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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May 15. 2023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리뷰 제 1장. 

1.     첫째 장. -천지창조-

신혼여행을 로마로 갔다. 벌써 9년 전이다.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천지창조를 실물로 직접 보고 온 사람이 나다 나. 나는 정말 그림에 있어서는 막눈이 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그림으로 둘러 쌓인 그곳은 들어가자마자 압도당했다. Overwhelming 바로 그 단어가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림에 압도당하는 나와 신랑이 있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면 틀렸다. 우리는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끼이고 끼어 관광객들의 뒤통수들 사이사이로 천지창조를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나를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으니, 천지창조는 막눈이의 눈을 뜨게 하는 얼음 땡의 땡과 같은 것이었다. 

손과 손이 이어지는 그 장면, 책에서는 그 장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소 건방지게 툭 꺾여 있는 손과 있는 힘을 다해 그 손에 닿으려 애쓰는 힘들어간 손, 어떤 손이 인간의 손이고 어떤 손이 신의 손인가. 신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힘 들어간 손이 인간의 손, 올 테면 와 봐 하는 느낌의 여유 만만한 손이 신의 손일까. 답은 반대다. 아담의 손이 다소 건방진 모양새를 하고 있고, 신이 그 아담에게 온 힘을 다해 손을 뻗고 있다. 책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전하며 니체까지 소환한다. 작가의 다정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비루함이 아쉽지만,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그것도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이며 남편까지 남자들이랑만 사는 여자이다 보니 아담과 같은 다소 건방지고, 조금 게을러 보이고, 많이 무기력해 보이는 아담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에 반해 신은 이것저것 보따리 보따리 챙겨 들고 뭐 라도 너를 구원하고야 말겠노라는 의지를 불태우는 듯 보였다. 아담의 그런 모습은 칫솔로 이를 한번 문지르고 끝나는 양치질, 다 닳아 버려 내 속도 다 닳는 것 같은 연필심, 미주알고주알 학교 생활을 물어보는 엄마에게 몰라, 깜빡했어로 <말 걸지 마>를 시전 하는 아들과 닮아 보였고, 그 옆에서 바락바락 이를 닦아주고, 기어이 연필을 뾰족하게 깎게 하고, 알림장을 뒤지고 학교 친구 엄마들에게 카톡으로 아이의 동태를 물어보는 나는, 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처럼 보이는, 아이에게만은 전지전능한 엄마의 모습이 비쳤다. 신이 모두에게 있어줄 수 없으니 엄마를 주었다는 말이 내가 딸일 때는 참 감동적이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뭐 이런 말이 다 있나 싶었다. 신이 결국엔 시녀라는 건가. 내가 모태신앙으로 믿는 하느님이 아들을 이렇게 밖에 사랑하지 않으시나, (나는 툭하면 신경질에 소락대기에 등짝을 날리는 엄마이기 때문에)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으니. 왜 신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주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우리 신랑을 보면 잘 안다. 신랑은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며 손을 뻗지 않는다. 아들의 손이 무기력하게 툭 꺾여 있다면, 옳다구나 하고 벌렁 드러누워 낮잠을 즐길 사람이 아빠이니, 신의 열정적인 이미지와는 뭔가 맞지 않는다. 


아들의 연필, 쓰는 데 아무 이상 없다는 아들, 속터지는 엄마. 

책을 샀는데, 첫 장부터 신혼여행이 떠오르는 천지창조 이야기가 있어서 반갑게 시작을 했다. 이진민 작가의 책은 책을 읽다 보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인 것 같다. 육아 이야기도 그녀의 책을 읽으며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이번 책도 그렇게 될 것 같다. 


2.     둘째 장. - 유리병. 

투명한 유리병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리의 본질, 유리를 마주하면 사람은 뭔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와장창 깨지는 것이 유리의 가장 큰 속성이기에. 깨지는 것은 유리 말고도 많다. 도자기며 파우더팩트 (오늘 하나 깨 먹었다.) 스마트 폰 액정 등등, 깨지는 속성을 가진 것은 많고도 많지만 그중에서 유리가 가지는 유일한 점은 투명하다는 것. 훤히 보이기도 하고, 훤히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잔은 깨졌다. 나에 의해서. 

술꾼이었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같으면 이불 킥 하고 싶은 싸이월드 메모에 아마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 사람 앞에 들어보면 흐릿하지만 그 사람이 보이지, 탱하고 짠 하고 나서 홀라당 마셔버리고 다시 그 사람 앞에 들어보면 더 잘 보이지, 잔이 비었으니 더 훤히 보이고, 술이 들어가니 속도 더 잘 보이고. 맥주는 조금 달라. 맥주잔을 훤히 들어 사람 앞에 갖고 가면 그 사람이 잘 안 보여, 짠 하고 홀라당 잔을 비우기도 힘들지, 양이 많으니 천천히 마시다 (사실은 빨리) 잔이 다 비었을 때, 사람 앞에 잔을 비춰보면 역시 훤히 보이긴 하지, 하지만 소주처럼 금방 보이지가 않아서 난 소주가 더 좋아. 뭐 이런 내용이었다. 

술꾼이 술 마시는 장면을 귀엽게도 적어 놨다 생각했는데 당시의 나는 유리잔을 보이는 속, 보고 싶은 속, 보여 주고 싶은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홀랑 마셔버리고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술잔과 딱 붙여 놓은 걸 보면.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집은 유리잔 금지구역처럼 스텐, PP 소재 플라스틱 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는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며 다시 가끔 유리잔, 와인 잔이 등장한다. 어른과 똑같은 잔에 주스를 따라 가족끼리 짠을 하면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유리는 깨진 다는 걸 알아서 어찌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지. 그 모습이 의젓하고 귀엽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유리잔이 보여주었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유리,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 큰 충격에도, 오븐의 고온에도, 냉동에도 깨지지 않는 유리들도 강화 유리라는 이름으로 많이 나오지만 깨진다는 유리의 제1 속성에는 큰 변화가 없다. 깨지니까, 조심하게 되고, 그것이 사람을 더 성숙하고 의젓하게 만든다. 속 안에 뭐가 들었는지 유리 술잔의 투명함에 주목했던 20대의 술꾼은 강화유리도 깨지긴 깨지더라 하는 40대의 주부가 되어 유리의 깨지는 속성에 집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변하고, 유리는 변함이 없는데 주목하는 포인트가 달라졌다. 재밌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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