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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31. 2023

만남 - 장편소설.

결국엔 만남.

한마디로 말하자면 엄청난 소설이었다.


무려 1919년생 작가의 80년대 소설이다. 내가 읽은 한국 현대 문학 중에서 가장 박완서 선생이 가장 나이가 많으신데, 무려 3.1 운동이 있던 해에 태어나신 작가님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신 글을 2023년도에 편안히 앉아서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영광이었던 순간이었다.

 

다산을 만나다.

다산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후 유배를 가는 데서 시작하여 18년간의 유배생활, 유배생활을 하며 이어온 학문에의 의지를 이어온 중년, 노년의 다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만남이었지만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다산의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 학자로 배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실학자로서의 다산은 물론이거니와 경학에 통달한 유학의 대 스승, 천주교 교리에도 능통한 교회 지도자로서의 모습도 보인다.


신유박해로 목숨은 건져 유배생활을 이어오며 천주교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소설 곳곳에 잘 드러나 보인다. 정조대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배교했던 천주교에 대한 부채감, 그리고 경학자로서도 오상(五常, 유교에서 말하는 인, 의, 예, 지, 신- 아마 배교를 하며 교우의 이름을 대었던 일이 포함된 것 같다)을 저버린 일로 평생을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에서 실학자로만 배워온 단편적인 모습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보였다. 학문에 너무 통달하여 그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 적당히 얄팍한 나의 지식에 만족과 감사가 느껴지던 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로서의 다산도 처음으로 생각해 본 면면이었다. 나는 그냥 태어났을 뿐인데, 아빠가 정약용이라면? 요즘 스타 부부들의 2세 탄생 뉴스가 보일 때마다 태어났을 뿐인데 엄마가 김태희? 아빠가 현빈? 이런 기사나 댓글들이 많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태어났을 뿐인데 아빠가 정약용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정 씨 가문의 고명딸이라면 모를까, 아들로 태어났다면 숨이 막혀 살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너무 완벽하고 엄하시다. 내가 어떻게 용을 써도 뛰어넘을 수 없는 분임을 태어나면서부터 알았을 것이다. 비뚤게 나가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 같다. 다산 역시 두 아들이 성에 차지 않는다. 학자로서 훌륭한 두 아들이지만, 대학자인 아버지에는 눈에는 영 마뜩잖다. 본인 스스로 의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임에도 정작 아들이 의원 노릇을 하는 것은 보기가 싫은 사람이다. 사대부 집안에서 중인들이 하는 의원 노릇을 하다니, 평등사상을 부르짖던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그런 구태의연한 생각을 버리지 못 함에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마는 그다. 내 자식을 가르칠 때에 비로소 친자 확인이 된다고들 한다. 아무리 내가 똑똑하고 잘났어도, 육아서를 많이 읽고 직업으로, 학문으로 육아에 경험치가 많아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내 자식 앞에서는 작은 일에 화를 내고, 폭발하고야 마는 만고 진리의 모습이 다산에게서도 보인다니, 참으로 인간적인 면모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감히 다산에게서 나와 공통점을 찾아내어 내심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사람이었어.



조선의 초기 천주교와 만나다.

조선 후기의 천주교 박해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이다. 나 역시 모태신앙으로 천주교를 믿고 있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어릴 때에 미사가 끝난 후 지겹게 바쳤던 (그때는 정말 지겨웠다) 103위 성인 호칭 기도문에 나오는 인물들이 많아서 익숙했다. 교리 공부라고는 30년 전 초등학교 때 했던 것이 전부이고 성인전을 읽거나, 성경공부를 하지 않는 소위 나일론 신자라서 이 소설을 읽으며 한국의 순교 성인전을 한번 정독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 역시 감사했다.


한국의 천주교는 선교사 없이 학자들에 의해 책으로 들여와 자생하여 싹튼 신앙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 중심에 정약용 집안이 있었고, 입으로 줄줄 외던 그 순교 성인들 중에 정약용 집안과 크고 작게 연결되어 있는 분들이 많음에 또 적잖이 놀랐다. 또 한 편으로는 당대의 쟁쟁한 학자들이 천주교라는 구실로 정치적 몰살을 당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정조가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당시의 석학들이 제대로 뜻을 펼쳤더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초기 천주교는 잔인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눈물겨운 노력과 기도로 북경 교구에서 조선 교구로 독립을 하게 된다. 이건 외교적으로도 중국의 속국에서 조선이라는 독립국으로 인정이 되는 의의를 갖는다 하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또한 한글로 쓰인 교리서의 저술과 분포를 위하여 비로소 공용어로 채택이 되었다 한 부분도 놀라웠다. 한국의 천주교 역사는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경외할만한 의의를 가진다는 것, 천주교인의 한 사람으로 무척 자랑스러운 부분이었다.



