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메마른 아줌마의 감성이여.
요즘의 화제작, 엘리멘탈을 보고 왔다. 인생 영화라는 평부터 다소 뻔하고 평이하다는 감상까지 다양한 듯하였다. 팡팡 터지는 디즈니 폭죽은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기에, 아침에 극장으로 갔다. 아침이 아니면 볼 수가 없으니 조조영화만 보게 된다.
결혼하고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로맨스에 대한 로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도, 로맨스보다는 코미디에, 혹은 흐름이나 내용에 꽂히지 예전처럼 로맨스에 중점을 두진 않는다. 핫하다는 드라마 최신작들이 공교롭게도 다 중년 로맨스(일타 스캔들, 닥터 차정숙)였고, 로맨틱 코미디였는데 나는 그 누구의 로맨스도 응원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아는, 50대 여배우, 내가 소녀일 때부터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던 그녀들이 아직도 로맨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감격하며 한국 드라마가 여러 가지로 다양성을 갖추게 됨을 손뼉 치는 중이었다. 로맨스에 대한 로망이 사라진 것은 곧 모든 영화나 드라마의 남주들이 결혼하면 안 될 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쟤는 너무 인싸라서, 너무 효자라서, 너무 물러서, 너무 예민해서 같이 살면 피곤해질 남편 유형으로 확대 해석 내지는 현실 자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인공에게도 연애나 하지 무슨 결혼을 하려고 하냐, 연애도 하지 말고 그냥 홀홀단신 솔로를 즐기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마 나에게 딸린 남자들이 주렁주렁주렁이라 그런 것 같다. 같이 살면 피곤해질 유형이 우리 집에 다 있기 때문인지도.
다시 엘리멘탈, 영화는 불과 물의 만남이다. 불같은 여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보랏빛으로 열이 받아 펑펑 폭발해 버리는 불, 그리고 개미가 지나가도 엉엉 울어버리는 물처럼 무른 남자가 만난다. 물은 불을 만나면 증발해 버리고, 불은 물을 만나면 꺼버리니, 잘못된 만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보이지만 둘은 손을 마주 잡고, 끌어안으며 사랑으로 극복한다. 가난한 집에서 치열하고 어렵게 자라 온 불같은 여자 엠버와 부잣집 도련님인 부드럽고 유쾌한 남자 웨이드의 만남인 것이다.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폭발해 버리는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화내고, 자책하고, 화내고, 사과하는데 도대체 화 내기 전에 화를 가라앉히는 법을 모른다. 엠버는 그 화의 원인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나의 화의 원인도 생각해 보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틈만 나면 엉엉 우는 웨이드도 만화니까 저게 귀엽지, 현실에서 남편이 저러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던 관객이 나다, 나.
소녀적부터 간직하던 디즈니 감성은 어디로 가고, 시니컬한 아줌마만 남은 것 같아 또 화가 나려고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엔 울고 있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헤어짐에 약한데, 나이가 들며 부모자식 간의 사랑코드에 눈물샘이 잘 터진다. 그래서 운 것 같다. 부모도 되고 자식도 되는 입장이라 여러 마음에 이입이 된다. 아이를 키우며 옛날보단 보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건 나를 웃게 하기도, 울게 하기도, 참게 하기도, 폭발하게 하기도 하는 정말 "복잡한" 감정인데 로맨스에서 잃은 감성을 이 "복잡한 감정"에서 채우나 보다.
엘리멘탈의 포스터에는 <세상은 반대에 끌린다>라고 쓰여있다. 세상은, 우리는 반대에 끌리는데 부부는 닮은 부부들이 많은 것 보면 반대에 끌려서 서로 끌어안고 어루만지며 비슷하게 닮아가는 것이 세상 사는 모습인가 생각했다. 신랑은 둥글둥글하고, 나는 뾰족하고 예민한데, 그러니까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도 나처럼 뾰족하고 예민하다면 우리 아이들은 온 집이 가시방석이라 앉을 곳도 없을 것이고 나도 그처럼 둥글 거리기만 하다면 아들이 둘 있는 우리 집은 더욱 소란스러울 것이다. 반대에 끌려서 사랑하고 결혼해서는 속았다는 듯이 씩씩 거리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라는 걸,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오며, 디즈니 영화를 보면서도 저 사람이랑 결혼하면 얼마나 속터질까를 생각한 나를 반성하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