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김, 계란, 멸치로 컸어요.> 한번 쯤은 해 보거나 들어봤을 말이다. 애를 낳기 전에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맛있는 반찬이 얼마나 많은데 김, 계란, 멸치라니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고 뜨악했던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뼛속 깊이 이해하는 말이다. 우리 애들도 김, 계란, 멸치로 크고 있어요.
사실은 김, 계란, 멸치, 햄이다. 햄은 몸에 좋지 않으니까, 아이를 키운 음식에서는 빼기로 하였다. 김, 계란, 멸치, 아이들에게 밥을 잘 잘 먹여주는 김, 단백질이 풍부한 계란, 칼슘 덩어리 멸치, 가격이 비싸지도 않고, 만들기 어렵지도 않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먹는 반찬이니 밥 해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죽하면 애 키우면서 계란 알러지 있는 아이의 엄마가 가장 불쌍하다 생각이 들었을까. 계란 알러지 있는 아이도 딱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아이의 엄마가 더 딱하다. 집에서 간단히 해 먹일 선택지가 하나 줄어드는 것에 당장 학교 급식에 간단한 빵 과자부터 계란을 빼고는 얘기가 힘들어 지는데 아이에게 계란 알러지가 있다면 먹이는 것에 얼마나 더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할까 하고 말이다. 오늘도 계란말이를 만들며 계란 알러지가 있는 아이의 엄마를 생각했다. 계란말이에 채소를 다져 넣으니 영양만점 반찬이 뚝딱 완성되는데 이런 걸 뭘로 대체 할까 싶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알러지, 아토피 없이 아무거나 먹고 잘 자라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페이스북에서 몇 년 전 메모를 추억이라고 보여준다. 아이들의 세끼 차리기가 너무 힘들던 3년전 코로나 시국의 메모였다. 유치원을 못 가는 아이들에게 매일 매일 세끼 밥에 간식을 차려주던 시절, 아마 김 싸서 한끼를 때운 날이었나보다. 집집이 김을 이렇게 많이 먹는데, 김 양식장이나, 조미 김 공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여 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메모였다. 아이들이 거의 끼니마다 조미김, 김 자반, 김가루, 김밥을 먹고 있는데 김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걱정 스러웠던 부분이 김 수급에 대한 걱정이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 웃기기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심각했던 모양이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유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2주간 근처 어디어디어디 까지 폐쇄가 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메모에 김에 단백질이 있다는 기사가 있다며 쌀밥에 김을 싸서 먹이는 마음이 한결 낫다고도 되어있다. 한참 뛰놀고, 잘 먹고 잘 자라야 할 코로나 시국의 당시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잘 먹이는 것 뿐이었는데 그 끼니를 김으로 때워주는 것이 내심 미안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키우니 멸치는 육수를 내는 육수용 커다란 멸치 아니면 볶음용 잔멸치 두 종류만 취급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커다란 멸치의 똥을 따서 볶아낸 멸치 반찬을 좋아한다. 기름에 볶아 간장 설탕을 입혀 먹는 것도 좋아하고 그냥 맨 후라이팬에 볶아낸 큰 멸치를 고추장 찍어 먹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런 억신 반찬 청정구역의 유아식 담당이다보니, 멸치 볶음은 언제나 잔멸치 볶음이다. 그것도 물에 한 번 헹구어 내서 짠 기를 한 번 빼고, 조금 더 부드럽게 하여 볶는다. 샤워를 한 번 한 잔멸치들은 볶으며 수분이 날라가도 짜지지 않고, 올리고당이나 설탕으로 코팅을 해도 딱딱해 지지 않는다. 보관기간이 조금 줄어들 수는 있겠으나 어차피 많은 양을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 다 먹어 치우는 편이라 상관없는 문제이다. 나는 큰 멸치를 좋아하지만, 잔멸치 볶음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이렇게 김, 계란, 멸치로 오늘 한 끼를 먹었다. 지난 겨울, 포항초가 한창일 때 데쳐서 얼려 둔 포항초로 된장국을 끓이며 두부도 썰어 넣었고, 지나가던 동네마트에서 세일하는 고구마와 딸기를 사온 것을 디저트처럼 한 상에 차려주니 색깔도 골고루, 영양도 골고루, 맛도 좋은 엄마표 한 상이다. 한국의 가정식을 말해보라 하면 가장 전형적으로 나올 만한 반찬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갈비찜, 잡채, 각종 김치에 젓갈, 나물류, 한식 집밥의 종류야 많고 많지만 그것이 정말 가정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갈비찜과 잡채는 일상에 더하기엔 너무 과하고, 김치도 보통 우리 나이 또래에서는 직접 담근 김치가 아닐 확률이 높다. 젓갈도 마찬가지. 나물은 한식 중에 가장 고난이도이며 가성비 최악이란 반찬이라 하고싶다. 흙 묻은 채소를 씻고 다듬어, 데쳐서 손목 아프게 꽉 짠 후, 각종 양념으로 간을 해 무쳐내는데, 그게 무려 사이드 디쉬이다. 여차하면 남겨 버려지는, 직접 밥을 해 먹게 된 후로 가장 슬픈 반찬이 바로 나물이 되었다. 식탁에 오르기 까지의 정성과 들인 공에 비해 너무 저평가 되고 있어서 말이다. 어쩌다 한정식 집에 가서도 나물 반찬은 꼭 한 두번이라도 더 먹으려 노력한다. 우리집 식탁에는 잘 오르지 않는 반찬이기에 아이들에게도 한 입씩 권해 주기도 하고, 이 것이 얼마나 맛있는 반찬인지, 공들인 반찬인지를 이야기 해 준다.
한끼 차려 먹었는데, 내일은 뭐 먹을지가 걱정이다. 애들은 김, 멸치, 계란으로 큰다. 김, 멸치, 계란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얼마나 귀한 식재료였을까, 그것들을 손 쉽게, 싸게 구해서 먹고 먹일 수 있는 세상을 산다는 것에 새삼 감사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