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보다 주인공 엄마에게 마음이 간다.
<우주를 듣는 소년>이라는 책에는 여러 가지 챕터가 나온다. 책의 내용이 초자연적이기도 하고 워낙 방대하여 어느 쪽에 조명을 비추느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감상평이 나올 것 같은 책이다. 책의 내용 자체보다 독자들의 리뷰가 더 기대되는 책이 드문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나는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고로 돌아가신 후 모든 물건들의 소리를 듣게 되기 시작한 소년 베니보다 남편과 갑작스럽게 사별하고 아들을 홀로 키워야 하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실직 위기에 빠진 중년 여성, 베니의 어머니 애너벨에게 이야기에 초반부터 마음이 쓰였다. 아마도 내가 질풍노도를 겪는 십 대의 소년이 아니고,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아줌마라 그랬을 것이다. 슬픔, 막막함, 절망, 책임감, 무게, 그 모든 것들이 내 양쪽 어깨에 올라타고, 머리에 올라가 있고 있고, 양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면 나는 아마 그 삶을 버텨낼 수 있을까.
애너벨은 인쇄매체에서 일하며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스크랩하는 이른바” 가위녀”이다. 인쇄매체가 사양산업이 되고 당연한 수순으로 퇴출 위기를 맞았으며 아들은 마음과 몸이 아프다. 직장에서는 쫓겨나게 생겼는데 그렇게 되면 아들의 치료비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 (대한민국 의료보험 만세가 절로 나오던 순간). 애너벨은 작은 물건들을 사며 일상을 버텨낸다. 비싼 것은 못 산다. 있는 물건들도 언젠간 쓰겠지, 죽은 남편의 옷으로 이불을 만들 거야, 깨진 찻잔도 붙여서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 거야, 하는 맥시멀리스트이고 오며 가며 중고샾, 혹은 쓰레기 재활용품을 기웃거리느라 아들 베니의 저녁거리와 우유를 사 오는 일을 잊는다. 집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언가로 뒤덮여 있는데 남편이 죽기 전엔 있지 않던 일이다. 그리고 아들 베니는 아빠를 닮아 정리 정돈에 능하다. 아마 칼각으로, 색깔별로 셔츠를 개는 금손을 가진 소년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무언가를 모은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지나가며 만나는 물건들 마다 자기를 데려가라는 외침을 듣는 것만 같다. 아들은 물건의 다른 목소리를 듣는다. 아빠의 셔츠가 이불이 되기 싫다고 하는 소리, 이 모자는 아빠가 떠난 후 갈등을 겪는다. 아빠의 부재는 엄마와 아들을 이어 줄 수가 없었다. 정리 정돈에 능한 아들을 둔 엄마는 맥시멀리스트이다. 저장 강박이라고도 한다. 엄마는 남편의 부재를 물건으로 위로받으려 하고, 아들은 아빠의 부재도 모자라 아빠와의 추억이 담긴 곳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도 물건이 채워지는 괴로움까지 견디어 내야 한다. 둘 다 너무 가여웠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하는 정리정돈 똥손이다. 특별히 물건에 대한 애착이나 무분별한 쇼핑을 하지는 않지만 다만 정리정돈에 서툴고 재능이 없다. 물건들의 제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물건을 무심코 어디에 두고는 항상 찾아 헤맨다. 예전 라식 수술을 하기 전에는 매일매일 안경을 찾아 헤맸고, 지금은 핸드폰, 혹은 차키, 마스크를 그렇게 찾아댄다. 신랑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라고 하는데 나에겐 내가 놓는 곳이 제자리이다 보니 물건의 제자리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물건이 많지는 않지만, 물욕도 거의 없는 편이지만 정리를 못 해 어지러운 상태, 내 한 몸, 나의 짐만을 정리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네 식구의 살림이 내 손에 달려 있으니 집안 꼴이 어떻겠는가, 물건은 별로 없는데 언제나 너저분하다. 깨끗하게 정리하려면 비우고 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물건 자체가 많은 건 아니다 보니 비우고 버릴 것도 많지가 않다. 그래서 그랬나,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애너벨의 너저분한 집에 가장 많이 마음이 쓰였다.
책에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나온다. 그래서 책 두 권을 동시에 읽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물욕을 비우고 마음을 정리하는 정리의 마법, 요새 한창 화두가 되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글과 기사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처음 접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내 손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나에게는 정리 정돈이 그러하다. 소설의 주인공 우주를 듣는 소년 베니보다 베니의 엄마 애너벨에게 더 마음이 쓰였던 이유가 아마 애너벨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집 안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저 줄어들 줄은 모르고 오직 늘어나기만 하는 무시무시한 책들을 껴안고 살 수는 없었다. 옷도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입자 않은 옷들을 가장 먼저 내보냈다. 지난 몇십 년간 이 세계의 가장 흥미로운 변화들 중 하나는 옷 값이 싸진 거이다. 덕분에 옷장은 입지도 않는 옷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저를 정말 버릴 건가요? 물건들이 화를 내며 나자빠졌다. 나는 소인국에 간 걸리버처럼 그 작은 물건들에 붙들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중-
몇 년 전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여행기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이라는 책의 초반부에 집 정리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때에도 비움, 미니멀 라이프에 크게 감명을 받았었다. 나의 숙제이자 로망, 동경의 대상인 미니멀라이프와 비움, 절제, 무소유에 대한 글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가 책을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책 또한 그를 선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주를 듣는 소년, 본문 중
나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연히 집어든 책, 우연히 눈 맞은 그 만남으로 생각이나 발상이 전환될 때, 책이 나에게 왔구나. 혹은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니 하느님께서 이 책을 나에게 보내주셨구나 하고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 해야 할 집안일이 늘었다. 이불 정리, 옷 정리, 비움과 미니멀의 숙제에 놓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온 것이 아닐까, 이 구절을 읽으며 그런 생각도 들었다. 미니멀을 책으로라도 접했으니, 이번 이불 정리, 여름옷 정리에 조금 더 힘이 나겠구나 하고 말이다.
우주를 듣는 소년, 이 책의 다른 사람의 감상평이 매우 궁금하다. 나는 살림하는 아줌마라 그런지 미니멀 라이프에 꽂혔는데 다른 이들은 어떤 면을 보았을까. 책 속의 책 정리의 마법은 애너벨에게는 마법이라기보다는 치유, 극복. 화해의 의미로 보였다. 그녀의 삶이 반짝이는 바닥을 만나기를 응원한다. 반짝이는 바닥에서 아들 베니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다시 웃을 수 있게 되길. 그날이 오면 중고샵에 들르느라 우유 사는 걸 까먹어 사춘기 아들과 싸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엄마와 아들 모두 치유와 극복이라는 성장을 견디고 이겨냈을 테니.
정말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감상이.
#우주를듣는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