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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l 20. 2023

엄마표 경양식.

엄마표는 노포가 아니라, 이 맛이 아닐세.

 경양식을 사전에서 찾으면 간단한 서양 음식이란 뜻풀이가 나온다. 輕洋食 <경> 자는 바로 가벼울 경 자인 것이다. 간단하게 먹는 서양 음식이라는 경양식, 서양에서는 정말 가벼운 식사처럼 이런 걸 먹을까?


내가 돈가스를 처음 만들어 본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전에도 엄마랑 옆에서 조물 거리며 밀가루 계란빵가루를 묻혀보긴 했지만 나 혼자서 고기 사다가 우유에 재어서 돈가스를 만들어 튀기기까지 한 것은 아마 5학년이나 6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돈가스를 그냥 케첩에 찍어 먹었던 것 같다. 시판 돈가스 소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지금도 돈가스는 케첩에 찍어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우리 아이들은 스파게티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큰아이가 그렇다. 종류를 불문하고 스파게티라면 어른 1인분 이상을 먹어서 주식을 파스타로 바꾸면 아이의 키와 몸무게가 쑥 자랄 것 같은데 또 한국사람이 매일매일 파스타만 먹기는 마음이 또 허락을 안 하니, 이건 무슨 조화인지. 그렇게 온갖 파스타를 다 좋아하는 아이가 경양식 스파게티를 먹어보고는 세상 최고로 맛있다고 엄지 척을 날리며 그 푸짐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토마토 스파게티도, 크림 파스타도, 알리오 올리오도, 까르보나라도 맛있지만 이 스파게티가 정말 맛있다는데, 한 번 해 줘야지 별 수 있나.


토마토소스, 크림소스는 파스타 소스로 잘 나오는데 경양식 파스타 소스는 팔 질 않는다. 돈가스 소스를 팔긴 하지만 또 그 맛이 아니니 그냥 생으로 만드는 수밖에. 대충 찾아보니 밀가루와 버터를 볶던 루에 케첩과 간장을 넣어 색과 맛을 좋아하는 쪽으로 맞추면 되는 것 같았다. 마침 우스타 소스도 집에 조금 남아있으니 바로 도전.


버터를 녹이다가 밀가루 한 스푼을 넣어 볶는다. 그리고 케첩 투하, 진간장 조금 넣고, 우스타 소스 조금 넣고,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100밀리짜리 주스가 한 팩 있어 그걸 넣었다. 새콤 달콤한 맛이 육수처럼 쓰이면 맛있을 것 같았다. 치킨 스톡이 있어 조금 넣고 간을 보며 단 맛이 부족한 것 같아 달달 볶아 얼려둔 양파를 세 큐브 정도 넣었다. 걸쭉한 소스는 완성이고 여기에 이제 양파를 다져 넣고 보글보글 끓이니 제법 그럴듯하게 소스가 완성된다. 색감이 조금 검붉은 색으로 나온 것이 아쉽다. 덮어 놓고 넣다 보면 이렇게 되니 다음번엔 계량을 참고하고, 케첩의 양을 늘려 더 빨갛고 예쁜 색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스파게티 면을 삶았다. 아이들이 하도 온 얼굴에 묻히고 먹어서 집에서 파스타를 해 줄 때에는 보통 숏 파스타로 포크로 찍어서 먹게 하는데 경양식의 파스타는 꼭 국수여야 할 것 같아 면으로 삶았다. 면을 6분 정도 삶다가 소스에 넣어 아주 푹 삶았다. 경양식에 알단테는 어울리지 않으니.


곁들이는 음식으로 냉동실에서 자고 있던 함박 스테이크를 꺼내 구웠다. 채소를 많이 다져 빚은 것이니 가끔 반찬 없을 때 단백질과 채소를 한 번에 먹을 수 있어 손이 많이 가더라도 만들어 쟁여두는 반찬이다. 그동안 함박 스테이크도 그러고 보니 소스 없이 그냥 먹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탕수육도 부먹도 찍먹도 아닌 플레인을 선호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소스 없는 함박 스테이크도 그냥 잘 먹었다. 굳이 소스를 만들 생각이 안 들만큼. 아니면 케첩이나 머스터드 정도 찍어 먹었을까? 그렇게 플레인으로 즐기던 함박 스테이크에 오늘은 경양식 소스를 조금 끼얹어 보기로 한다.


한 접시에 세팅을 하닌 그럴 듯 한 엄마표 경양식 한 상이 만들어진다. 색깔이 조금 까맣게 되었지만 맛은 얼추 비슷한 것 같다. 신랑은 오랜만에 먹는 함박스테이크가 맛있다며 리필을 했고, 큰아이는 스파게티를 리필을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5분 정도만 삶아서 올리브 오일에 묻혀 냉장고에 보관하며 그때그때 소스랑 포르르 끓여서 간편하게 먹는다는데 나도 그렇게 파스타를 햇반처럼, 컵라면처럼, 밑반찬처럼 매일 해 주면 아이가 더 잘 자랄까 싶은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순간이다.


크림 수프에 후추 톡톡 하고, 양배추에 케마 소스를 더 하고, 통조림 옥수수가 토핑으로 여기저기 올라가야 더 그럴 듯 한 경양식이 되겠지만 있는 재료로 대충 털어 만들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다 생각하며 한 끼를 때운다. 다음에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다니던 성남의 한 노포 경양식 집에 아이들과 함께 가봐야겠다. 교복을 입고 가면 천 원을 할인해 주던 곳, 친구들과 함께 먹던 그 한 접시가 떠오른다.


아, 내가 만든 오늘 경양식에서 빠진 것은 샐러드, 옥수수 통조림이 아니고 그런 추억, 기억의 맛이었나 보다.  그것이 있어야 진정한 경양식인데, 내 손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맛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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