 먹었고, 멘보샤를 비롯한 각종 갓 나온 튀김들을 가져다 먹었다. 기름냄새 맡지 않고 음식냄새를 맡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과식하 배탈이 날까 봐 접시에는 조금씩 담았고 파인애플이나 방울토마토를 한 두 조각씩  함께 먹으며 간이며 양을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도 탈이 났다. 나만 탈이 났다. 오랜만에 뷔페식당이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먹어야 할 양을 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억울해도 할 수 없다. 나는 조금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도, 눈앞에 음식이 많이 있어도,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 이어도 음식이 어느 정도 들어가 배가 부르면 먹는 속도가 느려지고, 이내 흥미를 잃는다. 나와 남편이 많이 먹었다. 나는 탈이 나서 약을 때려 넣고 난리굿을 벌였고 남편은 많이 먹고 배가 불렀지만 이내 소화를 시키고 평상을 되찾았다. 과식하지 않은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간식을 먹고 씻고 잠이 들었다. 애들은 과식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씩은 과식 좀 하고, 그다음 끼니를 좀 건너뛰면 어떨까 하는 불만도 있는데, 과식하지 않고 탈도 안 나는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다녀온 결혼식을 스파게티와 뷔페식당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다녀온 결혼식의 끝에서 지나간 나의 지인들의 결혼식들과 뷔페 음식들을 추억했다. 그리고 음식이 많아도 절대 과식하지 않는 아이들에게서 절제의 미덕을 배운다. 절제도 아니다. 단지 몸이 보내는 신호에 충실할 뿐이다. 배가 부르니, 양이 찼으니, 그만 먹을 것. 뷔페를 먹고 나는 몇 날 며칠을 퉁퉁 붓고 고생인데 아이들은 멀쩡하다. 부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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