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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l 10. 2023

새의 선물

나는 변했을까, 안 변했을까. 

98년이나, 99년의 겨울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 95년도에 초판 인쇄된 책이니 당시 대학생이던 언니들이 구매를 하여 집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중학생이던 내가 제목을 보고 뽑아 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다. 그리고는 내용은 사라져 버렸다. 25년 전의 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시스터 이모"와 할머니, 그리고 조숙한 소녀의 이미지만 있었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바라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본문 중-


 무려 프롤로그에 적힌 이런 글귀를 보며, 중학생이 이런 책을 읽었다니, 이런 묵직한 책을 읽었을 나를 하마터면 칭찬할 뻔했다. 이 책은 기억에 남은 것처럼 쉽게 읽히고, 심리 묘사가 섬세하지만 난해하지 않고 공감이 잘 되며 무엇보다 무척 재미있다. 묵직하고 현학적이었다면 아마 덮어버렸을 것이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비슷한 또래의 소설의 화자 진희에게서 나를 보았을까, 진희의 조숙하고 성숙한 면을 나에게 대입시키며 속으로 우쭐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희라도 된 것처럼. 


배경은 60년대 후반 어느 시골인데 어느 지역의 시골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사투리도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있고, 그저 농촌으로 묘사되는데 야당후보를 지지하는 아저씨가 있고, 농촌이고, 원래 있던 논자리에 유지공장이 들어선다. 농사지어 먹고살기 팍팍하니 젊은이들은 이러나저러나 서울로 떠나기도 하고, 서울에서 농촌체험을 하러 내려오기도, 떠돌이들이 잠깐 머물기도 하는 곳이다. 



"오살년", "갈상머리 없는 년" 할머니가 철없는 막내딸인 이모를 지칭하며 하는 욕이자, 호칭인데 대충 무슨 말인진 알겠으나 정확한 뜻 찾아보려 사전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저 막내딸을 향한 사랑, 고운 정보단 미운 정에 가깝지만, 미운 정이 더 무서운 법임을, 그래서 고운 정만 받는 자신보다 미운 정을 받는 이모가 결정적인 순간에 할머니의 선택을 받게 될 것임을 열두 살 진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나의 눈에는 딱하게만 보였고, 십 대의 나와 사십 대가 된 나의 시선이 달라졌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진희의 할머니, 이모의 엄마는 소설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완전히 하얀 머리,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끙차, 하고 일어나며 비가 오려나 하고 관절이 쿡쿡 쑤시는 영락없는 할머니의 이미지인데 진희가 초경을 시작하자 우리 집도 삼대가 초경을 한다며 여러 마음이 섞인 말은 내뱉는다. 그 할머니도 폐경이 아직 인 여성이라면 5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그럼 나는 진희와 가장 가까운 나이었던 소녀에서, 할머니와 나이가 가까워진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마음, 그것 참 묘했다. 그 할머니는 참 정겹고 지혜로운데, 나도 십수 년 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새의 선물>은 좋은 일, 나쁜 일, 슬픈 일, 재미있는 일 두루 겪는 한 소녀의 성장 소설이다. 아니, 열두 살 이후 자랄 필요가 없어진 소녀라서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십 대에 이 책을 읽었던 나는 아이가 둘 있는 마흔이 되어 이 소설을 다시 만났는데, 소설 속 진희도 그대로, 이모도 그대로, 할머니도 그대로인데 나만 훌쩍 변해 버린 것만 같아서 한편으로는 하나도 변치 않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친구는 그대로인데 나만 변한 것 같아서 조금 서글펐다.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바라보는 나"와 "보이는 나"는 내가 요즘 새삼스레 다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열두 살 진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나라니, 어쩌면 나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마음은 소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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