조선의 무(巫)를 만나다.

조선은 승유억불의 나라였다. 무도 요사스러운 행위라 하여 국법으로는 금했지만 이렇게 저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 민족의 삶에 뿌리내린 하나의 문화이자 종교라 할 수 있다. 관청에서도 궁궐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행해졌다 하니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어찌 떼어낼 수 있으랴.

대학에 다닐 때에 불교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불교의 경전에서도 성경과 맥락을 같이 하는 구절을 몇몇 찾아볼 수 있었다. 그때도 결국엔 모든 종교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쩌면 하느님과, 부처님과 잘 알지 못하는 알라신과, 그 밖에 모든 신들이 친구가 아닐까, 아니면 하나의 신이 지역에 따라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종교는 종국엔 너무나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강습무와 세습무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강습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행하는 것이고 세습무는 무가에서 태어난 자식이 부모로부터 무를 배워 굿을 하는, 말하자면 제사장, 사제와 같은 역할이었다 보면 되겠다. 세습무라는 것이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말이었다. 일부 타고나는 재능과 배우고 노력하여 굿 구경하는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접신은 아니어도 산사람의 마음을 녹여내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신학교를 나와 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하는 천주교의 모습과 매우 닮아 보인 것이다. 영험한 무당, 덜 영험한 무당 있듯 신부님도 재미있고 쉽게 강론을 풀어 주시는 분, 듣다 보면 자못 지루하고 졸게 되는 강론을 하시는 분이 계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신 자라는 천주교 기도문과 하늘에 있다고 믿는 무가의 천신들도 닮아 보인다. 또한 상과 벌이 있어 못된 놈은 결국엔 천벌을 받게 되는 권선징악의 논리도 천주교, 무가 할 것 없이 비슷하다. 소설의 <만남> 챕터에서는 어쩌다 무녀로 살게 된 동생과 천주교인으로 살아온 언니가 만나 같이 순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것이 무와 천주교의 닮음, 그것의 만남으로도 읽혔다.



정하상 바오로를 만나다.

정하상 바오로는 천주교의 103위 성인 호칭기도문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다음으로 나오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정약용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큰 다음에 알았고, 그 외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103위 성인 호칭기도문을 바치며 성 정하상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는 전구를 청하면서도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분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가시밭 길을 기꺼이 걸으셨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몇 달 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주제로 하는 영화 <탄생>이 개봉했을 때 주변인물로 정하상 바오로가 나왔다. 정약용의 조카 되는 사람이 말도 안 타고 어느 집 종자처럼 말 옆에서 묵묵히 걸어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그렇게 천주교로 인하여 풍비박산 난 명문가의 자제로서 열일곱이 될 때까지 글씨도 모르는 일자 무식꾼으로 자랐으나 투철한 신앙심으로 학문과 교리를 배우고 튼튼한 몸으로 주님의 종노릇을 자처하며 조선 교회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하시며 결국엔 교회 지도자가 되셨고, 순교하신 분이다.


정하상 바오로와 다산이 만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다산은 제 자식 교육에만 신경 쓰다 보니 형님의 자식, 조카를 등한시한 것을 너무 죄스러워하고, 하상은 대학자이신 숙부와의 만남을 영광스러워한다. 다산은 공식적으로는 배교한 유배 죄인 인지만 하상의 정신적 지원자가 되어주고, 그 존재만으로 조선 천주교에 천군만마가 되는데 그 둘의 만나는 장면이 장면마다 너무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 천민과 같은 차림을 하고 있는 조카의 모습에 당황하는 다산, 무식하지만 우직하고 총명한 소년 하상의 모습부터 장년이 되어 어엿한 교회 지도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는 삼촌 다산과 그걸 지켜보는 다산의 아들 학연의 질투 어린 시선, 그 시선이 어렵고도 불편하지만 다산과의 만남을 행복해하는 하상의 모습은, 그들도,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모습도 우리네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위로가 되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도 그들도 같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택도 없는 위로이지만.


