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마지막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연휴는 언제나 금방 지나고, 연휴의 마지막 날엔 하려고 했으나 못 한 일에 대한 아쉬움만이 남는다.
옷정리가 그러하다. 어떤 땐 사계절이 달갑지가 않을 만큼, 사계절에 환절기까지 하면 팔계절이 아닐까 싶을 만큼 계절의 변화는 옷장 정리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내 옷 하나 정리하는 것도 잘 못해서 옷장엔 사계절 옷이 뒤엉킨 채로 살았는데 이제는 아들 둘의 옷 정리까지 해 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아들이라 옷 가짓수가 적은 편이라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뒤집어야 하는 옷 서랍은 상당한 부담이다. 연휴 때 네 식구의 옷장을 뒤집어엎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나날이 이어지는 일정에 연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아이들 옷만 조금 정리했다. 버릴 옷은 버리고, 가을 옷을 구비하고, 봄에 입었던 옷들 중에 입을 수 있는 것들을 가려 둔다. 큰 아이가 옷을 험하게 입어 도무지 물려줄 것이 없다.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매직자국, 토마토소스 자국, 짜장자국에 가위질이 조금 되어 있는 곳도 있어 버리는 옷으로 분류를 한다. 바야흐로 환절기, 반팔도 필요하고, 긴팔도 필요하고, 점퍼도 필요하고, 조끼도 필요한 계절. 조만간 두께감 있는 옷으로 다시 바꿔야 할 테니 오늘은 대충 이만큼만 하기로 한다.
며칠 미루어 두었던 욕실 청소도 하고, 내내 먹고 싶었던 호두파이를 한 판 오븐에서 굽는다. 버터향에 달콤한 계란물이 익는 호두파이 냄새는 카스텔라 냄새와도 비슷한지 둘째는 카스텔라를 만드냐고 와서 묻는다. 머리가 똑똑해지는 호두로 파이를 만들 거라고 하니 덥석 자기도 먹겠다고 한다. 먹어서 엄마보다도 형아보다도 더 똑똑해지고 싶단다. 항상 뭐에 바빠서 책을 양껏 못 읽어주는 엄마와, 치사하게 종이접기를 잘 가르쳐 주지 않는 형아에게 하는 말인 듯싶어서 뜨끔하다. 작년까지는 호두파이를 안 먹더니, 올 해엔 엄지 척을 날리며 한 조각을 다 먹고는 더 먹겠다고 하는 아이, 조금 더 컸다고 호두파이 맛을 알게 된 걸까, 작년보다 올해 더 맛있게 구워졌나, 아니면 정말 호두 먹고 똑똑해지고 싶어서 그런 걸까, 아이가 먹은 파이 한 입에도 이유가 이토록 궁금하다니, 이 정도면 할 일 없어하는 한가한 고민이다 싶다가도 내가 너무 극성은 아닌까 하는 염려도 스친다. 냉장고에서 오래 잠자고 있는 마지막 양파 반 알을 꺼내어 가늘게 썰어 마요네즈와 치즈에 버무려 양파치즈빵도 만들었다. 빵 반죽을 발효까지 마쳐 소분하여 냉동하여 보관하니 조금씩 필요할 때 꺼낼 수 있어서 좋다.
일주일 내내 어딘가로 외출을 다닌 아이들은 오랜만에 집콕에 재밌게 논다. 아이들은 곤충로봇, 아와와 집, 유튜브 놀이등의 저희들만의 역할 놀이를 즐기는데 아이들의 만담을 듣고 있자니 정말 애들 앞에서는 찬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신다는 말이 절절히 와닿는다.
형아가 연휴 중에 방문한 종이접기 공방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흉내 내는 둘째, 어제 방문한 포천의 산정호수에서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열심히 찍사 역할을 해 준 나에게, 외국 나가면 한국사람들은 겉으로는 심드렁해도 사진을 심혈을 기울여 찍어주는데 미국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대충 찍어준다더라라는 신랑의 지나가는 말을 고대로 하고 있는 첫째를 본다. 아이를 불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아빠가 실수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맞는다. 미처 하지 못 한 일이 있으니 그건 바로 베란다청소이다. 다음 주로 미뤄보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깔끔하고 정갈하지 못 한 나의 살림 솜씨와 청소실력이 여실히 드러났던 연휴였다. 매일매일 뭐를 하느라고 힘들었다. 아이들이 있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더 힘들어 일정을 계속 잡았는데 자잘한 피로가 쌓인 모양이다.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