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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May 16. 2023

맥주 수육 만들기

바베큐와 수육의 중간 맛, 엄마 생신에 함께 했어요. 

배우 류수영의 냄비 바비큐 레시피를 본 적이 있다. 스텐 냄비를 뜨겁게 달구어 기름을 두르고 고기와 통마늘을 넣은 후 뚜껑을 덮어 오븐 효과를 내는, 수육의 각 단면을 5분씩 익히며 겉바속촉의 통삼겹살을 만들어내는 영상이었다. 겉의 바삭함을 주기 위해 채소는 오직 마늘만, 향채소를 넣는다고 양파나 대파를 넣으면 수분이 나와 바삭함이 없어진다고 했다. 지난겨울에 한 번 해 먹어봤는데 역시 맛은 있었지만 눌어붙은 스텐 냄비를 한참 불렸다가 설거지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어서 한동안 그냥 물에 퐁당 빠뜨리는 수육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엄마 생신을 맞아 가족끼리 엄마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사 일정이 있는 언니네가 못 온다 하니, 간단히 생일을 치르고 다음에 다 같이 모여 거하게 먹기로. 우리 집에서 회를 떠가고 돼지 수육을 해 가기로 했는데 하다 보니 좀 색다른 레시피가 창작이 되었다.


 

일단 통삼겹살을 뜨겁게 달군 커다란 스텐 냄비에 껍질이 밑바닥으로 가게 넣고 뚜껑을 닫아 10분 정도 껍질이 바삭해지게 익힌다. 그리곤 뒤집으며 양파를 세 개나 썰어서 저수분 수육처럼 되도록, 중간중간 맥주를 조금씩 넣으며 밑이 완전히 눌어붙지 않도록 했다. 주말 아침부터 맥주를 한 캔 따서 냄비에 조금씩 넣으며 홀짝홀짝 마신다. 간 마늘과 월계수 잎도 추가했다. 그렇게 맥주를 조금씩 넣으며 사방을 뒤집으며 40여분이 지나니 양파는 스텐 냄비 바닥에 눌어붙었던 고기와 맥주를 흡수해 갈색의 먹음직한 형상이 되고 돼지고기는 껍질의 바삭함은 잃었지만 맥주의 풍미와 마늘 양파, 월계수 잎의 향을 입고 근사한 냄새를 풍긴다. 맥주 덕에 태닝을 한 것처럼 갈색이 되었다. 찜과 바비큐의 중간이랄까. 그 상태로 뚜껑 덮고 뜸 들이기, 영어로는 래스팅이라고 하나, 조금 쉬어 주면 더 맛있어진다고들 하니 그렇게 해 본다.

 


 뚜껑을 열고 고기와 월계수 잎은 건진다. 고기가 식는 동안 냄비에 남아 흐물 해진 양파를 으깨며 마늘과 섞어 소금 간, 굴소스 약간, 올리고당을 넣어 마늘 소스를 만들어 곁들였다. 수육을 하면 삶은 물 버리기가 하수도에 미안하고, 바비큐를 하면 눌어붙은 설거지가 골치였는데 이렇게 밑바닥이 말끔하게 소스로 긁어먹어 버리니 한결 편하다. 수육을 썰어 포일에 포장하고, 회를 포장하여 친정에 갔다. 엄마의 생신. 직접 전복 미역국에 각종 장아찌를 준비해 두신 엄마는 이제 외식도 번거롭고 귀찮으신가 보다. 신경 쓰이는 우리 아이들 때문인가 싶기도 한데 천천히 밥 먹고, 애들은 애들대로 편하게 놀 수 있으니 집에서 밥을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아이들은 자기 생일을 가장 좋아하지만, 일단 누구 생일이면 좋아한다. 케이크를 후 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니 말이다.  “노래 끝나기 전에 촛불 불어 끄는 친구는 엄마한테 혼나요.”라고 내가 말한다. 우리 집에서 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지만 말속에 가시가 있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갔다. 아이들은 눈치껏 노래를 부르고 경쟁하듯 촛불을 끈다. 초가 일곱 개, 할머니 일곱 살이야? 하며. <7n살이라 일곱 개만 꽂은 거야.> 생일이 지날 때 마나 초 하나씩 늘리는 게 낙인 아이들이 이제 촛불을 대충 서너 개만 꽂게 되는 어른들의 마음을 알리 없지만, 형제의 촛불 끄기 경쟁에 어른들 여럿이 웃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기쁨조. 그 자체로 고마운 존재들이다.


 


 요리해 간 맥주 수육은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다. 곁들이는 소스도 맛있었고, 돼지고기는 김치와도, 장아찌와도 잘 어울리니 실패 걱정이 없기도 하다. 덜 익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다음번엔 더 센 불에 맥주를 더 졸여보면 어떨까 한다. 소스와 고기에 향과 색도 더 입히고 풍미도 맛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이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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