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토종 한국인의 영어강의 이야기.

by 멋쟁이 한제

필자는 소위 말하는 토종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영어 능력을 토종과 유학파로 나누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공도 영어와는 무관하고 영어권 유학 경험도 없으니 토종에 가깝다. 다만 전공이 중국어이고 미국 이모댁에 삼 개월가량 거주 한 적은 있다. 이모댁에서 된장국도 끓여 먹고, 동짓날에 팥죽도 끓여 먹고, 생선 냄새 폴폴 풍기며 생선도 구워 먹는 한국 문화를 실컷 즐긴 경험이다. 이모는 미국에서 40년을 넘게 사셨고, 아들이 하나 있으시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이라 이모는 아들과 한국음식을 맘껏 먹을 수 없었는데 네가 오니 참 좋다며 기뻐하셨다. 장소만 미국이었지, 영어에 대한 노출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언어에 대한 감각은 조금 있는 것 같다. 학창 시절 국어, 영어, 한문 과목을 어려워하지 않았고 학원도 안 다니고 공부도 엄청 많이 하진 않았는데, 하는 것에 비해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놀랍게도 최근 조회해 본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에 영어 회화 능력이 좋다고 쓰여 있었다. 영어 회화라는 말도 흔치 않던 시절, 정말 선생님들이 족집개 점쟁이처럼 나를 꿰뚫어 보셨음에 소름 돋게 놀랐다. 대학시절엔 남들이 다 어렵다 하는 중국어도 너무 재미있게 배웠다. 중국에서 1년 어학연수를 하며 학교에서 배운 표현을 시장을 돌아다니며 써먹는 재미에 푹 빠져 즐거운 어학연수 생활을 했다. 중국어를 전공하는 대학교에는 중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 화교라서 중국어가 모국어인 친구들도 많았지만 졸업할 때 즈음엔 나의 중국어 실력이 그들에 비해 좋으면 좋았지 절대 쳐지진 않았다. 다만 영어는 젬병이라 첫 토익 시험에서 좌절을 한 후 열 번의 시험을 독학으로 보며 점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성공 경험이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이 쉽지 않았다. 우연히 높은 토익 점수덕에 영어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아 지금까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부모 상담에 진땀이 줄줄 나던 초보 강사였지만 이내 넉살도, 약간의 거짓말도 장착한 경력직이 되었고 스무 살 때 성당에서 했던 초등부 주일학교의 경험 덕인지 아이들과 지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십오 년, 아이를 낳고 학원에 출근을 하지 못했던 기간이 몇 년 되지만 그래도 십 년 이상의 현장 경험을 가진 강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영어 유치부로 출근을 한다. 오전에만 일 할 수 있어 아직 엄마손이 필요한 내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무리가 없어 시작했다. 사실 유치부는 처음인데 유치원 다니는 둘째와 1학년 아이가 있는 나에게는 유치원의 광경이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라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엄마표로 큰아이가 여섯 살 무렵부터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도 있어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는 않으나 초등부, 중등부와는 또 다른 엄마들의 모습에 당황하는 일이 잦다.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 믿는다.


내가 그동안 지나 온 영어 사교육 현장의 일들을 글로 풀어 보려고 한다. 글을 읽으실 분들께 정보 전달이 될 수도 있고, 재미있는 가십이 될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 찬찬히 예전의 메모들도 읽어보며 좋았던, 싫었던, 기뻤던, 징글징글했던 기억들, 이 여정을 마치면 조금 더 성숙한 강사가 될 수 있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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