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매일 샐러드를 식탁에 올린다. 코스트코에서 샐러드용 믹스 채소와 아보카도, 새미 선드라이 토마토를 한 팩 씩 집어온 덕이다. 아이들은 햄과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 넣어주면 양상추 같은 잎채소를 먹지만 샐러드로 떡 하니 채. 소.라고 쓰여 있는 음식을 제 손으로 집어먹진 않는다. 하나씩 입에 넣어주면 뱉어 내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샐러드는 아빠도 먹는 엄마음식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외식이 가능해 지면서부터, 또 내 위장이 작아져 외식 1인분은 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외식을 하게 되면 내 몫으로 샐러드를 시키는 횟수가 늘었다. 예전엔 내 몫의 1인분에 반찬처럼 곁들이는 사이드 디쉬였다면 요즘의 샐러드는 잎채소에 드레싱, 때에 따라서는 리코타 치즈나 닭가슴살 몇 조각이 들어있고 내가 먹는 양이 줄어 샐러드도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제 몫을 해낸다. 가끔씩 외식을 할 때 주문하는 샐러드가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도 해 먹기 시작했다. 아직 양상추와 색색의 다른 채소들까지 통으로 사서 손으로 뜯고 칼로 썰어 손질을 해 놓는 고수의 경지에 이르진 못했지만, 그리고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덜 맛있지만 샐러드도 어엿한 집 밥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새삼 기쁘고 기특하다.
이렇게 줄줄이 재료들을 쪼르르 늘어놓는 메뉴를 콥샐러드라고 해서 특별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콥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리사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접시를 꾸며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콥 샐러드라고 한다. 한마디로 서양식 냉털 샐러드 요리라고나 할까. 재료는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쓰면 된다. 드레싱도 요거트와 허브, 마요네즈 베이스의 렌치소스가 인기 있지만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샐러드용 채소들을 구비한 김에 옥수수 통조림도 사고 계란도 여러 개 삶아 놓았다. 언제든 접시에 담기만 하면 되도록.
각종 신선한 채소에 냉장고에 며칠 동안 잠자고 있던 양배추는 양배추 코울 슬로를 한통 만들어 놓아 그때그때 곁들이니 끼니때마다 채소를 듬뿍 먹을 수 있어 좋다. 아이들도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눈으로 보아 놓고, 한입이라도 먹다 보면 언젠간 아이들의 인생에도 샐러드가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는 말처럼, 샐러드도 구경해 보고 먹어보면 나중에 찾아 먹겠지. 샐러드를 먹으니 여러 가지로 좋다.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배부르게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아서 좋다. 한식 나물로 채소를 먹으려면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기를 꽉 짜내서 무쳐야 하는데, 샐러드는 믹스 채소를 사서 물에 대충 씻기만 하면 되니, 내 손목을 힘들게 하지 않아 좋다. 무엇보다 색색의 재료들로 예쁘게 꾸며진 접시가 식탁에서 나를 부르니, 특별히 나만 손짓해서 부르는 음식이 생긴 것도 좋다. 애들 밥 해주느라 나는 정작 내가 좋아하던 매운맛, 짠맛, MSG 맛을 잃어버렸다. 밥상은 건강 해졌지만 나를 위한 요리는 없어 내가 차려 놓고도 남의 집에서 밥 얻어먹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샐러드가 나를 불러주니, 나만의 몫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아이들도 먹어보게 한다. 주로 골라 먹는 건 삶은 계란과 옥수수 통조림, 크랜베리이지만, 생 양상추도 한 번, 채 썬 당근도 한 번은 먹게 되고 무엇보다 식탁에 예쁜 접시가 올라와 기뻐한다. 저녁마다 엄마 식당에 와서 결제를 하는 손님들이 더 기분 좋게 카드를 긁게 하는 기특한 샐러드이다.
코스트코에서 집어온 아보카도는 다 먹었고, 샐러드용 채소 믹스가 조금 남았다. 앞으로 한 두 번 더 해 먹고 나면 한동안은 또 식탁에서 보기 힘들어질 샐러드이다. 그렇게 한텀 쉬다가, 다시 어느 식당에 가서 샐러드를 맛있고 비싸게 사 먹고 난 후, 혹은 여유 있게 마트에 가서 샐러드용 야채를 집어 들고 오면 또다시 며칠 샐러드가 식탁에 오를 것이다. 예쁘고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 가끔은 나를 이렇게 대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