책 말미에는 정하상이 마지막에 잡히며 건넨 상재상서라는 책 호교론서가 나오는데 간단히 언급된 그 상재상서가 궁금하여 검색을 해서 전문을 읽어보았다. 정하상의 스승 되는 조동섬 유스띠노가 일자무식이었던, 그러나 총기로 가득했던 하상을 가르치며 “과연, 혈통이로다” 하고 감탄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상재상서는 그 논리성과 문장의 유려함으로 당시 천주교 탄압에 앞장섰던 부사 이지연을 더 분노케 한 문서이다.


별첨 형식의 우사라는 글에서 조상 신주를 모시는 일과 제사의 부당성에 대해서 지적했다고 나오는데 그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유교의 나라에서 제사의 부당성을 어떻게 지적하였을까, 천주교 박해의 시작점이자 천주교가 사교도로 몰린 이유 중의 하나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금수 같은 천작쟁이라는 조선의 사회에서 말이다.


    죽은 사람 흔덕 앞에 술과 음식을 드림도 천주교의 금하는 바라, 산 사람의 영혼도 능히 술과 음식을 먹지 못하거든, 하물며 죽은 사람의 영혼이니까? 음식은 육신의 공궤(供饋)이오, 도덕은 영혼의 양식이라, 비록 지극히 효도로운 자식이라도, 단 음식의 맛으로써 능히 잠자는 부모를 먹이지 못하나니, 대저 잠자는 때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때이라, 잠깐 잠자는 때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죽어서 크게 잠자는 때리오?오곡으로 만든 음식과 향기로운 실과(實果)는 헛 것이 아니면 거짓 것이니, 사람의 자식 된 자 헛되고 거짓된 례로써 어찌 이미 죽은 어버이를 섬기리오?사대부(士大夫)의 소위(所謂) 목패(木牌)라 하는 것도 또한 천주교의 금하는 바라, 이미 혈육(血肉)과 골격(骨格)의 서로 연함이 없고, 구로생양(劬勞生養 : 수고로이 낳아 기름)한 상관이 없고, 또 부모의 칭호는 어떻게 중대하거늘 공장(工匠)이 만들고 분(粉)과 먹으로 꾸민 것을 어찌 참 부모라 이르겠나이까? 정리(正理)의 빙거(憑據)가 없고 양심이 허락지 아니하오니, 차라리 사대부(士大夫)에게 득죄할지언정 천주교에게 득죄하기를 원치 아니하나이다. -상재상서-


 

바로 무릎을 탁 친 부분이었다. 이토록 논리 정연하게 제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다니, 현대의 모든 며느리들에게도 칭송받아 마땅한 명문이다.



만남의 장소, 지금 이 땅이 되길

천주교, 개신교 할 것 없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천국에서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안다. 하지만 실상은 하느님 만나러 간다는 사람이 없고 다 죽은 엄마 아빠 자식들 만나러 간다 하며 눈을 감는 것이 한국의 저승이라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기복신앙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어느 정도 동의 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다. 소설이지만, 순교자들께서도 부모 자식 만복소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고 순교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하느님보다는 부모 자식이 먼저인 것이 어쩌면 한국인의 정서인지 모르겠다. 천주교인이 아니어도 죽어서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 하는 말은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 <만남> 은 유교, 천주교, 무속의 만남인 동시에 저승에서 다시 <만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유교, 천주교, 무속의 만남은 결국 통합이라는 말로도 읽혔는데 이는 또한 지금 우리나라의 종교 대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과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고, 이 파, 저 파 갈라져 있는 정치적인 통합과 만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 같기도 하였다.


경학에도 서학에도 완전히 통달해 있던 그(다산)에게는 이 상반되는 것 같은 두 개의 사상은 양자택일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서학과 경학은 완전히 대등하게 그 안에서 만나고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주교인으로서 신앙과 종교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완전한 유교인으로서 유교전통에 충실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본문 중-


책의 말미에 적힌 만남의 의미는 이러하다. 다산처럼 완전히 통달한 경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많은 책과 매체를 통해서 여러 사상과 철학과 종교를 자유로이 만날 수 있다. 뭐든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가 더 다양한 만남을 더 너그러이 포용하는 땅이 되었으면 하는, 그래서 만남의 장소가 나중에 저승이 아닌 지금 이 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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