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Aug 20. 2023

2015년의 노트 한 권

염세적 마음에 리프레쉬를 가져오다.

 언제부터인가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빠와 이모 두 분이 하늘나라로 가시게 되며 영화 코코의 주제곡 Remember me 의 첫 소절만 들어도 눈물이 펑펑 나는 내가 되었다. 점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지상보다 하늘에 더 계실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하늘에 갈 나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언제 어떻게 가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크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해 두었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조만간 꼭 해 두려 하는 만큼 목숨 자체에 대한 미련은 크지 않은 편, 다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너무 험한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언젠가 내가 떠나고 난 그다음을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 나의 물건들을 정리할 것인데  그날 유난히 일기장들이 거슬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모아 온 일기장은 없지만 스무 살 이후부터 모아 온 다이어리들이 예닐곱 권 정도 있었는데 그것들을 주르륵 펼쳐보다 보니 남이 봐선 안 될 내용들, 보여주기 싫은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아마 우울증의 한 발현이었지 싶은데 그래서 그날 그것들을 몽땅 다 버려버리는 선택을 했다. 일기장은 여대생, 아가씨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플래너 형식의 간단한 기록 위주로 어디서 누굴 만나 무얼 먹었고 가 주로 쓰여 있었고, 간혹 남을 흉보는 내용, 짝사랑이나 연애상담에 열을 올리던 그런 내용들이 가끔 보였다. 내가 죽은 후, 누가 그걸 본다고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의 선택을 가끔 생각하긴 하는데 후회는 없다. 그리고 종종 어느 날, (주로 우울한 날일 것이다) 날을 잡아 내 물건들을 버린다. 지금 필요 없는 것들, 앞으로 안 쓸 것 같은 물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엔 내가 죽으면 남에게 보이기 싫은 물건들도 포함된다. 너무 낡고 더러워진 물건들, 그래서 나를 불쌍하고 처량한 사람으로 기억되게 하기 십상인 물건들이 1차 대상이다. 그리고는 기록물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했다. 사진을 찍어두고 버린 것도 있고 그냥 버린 것들도 있다. 나는 내 흔적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싶기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요즘 들어 더 자주 한다. 뭔가 마음에 우울이 있는 건지, 세상이 뒤숭숭해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당장 우리나라 여름을 덮친 이상 기후부터 하와이 산불을 바라보며 곰곰 생각한다. 지구의 종말이라는 것이 재난영화처럼, 엄청난 해일과 지진과 폭발로 <지구, 오늘로 끝. 지구인 모두 사망>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원래 없던 일들, 환경이 파괴되어서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일어남으로써 그 직접적인 피해를 내가 입게 된다면 그것이 종말이 아닐까, 지구는 아직 연명하고 있어도 그런 일들로 내가 고통받고 결국 죽게 된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지구의 종말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당장 내가 여기저기 가입 해 둔 사이트들, SNS 며 카카오톡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이것들을 다 어쩐다, 오프라인에 실물로 존재하는 흔적들은 어찌 정리가 가능해도 이 온라인의 흔적들은 어떻게 정리를 하지, 휴면계정 제도라는 것이 생기긴 했지만 내가 그동안 가입했던 사이트들, 나도 모르게 가입된 사이트들을 합치면, 그리고 직접적으로 사진과 글과 이메일을 남기며 사용하는 사이트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요 며칠 내 머릿속에서 윙윙 거렸다. 자동 로그인이 되니 아이디와 비번을 나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도, SNS 도 작작 사용해야겠다는 다짐이 저절로 든다. 내가 올린 데이터들을 보관하느라 그것도 전기고 돈이고, 환경오염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이메일 보관함을 적당한 때에 삭제하는 것만으로도 지구 온난화를 조금은 늦출 수 있으려나, 요즘은 warming 이 아닌 boiling, 온난화가 아니라 끓는다고 표현한다는데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 빈도가 적은 것들부터 하나씩 발을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어쩐다? 그래도 정제되고 다듬은 글들이니 놔 둬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오늘 작은 노트를 한 권 발견했다. 2015년 다이어리 대신 쓰던 작은 노트이다. 한동안 겉이 가죽으로 된 비싼 다이어리를 선호했던 시절이 지나고 비로소 소박해진 노트, 그래서 책장에 끼워져 있어 그때 다이어리 버리던 날 용케 내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노트이다.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의 행적이 비교적 자세히 적혀있다. 잊고 있던 기억도 스케줄에 적힌 내용을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도 한다. 영화 샌안드레아스를 보고 지구 종말에 대해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그리고 그 소소한 기록은 2015년 10월 첫째를 임신하고 지옥 같은 입덧이 시작되는 무렵 끝이 나 버렸다.


이 작은 노트를 한참 바라보았다. 하루하루를 떠올려 보았다. 그 어느 하루도 내 하루가 아니었던 것이 없었다. 나는 흔적을 지우려, 죽은 후를 생각하며 물건을 비웠지만 이 노트 한 권이 꿋꿋이 살아남아 내가 남기는 흔적의 가치를, 내 삶의 의미와 이유를, 추억의 은은한 향기를 알리며 내 마음을 환기시킨다. 남에게 창피한 모습을 절대 보일 수 없다는 나에게, 그러면 좀 어떠냐고 토닥이는 것 같다. 나는 어쩜 이렇게 뾰족할까 생각하는 나에게 뾰족하면 좀 어떠냐고 또 토닥이는 것 같다. 노트의 표지가 어린 왕자이다. 관계를 맺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것들이 나를 소중히 여길 거라고도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나의 흔적이 창피해서 모두 지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 들린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꽃을 키우는 엄마를 보면

꼭 내가 꽃이 된 것 같아요.

먹이고, 가꾸고, 나도 저렇게 키워주셨죠.

꽃 키우듯이 (구림) - 메모 중 일부-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 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아마도, 어느 책의 필사 본일 듯-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처음 소개받을 때 그 사람의 학벌이나 지위, 재산 정도 따위 보다도 그 사람의 귀여운 버릇이나 소탈한 일화 같은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이해하고 호감을 갖는데 믿을 만한 구실을 할 때가 있다. -메모 중 일부


매거진의 이전글 신랑의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