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 방학,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벌써 끝나버렸다. 바로 역사 그림책 전집 한 세트를 읽기로 한 것.
이제 2학년이 되는 큰 아이와 일곱 살이 된 작은아이에게 역사 통사를 읽히는 것은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맨 처음 우리나라 고조선이라는 책을 한 권만 사서 읽어봤는데 아이들이 흥미를 보여 그다음권을 사고, 또 흥미를 보여 그다음권을 사다 보니 스무 권을 다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틀에 한 권, 주말엔 쉬며 방학 내내 야금야금 읽으려고 한 책들을 보름 만에 다 읽어버렸다.
처음 읽는 역사책은 글밥도 적당하고 그림도 예쁘지만 아이가 혼자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알에서 계속 나오는 초반 신화 이야기며,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이름, 당태종, 수문제와 같이 읽어도 모르겠는 말들, 당나라가 되었다가 갑자기 명나라로 바뀌는 중국땅의 주인등 아이가 혼자 읽어서는 글이 아니라 글씨밖에 안 읽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석을 곁들여 읽어주마 한 것이 아이들의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을파소가 뭐야? 사람이야. 연개소문이 어디야? 사람이야. 당태종이 뭐야? 중국에 당나라 황제야, 약탈이 뭐야? 침략이 뭐야? 하는 말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해설을 붙여주는 것은 물론 전하, 아니되옵니다~ 하며 동화 구연을 해 주기도 하였고 전투장면을 읽고 나서는 유튜브로 관련 영화나 드라마의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전쟁 장면을 특히 흥미롭게 보았는데 힘찬 나라 고구려 편을 읽고 난 후에는 형제의 역할 놀이에 양만춘 장군이 등장을 하고 활을 쏘아 원숭이 인형에 눈을 맞추어 원숭이들이 달아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도 하는 걸 보니 읽은 것이 머릿속 어디에 들어가긴 한 모양이다.
고대에서 중세로, 근현대로 넘어오며 아이들의 흥미도는 높아져갔다. 아는 이름이 나오고, 익숙한 지명이 나오니 더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라의 문을 연 대한민국 부분에서는 나라에 문이 어디 있어 문을 열고 닫나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비유적인 표현을 일러주니 문을 빨리 열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념대립이라든지 독재정권, 신분차별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의 눈을 볼 때면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들의 마음에 내가 공연히 먹칠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에 두 권을 읽기도 하고, 한 권을 두 번 읽기도 하였다. 읽으며 역사와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승만이 한국전쟁 때에 한강다리를 폭파하는 장면을 읽어주며 떠오르는 사람 없어? 하고 물으니 이순신 장군 때에 임금님 하고 비슷하다 대답한다. 광복의 기쁨과 그 이면의 아쉬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다. 일본을 우리 손으로 혼내줄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아이들도 안타까워한다. 역대 대통령의 그림을 보며 감옥에 간 사람들을 알려주었다. 대통령이 이러이러한 잘못을 하여 감옥에 갔고, 잘못이 있으면 감옥에 가는 것이 평등한 민주주의라고 알려주며 그런데 갔다가 금방 나왔다고, 우리나라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고도 말해 주었다. 잘못이 있는데 왜 빨리 감옥에서 나왔냐는 질문에는 우리나라에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일찍 풀어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말해주니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 국민들, 나아가 너희 아이들이라고 말해주었다. 대한민국의 주인이라고?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네 것, 내 것 따지며 소유를 분명히 하는 아이들이지만 대한민국이 내 것이라는 것은 너무 큰 개념인 듯 고개를 갸웃한다.
덕분에 모든 국경일, 빨간 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긴 했어도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더는 당근 할아버지가 터 잡으셨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1 회독을 즐겁게 마치고 2 회독을 한 번 해보려 한다. 한 번 더 읽고 역알못 아빠와 함께 가족 골든벨 대회를 해 보면 머릿속에 조금 오래 남지 않을까, 오래 남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와 함께 뒹굴며 역사책을 읽어본 기억으로 나중에 역사를 정식으로 배우게 될 때에 조금 더 친근하고 쉽게 다다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