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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Mar 18. 2023

햄 이야기.

이중성의 끝판왕, 바로 나. 

 아이 밥을 챙기며 가장 조심하는 음식이 바로 햄이다. 통조림 햄, 각종 첨가물에 영양가는 없고 칼로리만 높은, 그런데 입에 쫙쫙 붙어 다른 반찬은 하나도 먹지 않고 햄만 먹는 편식까지 유발하니 단독으로 햄을 구워 밥반찬으로 내어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아빠가 밥을 차려 줄 때 남자 셋이 햄을 구워 김과 함께 맛있게 먹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엄마보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최고의 요리사. 햄은 그럴 때를 위해서 아껴 두는 편이기도 하다. 나도 가끔 통조림 햄을 깐다. 바로 김밥을 쌀 때, 아무래도 햄이 들어가야 맛있고 김밥엔 다른 채소들도 함께 들어가니 햄을 먹는 마음이 가볍다. 그렇게 먹는 햄도 굽기 전에 첨가물과 기름기를 뺀다며 뜨거운 물에 데치고 어쩌고 난리굿을 편다. 햄은 그렇다. 가까이해 버릇하면 애들도 나도 햄만 찾게 될까 봐 최대한 신경 쓰고 조심하고 있다. 


 그런데 밥이 아니라 빵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로 샌드위치 햄. 얇게 슬라이스 되어 나오니 데치고 자시고 하기도 뭣하다. 바쁜 아침 빵을 자주 먹는데 샌드위치 햄을 자주 사용한다. 엄마가 토스트에 햄 넣었어,라고 하면 그래도 없는 입맛을 끌어오는 아이들, 엄마가 샌드위치에 햄 두 장 넣었어,라고 하면 눈이 동그래지며 안 먹던 양상추도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밥반찬으로는 햄을 안 주면서, 빵 반찬으로는 햄을 잘도 준다. 

 우리 집엔 항상 햄이 있다. 추석, 설에 들어오는 햄 세트로 일 년 내내 먹는다. 따로 추가로 산 적은 없는 것 같다. 거의 김밥 쌀 때만 쓰는 편이고, 아빠가 밥을 차려 주는 일도 손에 꼽을 정도이니, 통조림 햄은 시세도 모를 만큼 나의 장바구니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샌드위치 햄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항상 집에 있지 않고 어디서 선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가끔 구매하는데 보통 세 팩씩 묶음으로 되어 있다 보니 한번 사면 샌드위치에도, 토스트에도 넣어 먹다가 구워서 밥반찬으로도 먹고, 볶음밥에도 넣고, 남으면 김밥에도 넣어 먹는다. 그러다 보니 통조림 햄을 쓸 일이 더 없어진다. 통조림 햄 앞에서는 벌벌 떨면서 샌드위치 햄에는 이렇게나 후하다. 이런 이중 잣대라니. 


 생각해 보면 이런 이중 잣대는 어디에나 있다. 미세먼지 수치에 바깥 놀이는커녕 환기도 못 시키고 집안에 박혀 있으면서 연탄불고기는 맛있게도 먹는다. 주름 관리를 한답시고 주름개선 기능성 마스크 팩을 붙이고 가오나시 놀이를 하면서 (하얀색 마스크 팩을 붙이고 검은색 내복을 입은 엄마를 본 아이들이 가오나시다!!라고 했다.) 온갖 화를 내며 미간에 팔자에 주름을 만들며 성난 표정을 짓는다. 온화하게 웃어야 주름도 예쁘게 진다는데 그런 진리는 한참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화를 낸 후에 아차, 하고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말을 안 듣는 아들들의 장난에 신랑이 버럭 할 때가 많다. 각자의 이유로 방방, 혹은 길길이 날뛰는 남자 셋을 한발 떨어져서 보면 가관이 따로 없다. 그런데 신랑이 버럭 해서 아이들이 혼이 나면 그렇게 마음이 쓰릴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무섭게 혼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신랑아, 내가 혼내는 건 괜찮은데 애들이 남한테 혼나니까 맘이 아프다. 혼내지 마, 그랬더니 내가 남은 아니잖아?라고 하며 황당해하던 신랑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슨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표정이었다. 자기는 남자 셋을 찍 소리도 못 하게 쩌렁쩌렁 화를 내면서 고작 내가 이랬다고 이러기 있기 없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겠지만 현명한 신랑은 잘 참았다. 그런 이중성의 끝판왕. 바로 나. 


오늘의 아침도 햄 샌드위치였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피타 브레드를 반을 갈라 마요네즈, 허니 머스터드소스를 빵 안쪽 양 면에 골고루 듬뿍 바르고 양상추 몇 장을 넣고 계란 프라이를 넣고 햄을 두 장씩 넣어 주었더니 모양도 그럴 싸하고 맛도 좋았다. 햄을 반찬으로 줄 때는 그렇게 햄만 먹으면 다신 햄 안 줄 거야!!라고 도끼눈을 뜨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엄마가 햄 두 장 넣었어 샌드위치 맛있게 많이 먹어, 우리 애기들~ 하고 하트 뿅 뿅을 날려 주었다. 


이런 나, 정상 맞겠지? 


애들 밥은 이렇게 골고루 먹이고 나는 밥을 고추장에 비벼서 스팸만 얹어 먹는다.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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