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1인분에 만원이 된 것에 화들짝 놀라 칼국수면을 냉장고에 쟁여두었다. 멸치 육수 한알로 육수를 내고 당근 애호박 양파를 썰어 팔팔 끓이면 되니 집에서 해 먹어야지 하고.
오전에 일을 하러 갔다가 두시쯤 퇴근하는데도 저녁 한 끼 차리는 것이 귀찮아졌다. 자연스레 한 그릇 음식으로 차리는 일이 잦아진다. 카레, 짜장, 볶음밥. 엊그제 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을 보들보들하게 넉넉히 불려 포옥 끓은 미역국이 참 맛있었다. 어제 먹고 남은 미역국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오늘은 칼국수를 해 먹어야지 하는데 채소 썰기가 귀찮았다. 국수를 밀어 써는 것도, 엄청나게 대단한 육수를 내는 것도 아닌 채소 썰기가 귀찮아서 그냥 육수에 국수만 끓일까 하다가 미역국이 생각났다. 그래, 미역 떡국도 있고 미역국 라면도 있는데 미역 칼국수라고 안 될게 뭐 있겠어?
미역국을 냄비에 넣고 다시 끓이며 소분해 둔 다진 소고기를 한 덩이 넣어 같이 끓인다. 육수 한 알을 넣어 국물맛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로 한다. 미역국은 식이섬유, 철분이 풍부하고 피가 맑아진다 하는 건강식이니, 미역국 한 그릇 잘 먹으면 다른 반찬이 조금 부실해도 엄마 마음이 조금 편하다. 미역국에 밥 말아서 뚝딱 먹듯 오늘은 미역 칼국수로 한 그릇 뚝딱 먹는다.
칼국수에 붙은 밀가루 때문에 국물이 탁하고 걸쭉해지는 것이 싫어서 항상 끓는 물에 한 번 데쳐내고 끓였는데 그 마저도 귀찮아 그냥 살살 흔들어 털리는 밀가루만 털어냈다. 덕분에 국물이 묵직해졌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미역국 칼국수에 눈이 동그래진다. 좋아하는 칼국수와 미역국의 조합이라 아이들의 입맛에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칼국수를 후후 불어 식히며 둘째가 묻는다.
엄마, 반찬은?
반찬 없어.
왜?
못했어, 귀찮아서 안 했어.
힘들어서?
응.
괜찮아. 이거 맛있어서.
미역국 칼국수 한 그릇으로 금요일 저녁을 마치고 놀이터로 나갔다. 있는 국에 끓인 거라 설거지 거리도 많지 않다. 정리가 금방이니 나도 편하고 맛있게 뚝딱 먹고 놀이터에 나갈 수 있게 되니 이래저래 모두가 윈윈한 기분.
오늘의 한 끼를 숙제처럼 마친다. 다 못 한 숙제인 냉장고 속 채소들은 조만간에 전을 부치거나 몽땅 볶아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