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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09. 2023

깨끗하고 맑은 물을

끝없이 내어 주는 우물과 같은 박완서 님의 글을 읽고서 

 우리 집 안방엔 매트리스만 세 개가 테트리스처럼 꽉 채워 놓여있다. 정말 잠만 자는 곳이다. 이리저리 뒹굴고 돌아다니며 자는 아들 둘과 잠자리가 예민한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계획했던 이사가 미뤄지면서 아이들의 잠자리 분리도 자연히 미뤄져 우리는 여전히 넷이 뒤엉켜 자고 있다. 여섯 명도 편히 잘 수 있을 만큼 넓은 잠자리에서 고작 실 사용 하는 곳은 내가 있는 주변 조금뿐이다. 나에게서 무슨 냄새라도 나는 지 애들은 깊은 잠에 들어도 내 주위로 몰려들어 정작 나는 발 뻗고 자 본적이 별로 없다. 


 결혼을 하고 나에게 새로 생긴 필수품이 있었는데 바로 공장용 소음차단 귀마개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귀마개이고, 말 그대로 공장에 들어갈 때 쓰는, 청력에 무리를 줄 만큼 시끄러운 소리를 차단해 주는 귀마개 중에서 조금 사양이 낮은 단계를 밤마다 쓰고 잔다. 신혼때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날밤을 며칠째 세우고는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낸 핫템이다. 아예 안 들리나? 하면 그건 아니고 지척에서 코 고는 소리가 저 멀리서 고는 소리로 들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시계 소리나 냉장고 소리, 꽉 닫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빗소리, 아파트에 사니 아래 위층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 (나는 소리에 예민한가 보다)등은 거의 차단된다. 아이가 생기니 수면 문제는 더 심해져 귀마개는 더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귀마개는 소리는 어느 정도 걸러주지만 뒤척임은 걸러주지 못하여 아이가 이리저리 들썩이면 나는 얕은 잠을 깬다. 아이가 열이라도 나는 날엔 귀마개를 써도 기침소리 앓는 소리가 다 들리니 신기할 노릇이다. 


 엊그제는 자는 동안 둘째에게 얻어맞고 잠을 설쳤다. 둘째가 때린 건 아니다. 그저 베개를 끌어안듯 나에게 안겼는데 머리통에 콧등을 정통으로 박히며 잠을 깨 버린 것이다. 내가 툴툴거리니 신랑이 막아주겠다며 그다음 날엔 나와 둘째 사이에서 잠을 잔다. 문제는 그의 코골이인데, 귀마개를 하고 자던 내가 건조기에 돌이 들어간 꿈을 꾸며 놀라서 잠에서 깼다. 드르르륵, 하며 돌아가는 가전 소리에. 그건 당연히 옆에서 코를 고는 신랑의 소리였고 나는 한껏 짜증을 부리며 저기 가장 멀리 떨어진 매트리스로 도망을 갔다. 이렇게 자리가 넓은데 왜 저렇게 몰려서 자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선 냄새가 나는지 내가 옮겨간 자리로 첫째도, 둘째도 스멀스멀 기어 오고 그렇게 아침이 된다. 폭신 폭신 푸근한 품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제 엄마라고, 나와 저희들이 한 몸이던 시절의 체취를 기억하나 보다, 이것도 한 때려니, 하며 지낸다. 


문제의 건조기에 돌 들어간 코골이에 대해 신랑에게 잔소리와 짜증을 늘어놓은 날, (신랑은 미안하단 말 외에 할 말이 없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좋다고 하는 박완서 님의 글을 읽었다.    


남편이 곤히 잠이 들어 코를 골면 박완서 선생께서는 일어나 스탠드에 갓을 씌우고 담요까지 덮어 최소화시킨 빛에 의지해 첫 작품 <나목>을 쓰셨다 한다. 그러자면 빛에 예민한 남편이 일어나 잠이나 자라고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는데 그게 그렇게 좋으셨다 한다. 첫 작품이 떡하니 당선이 되고, 등단을 한 후 습작을 하며 글을 쓰게 되니 남편께서는 잔소리 대신 서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태도가 바뀌셨다는데, 정작 본인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쭈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만큼 겸손하시고 소박하시다. 그렇게 글을 쓰며 이야기가 잘 풀리기라도 하는 밤이면 기분이 너무 좋고 행복하여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재도 싫을 정도였다고. 똑같은 남편의 코골이도 대하는 아내의 태도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남편의 코골이마저 ASMR처럼 여기며 가치 있게 생각하신 박완서 선생의 다정하며, 따뜻한 글을 읽노라니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책을 조금씩 아껴 읽었다. 타계하신 지 십 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박완서 선생의 글들은, 깨끗하고 맑은 물을 아낌없이, 끝없이 내어 주셨던 그분의 고향 박적골의 어느 우물처럼 우리에게 해갈과, 쉼과, 온기를 전해주리라 생각한다. 


글이 너무 좋아서 필사를 해 보리라 결심했다가 1초 만에 타이핑으로 옮겨 적기로 마음을 바꿨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게으른가.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 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살아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 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 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 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민들레 꽃을 선물 받은 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 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 건 아이들 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 미술, 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 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 됨됨이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 한 일은 전연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 다만 깊이 살아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놓고 나를 기다려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 사랑이 무게가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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