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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0. 2023

그냥 밥을 먹는 집.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

브런치에 새로운 기능이 생긴다더니 내 필명 밑에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배지가 달렸다. 푸드, 와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를 한참 바라본다.


푸드, 나 먹기보다 아이들을 먹여야 하니 밥 하기 혹은 식사 챙기기 (외식, 배달 포함)은 나의 숙명 처럼 되어 버렸으니 푸드라는 말은 나와 애증의 관계이나, 관계를 맺은 단어가 맞다. 그렇다면 크리에이터, 창작자란 말은 어떨까, 글을 쓰고 있으니 창작자는 맞지만 매우 부끄럽다. 창작자가 써낸 글이라 하기엔 너무도 소박하기에, 더구나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는 단어와 짝꿍이 되어 창작자가 되었으니, 이 오묘한 기분이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아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요리와 홈베이킹을 주제로 엮는 글들을 브런치팀에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메인에 자주 올랐지만 글을 잘 써서 메인에 걸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적당한 사진, 볼거리로 사이트를 찾는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일 테니, 내 컨텐트는 잘 쓴 글이라기보다 볼만한 "거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주제에 일관성도 없고, 그냥 대충 만들기에 레시피도 제공하지 않으니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는 잠깐의 볼거리 이외에는 남는 것이 별로 없으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배지를 달아주셨으니 넙죽 받기에는 민망하지만, 그래도 살포시 받는다. 부끄러워 딴 데 쳐다보며 사탕을 얻어먹고는 쪼르르 도망가는 꼬마아이처럼.



우리 집도 그냥 밥을 먹는다. 이번 끼니도 밥, 뼈 없는 냉동 갈비탕, 생선구이, 소시지 볶음에 김구이를 얹었고 단호박 한 조각을 추가했다. 이 정도면 차려먹은 편에 속해서 사진을 남긴다. 아이들도 엄마 밥 보다는 아빠가 한 가득 사온 간식에 더 열광하고, 신랑도 라면이 먹고 싶은 날이라며 안성탕면을 끓인다. 밥 차려 놓고 열 번은 불러야 밥상에 앉는 아이들, 밥 보다 놀이가 더 좋은 아이들이다. 애들은 입이 조금 짧은 편, 그나마 집에서 만들어 떠 먹이는 밥을 잘 먹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엔 큰 아이 삼시 세끼에 둘째 이유식까지 부엌에서 살았지만 이젠 부엌일의 총량이 다 된 듯, 만사 귀찮기만 하다. 날씨가 더운 여름이라 더 한 것 같다. 아이들이 가끔은 분식집에서 한 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을 만큼 자라니 예전처럼 정성을 들여 매 끼 해 먹일 필요가 없어졌는데, 의무의 강도와 칼질의 빈도가 낮아진 밥 하기는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가 낮아지는 자동차처럼 더, 더, 더, 귀찮기만 하다.


요즘은 정말 요리 권태기 이른바 <요태기>가 왔나 보다 싶기도 하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 방학, 많이 자란 아이들, 밀키트와 간편식의 유혹, 그리고 오전에 영어 유치원에서 파트로 일을 하게 되어 조금 바빠진 나의 일상이 더해져서 그렇다. 가끔 먹는 특식, 아니면 대충 때우는 한 끼의 극단을 오가는 우리 집 밥상이었는데 갑자기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라니 너무나 부끄러운 배지이다.


예전에 끓여 낸 홈메이드 갈비탕,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자주 끓였는데 요즘엔 너무 귀찮다. 김치는 시어머님 김치.


뼈 없는 냉동 갈비탕을 해동하며 갈비를 사다가 핏물 빼서 갈비탕을 끓여내던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갈비탕은 어려운 요리는 아닌데 귀찮은 요리이다. 맛이야 소갈비와 무, 파, 마늘이 알아서 내어 주니 나는 핏물을 빼고 기름을 걷어내고, 소기름이 잔뜩 끼인 그릇의 설거지를 잘하면 된다. 처음 갈비탕을 끓이던 날, 나는 밥을 맛있게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특별한 재주가 있기보다 귀찮음을 잘 견디는 사람이, 뛰어난 미각을 가진 사람보다는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 요리를 잘하는 것일 거라고. 특별한 재주는 화려한 섬세한 칼솜씨로 당근으로 새도 만들고, 채소로 용도 만드는 손재주이겠지만 비싼 요릿집에서, 혹은 어쩌다 한 번 필요하지 매일매일 돌밥 돌밥 해야 하는 집에서는 그다지 용이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쪽파를 다듬는다거나, 마늘을 저민다거나, 육수를 우려내는 귀찮음을 견디는 것이 집밥 하는 사람이 더 닦아야 할 도이다. 뛰어난 미각을 가졌다면 평범한 솜씨로 집밥을 해 내기가 더 힘들 것이다. 기준은 높은데 내 음식은 성에 차지 않으니 온갖 노력을 다 해 원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거나, 혹은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평가하며 미각이란 재주를 사용하는 것이 더 옳다. 최악의 경우, 집에서 음식 타박을 하는 영감이나 할멈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집에서 밥을 하며 밥 하는 것과 요리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았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밥 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요리에는 큰 소질이 없지만 밥 하는 것은 편하게, 쉽게, 즐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디에다 내놓고 팔만한 요리에도 능하지 못하고, 밥 하는 것은 너무나 귀찮아하는 그저 평범한 애들 엄마이다.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란 말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요리 말고 집밥, 밥 하기의 즐거움 보다 밥 하기의 지겨움을 글로 써내는 사람, 이라고 하면 그 배지가 비로소 나에게 조금 어울린다.


오늘은 뭐 먹나를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께, 오늘의 예상 식단을 공유합니다.


아침은 비요뜨, 점심은 각자 유치원과 제가 출근하는 영어 유치원에서 아직 초등학교 방학이라 저랑 같이 출근하는 큰아이와 저는 유치원 급식을 먹고, (신랑은 알아서), 저녁은 큰 아이가 주문한 토마토 파스타를 먹을 예정입니다.


급식의 소중함! 다들 공감하시죠? 개학 얼마 안 남았어요. 힘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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