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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04. 2023

피자를 만들어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오늘은 밀린 방학 숙제를 하듯 피자를 구워 먹었다. 방학이면 으레 엄마와 쿠킹을 했는데 이번 방학엔 도통 꼼짝을 않는 엄마가 이상했던 모양인지 둘째가 말을 꺼낸다. 뭐 좀 만들어 먹자고. 그래, 그래야지.


간단히 또띠아에 소시지를 싸서 먹게 할까 하다가 그래도 방학인데 오랜만에 피자 만들기를 꺼내 들었다. 피자 도우 반죽 하는 것을 언제나 찾아보지만, 계량대로 되진 않는다. 피자 반죽이 쫄깃 해도 맛있지만, 집에서 먹는 것은 부드러운 도우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남은 반죽으로 다른 빵을 만들고 싶어서이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서 찾아본 계량표에 물도 조금 더 넣었고, 계란 (지난번에 구매 한 액상계란 난황액) 도 조금 넣었다. 올리브유도 조금 더 넉넉히 넣었다. 지난번에는 우유를 넣어 반죽을 했는데 물론 맛있었지만 피자빵 느낌이 나서 이번엔 우유는 빼고 물과 올리브유로 반죽을 했다. 계란 노른자물이 들어가니 반죽이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것이 더 먹음직스럽다.


여름이라 발효가 정말 빠르다.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두 배 가까이 부푼다. 스파게티 소스에 양파 버섯을 다져 넣고 한 번 더 볶아 소스를 해 놓고 미니 밤호박을 쪄서 으깨 두었다. 애들이 어릴 엔 밤호박을 비롯한 구황작물을 참 잘 먹었는데 자라며 간식에 맛을 들여 그런지 밤호박을 잘 안 먹으려고 한다. 자연의 단 맛이 인공 단맛에 밀리나 보다. 좋은 것 먹이고 싶은 엄마 입장에서는 조금 속상하지만, 언젠가 너희도 나이가 먹으면 채소의 단 맛, 재료 본연의 맛을 더 좋아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엄마도 어릴 때 채소 진짜 안 먹었어.라고 하면 아이도 빙그레 미소 짓는다.


채소를 안 먹으면 키가 안 큰다고, 건강해지지 않는다고 하는 잔소리는 밥상에서는 종종 터져 나오는데 함께 쿠킹을 할 때는 즐겁게 만들고 먹으려고 최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완성품을 잘 먹는 아이들인걸 알아서 그런 잔소리는 쿠킹 시간 다음으로 미룬다. 사실 잔소리 한 다고 잘 먹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엄마가 채소를 안 먹으니 다른 엄마들보다 키가 작은 거 아니냐며 엄마 시금칫국 더 뜨라고 역으로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 잔소리는 최대한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올 때가 많다.  




피자 틀에 반죽을 성형하며 겉에 스트링 치즈로 치즈 크러스트를 만들었다. 나머지 토핑은 아이들의 몫이다. 능숙하게 소스 먼저 바르고, 똥모양으로 고기 반죽을 짜 넣고 치즈를 올린다. 단호박은 손으로 동글동글하게 빚어 올려보라 했다. 물기가 없는 포슬한 단호박이라서 손으로 꾹꾹 떡 빚듯이 반죽을 하니 모양이 쉽게 잡힌다. 치즈로 또 덮는다. 이태리식 얇은 피자를 좋아하는데 집에서는 이것저것 넣고 싶은 욕심에 언제나 Too much Pizza로 완성이 되지만 이것이 또 홈메이드의 매력이라, 평소에 안 먹는 재료들을 마음껏 넣는다. 치즈 맛에, 소스맛에 양파도, 버섯도, 단호박도 맛있게 먹게 될 터이니. 마지막으로 올리브와 살라미 토핑을 얹어 구웠다. 이 폭염에, 200도까지 열을 내야 하는 오븐에게 괜스레 미안하다.



피자의 크러스트 부분이 맛있게 잘 되었다. 파는 피자처럼 쫄깃하진 않지만 식감이 부드럽고 치즈가 들어가 고소하다. 빵 레시피도 감으로 해버리는 나란 여자, 다음에 똑같은 반죽을 만들어 내지 못하겠지만 나의 둔한 미각은 이것도 저것도 다 맛있게 먹을 테니 걱정은 없다.


하루가 더 지나고 있다. 오늘은 뭘 할까, 하는 아이들에게 피자 만들어 먹었잖아 하니 이제 뭐 할까 하는데 이제 뭐 하지. 바깥 날씨를 보니 너무 뜨거워 보여 나갈 수가 없겠다.


저녁에 밤마실이나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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