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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3. 2023

당근이 많아서,

당근 라페 만들어 많이 먹기

못난이 당근을 사 둔지 한참이 지났다. 못난이 당근 한 봉지는 크기도 들쭉 날쭉하고 흡사 산삼처럼 뾰족 뾰족 울퉁불퉁하기도 하다. 당근은 거의 작게 잘라먹거나 다지거나 채쳐서 먹으니 모양은 상관이 없어 저렴한, 못생겨도 맛있는 채소 제품들을 자주 구매한다. 사실 겉모양은 일괄적인 게 더 이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생긴 것이 각각 다른데 농산품이라고 어떻게 일정한 모양으로 출하가 될까, 어떤 건 아래위로 길고, 어떤 건 좌우로 통통한 것이 정상일 텐데 말이다. 나는 그런 채소들에게 못난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그렇게 달갑지 않다. 못난이 말고 가정용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흠집 과일들을 가정용 이라라고 조금 저렴하게 팔듯 말이다.


당근은 요리용이라기보다 생식용으로 많이 소비하는 편이다. 아이들 음식으로 작게 잘라 카레에 넣거나, 볶음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잘게 채 썰어 샐러드드레싱을 뿌려서 내가 먹는다. 당근은 다른 채소들에 비해 수분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장기 보관도 가능한 편이고 익힐 때 물도 많이 나오지 않는, 그래서 당근즙을 짜내면 즙보다 찌꺼기가 더 많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서양식(?) 당근 절임 당근 라페를 만들어보니 당근에서도 이렇게 물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당근이 장기 보관이 가능해도 냉장고에 한참 있으면 조금 마르는 것이 보인다. 그럴 기미가 보이면 얼른 채칼을 꺼내와 가장 가늘게 채를 썰어낸다. 아니 힘주어 빡빡 민다. 당근 네댓 개를 양푼에 채 썰어 넣고 소금을 한 큰 술 슬슬 뿌려 두고 딴 일을 하다 보면 당근이 절여지는데 소금에 절여져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이 생기면 두 손으로 꽉 짜낸다. 물기가 생각보다 엄청 많이 나온다. 짜낸 물기만큼 부피도 줄어든다. 그러면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홀그레인 머스터드, 설탕을 조금 넣어 버무린다. 그러면 냉장고 한편을 차지하던 당근이 한 그릇 부피로 줄어들며 훌륭한 당근 샐러드가 된다. 당근 초절임, 빵에 올려 먹어도 좋고, 그냥 샐러드 한편에 놓고 먹어도 좋다. 오늘은 김밥에 이용했다.


참치마요로 삼각김밥을 만들어 대충 한 끼 먹으려 했더니 둘째가 삼각김밥 말고 그냥 김밥을 애타게 외친다. 그냥 김밥, 그냥 김밥!!! 알았어, 먹고 싶다는 걸로 해줄게.



급히 어묵을 꺼내어 채 썰어 볶았는데 단무지가 없다. 이런, 그러다가 당근라페가 있으니 그걸로 되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단무지 없는 김밥을 싼다. 재료는 어묵볶음과 참치마요, 당근라페, 그리고 부쳐먹고 조금 남은 계란이 되시겠다. 새 밥도 아니고 냉장고에 찬 밥을 데워 기본 간을 하고 냉동실에 보관 중인 흑임자 가루를 넣어 고소함을 더한다. 당근라페는 아이들에게 그냥 한 번 먹으라고 주었더니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알싸한 맛 때문에 맵다고 먹기를 거부하였는데 이런저런 재료들과 섞이니 알싸한 매운맛이 묻혔나 보다. 엄지 척을 날리며 맛있게 한 끼를 먹어 준다. 평소엔 당근 한 입 먹이기가 그렇게 힘든데 당근이 엄청 들어간 당근라페 김밥을 이렇게 잘 먹으니, 채소 먹일땐 역시 김밥이구나.  


한식도 장아찌등의 절임류에는 어디 나가 뒤지지 않는 문화이지만 새로운 절임 음식을 알게 될 때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간장 식초에 절이는 우리식 장아찌와 레몬즙 올리브 오일에 절이는 서양식 장아찌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장아찌 김밥이 맛있듯 당근라페 김밥도 아주 맛이 좋았으니, 다음에도 당근을 많이 사서 당근라페를 만들어 놓고 두루두루 써먹으면 좋겠다 싶다.


 누가 나 못생겼다고 못난이 사람, 가정용 사람 이라하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하며 못난이 당근 말고 그냥 당근이라 불러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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