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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l 30. 2023

액상 계란이라는 신세계

방학을 맞는 엄마의 자세.

아이들의 방학과 한여름이 동시에 찾아왔다. 제일 밥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와 제일 밥을 하기 싫은, 힘든 계절이 함께 찾아온 것이다. 이런저런 것들로 냉동실을 먼저 채운다. 냉동 갈비탕 중에서도 뼈 없는 갈비탕을 사서 채워 넣고, 우유만 조금 추가해 끓이면 되는 크림 수프를 사서 얼려 두었다. 김말이 튀김과 생선도 넉넉히 있고, 간식으로 먹을 떡과 빵도 준비한다. 이제 대충 새벽 배송이나 마트 마실로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사면될 것 같다.


마침 계란을 다 먹었다. 애들이 계란을 좋아해서 항상 두 판씩 쟁이는 편인데 이번에 계란이 똑 떨어지고는 계란 사기가 그렇게 귀찮았다. 껍데기에 꼬이는 날파리며, 계란 껍데기에 식중독 균이 많다는 기사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지난 40년간 계란 때문에 식중독 걸린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계란 껍데기 버리고, 계란 까서 섞는 것이 귀찮으니 별게 다 거슬리는 모양이다. 몇 번 구시렁거렸더니 구글이 정말 내 말을 도청이라도 하는지, 액상 계란을 광고로 떡 하니 보여준다. 액상 계란? 이건 뭐야?


내돈내산입니다

상품 설명을 보니 계란을 풀어 살균하여 알끈까지 제거한 형태로 우유팩에 담겨 오는 것이었다. 전란, 노른자, 흰자 취향에 맞게 골라 살 수 있었다. 오케이, 일단 여름 방학 동안엔 이걸로 연명해 보기로 한다.


제일 먼저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확실히 액체가 곱다. 빵에 흰자 노른자가 섞이는 구간이 없이 고운 노란색의 프렌치토스트가 손쉽게 완성되었다. 계란 두 개? 계란 세 개? 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필요 한 만큼 부으면 되니 엄청 편했다. 오예!


그리고는 냉장고에 잠자던 가지를 꺼내어 전을 부친다. 전 부칠 때도 굉장히 유용했다. 섞을 필요가 없이 졸졸 따라 부으면 되는 계란물이라니, 별 것 아닌 과정 하나가 줄었다고 가지전 부치는 것이 너무 편해진 기분이다. 사람은 이렇게나 단순하다.

계란 요리들.


따로 주문한 노른자액으로는 이태리식 까르보나라, 계란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노른자만 따로 분리하여 치즈가루를 섞어 소스를 만드는 것인데, 남은 흰자를 부쳐 먹는 일이 상당히 귀찮았는데 노른자만 원하는 만큼 졸졸 따라서 소스를 만들 수 있어 너무 신이 났다. 노른자를 넉넉히 부어 꾸덕하고 진한 소스를 많이 만들어 주고, 남은 노른자에는 전란액을 붓고 다져서 달달 볶아 냉동실에 큐브로 얼려둔 채소를 꺼내어 달걀말이를 만들어 두었다. 이건 나중에 먹기로 한다.


나란 사람, 참 단순하기도 하다. 요리 자체가 하기 싫어 며칠을 빈둥거렸는데 그깟 액상 계란이 배달 왔다고 이렇게 요리를 해댄다. 계란에 한정되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래도 이 폭염에 열심히 불 앞에서 요리를 한다. 방학에 배달음식, 외부음식, 라면, 인스턴트 줄여보려고 노력하는데 액상 계란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해야 할까. 액상 계란이 조금 도와주니까 나는 이렇게 큰 힘을 내어 요리를 하는 것이 아이 같기도 하다.


조금 칭찬해 주면, 조금 엉덩이 톡 하고 쳐 주면 신이 나서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마흔의 나에게서도 찾는다. 액상 계란이 그런 역할을 할 줄은, 주문할 땐 몰랐다. 뼈 없는 갈비탕에 넣고 같이 끓일 무를 사서 남은 무로는 어묵탕이나 한 번 더 끓일 예정이고, 크림 수프를 샀으니 크림 수프에 맞는 양식 한 상 (파스타 정도) 해 먹을 예정이다.


이번 방학도 이런저런 "템"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나기를 바란다.   


여름 방학 수칙 제1장. 주는 대로 먹을 것, 너무 열심히 해 주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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