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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6. 2023

내가 만든 초콜릿 쿠키

마음의 위로.

가끔 내가 만든 초콜릿 쿠키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메리칸 르뱅 쿠키를 전문으로 하는 집들도 많다. 집 근처에도 있고, 택배로도 간단히 받아먹을 수 있는데, 그런데도 만들어 먹는 이유는 내 쿠키가 특별히 더 맛있어서라기보다 잔뜩 구워 여기저기 나누어 먹는 맛, 내가 아는 재료로 만든 쿠키이니 초콜릿이 조금 다크해도 내 아이들에게 기꺼이 한 입 줄 수 있는 그런 맛이 있기 때문이다.  다크 초콜릿을 줄줄 흐를 만큼 쏟아부은, 코코아 파우더를 많이 넣어 검은색을 띠는 나의 초콜릿 쿠키, 뭔가 기분이 가라앉거나, 단것이 먹고 싶은데 시중 과자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틈이 느껴질 때, 그럴 때 굳이, 손수 초콜릿 쿠키를 굽는다.


요즘이 그랬다. 아직 날씨가 덥지만 확실히 한 풀 꺾였고,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에 열기가 빠졌음을 느끼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러데이션, 날씨는 그렇게 또 변하고,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한 소끔 자랐는데, 나는 뭐 했나 하고 싱숭생숭하던 차였다. 다이제 초콜릿쿠키를 사서 한 줄을 다 비웠건만 그래도 더 달고, 더 진한 무언가가로 내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달까. 아니면 영양이 부족해서 달고 진한 초콜릿을 내 몸이 원했던 걸까.



무려 앵커버터 한 블록을 다 사용한 대용량 생산에 들어갔다. 팔은 좀 아프지만 핸드믹서가 없던 시절엔 도대체 이런 디저트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버터는 크림화되어있고, 그 위로 소복이 밀가루와 초코가루가 쌓이고 있었다. 서걱서걱 잘 섞으며 날 가루들을 가라앉히고, 다크 초콜릿 커버춰 500그람 한 봉지를 다 쏟아부었다. 다크 초콜릿 커버춰의 성분은 무척 심플하다. 코코아매스, 코코아버터, 설탕, 레시틴, 나의 쿠키엔 밀가루, 무가당 코코아 파우더, 천연 버터, 계란, 설탕, 베이킹파우더만 들어간다. 다이제의 성분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심플함을 자랑한다. 집에서 만드는 쿠키의 맛은 내가 모르는 재료들을 넣지 않는다는 자부심의 맛도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한 스쿱씩 떠서 냉장고에서 일단 조금 굳힌 후, 서너 판을 구워내었다. 쌓인 쿠키는 한가득, 나머지 반죽은 냉동실로 들어가 언제든 간단히 구워 먹을 수 있는 나의 비상식량이 된다. 여기저기 선물하기도 좋다.


집안에 퍼지는 초콜릿 쿠키의 냄새는 황홀하다. 둘째는 너무 초콜릿 쿠키만 먹고, 첫째는 초콜릿 쿠키를 전혀 먹지 않아서 한동안 굽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홈메이드 쿠키를 생산해 내니, 맛있음보다 기쁨이, 배부름보다 행복이 앞선다. 혼자 다 먹으면 살찌고, 혈압 오르고, 당뇨 생기니까 이런 음식들은 굽는 족족 나누어 여럿이서 조금씩 행복을 맛본다. 이번엔 여름방학 내내 큰아이의 독서지도를 잘해주신 국어학원 선생님께,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학원 선생님들께로 나눔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주 맞닥뜨리는 그런 당 떨어지는 순간들, 더구나 긴 연휴를 끝내고 오랜만에 공부를 하러 온 아이들을 맞이하는 직장인이자 선생님의 마음을 이 초콜릿쿠키가 한순간이라도 잘 달래줄 수 있다면, 열심히 쿠키를 만든 보람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음의 양식은 책이라는데, 초콜릿 쿠키는 마음의 비료라고 해야 할까, 매일 먹는 것이 아니고 지치고 한숨 나는 순간에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그 시간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니 적어도 내가 만들어 나누는 초콜릿 쿠키는 순간의 위로 정도는 되지 싶다.


초콜릿 쿠키를 먹는 둘째의 표정이 행복하다.


맛있어?


응!


그래, 그걸로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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