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볼만 한 것들
나도 어느덧 아이들을 유치원 졸업시킨 선배맘이 되었다. 선배맘에다가 영어 강사, 영어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다 보니 영어 유치원에 대한 문의, 유치원에 대한 문의가 잦은 편이다. 엄마와 아이의 성향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직답은 피하는 편이다. 아이마다, 유치원마다 다르고 아이가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마음에 드는 데로 고르라는 대답 외에는 사실해 줄 말이 없다. 아이의 엄마가 친한 친구라면 모를까 동네 엄마나 조금 아는 사이라면 대답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입학할 유치원을 고를 무렵이었는데 어학원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영어 유치원도 고려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 집 형편에 영어 유치원은 경제적으로 무리였고 무리하면서까지 영어유치원을 보낼 필요는 없다는 결론으로 일반유치원에 보냈다. 일반유치원 중에서도 산과 들에서 뛰어놀아 흰 바지를 입을 수 없고 운동화가 흙투성이가 되어오는 생태유치원을 선택하여 등원을 시작했는데, 때문에 아이가 어두운 색 옷만 입게 되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흰 바지에 스트라이프 티셔츠로 아들의 댄디한 스타일을 연출해 보고 싶은데 참 아쉽게 되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물었다. 돈 문제가 아니라면 일반유치원? 아니면 영어유치원? 하고, 나는 당연히 영어유치원이라고 대답했다. 영어 때문이 아니고 스물몇 명 되는 한 반의 정원과 많아야 열 명이 넘지 않는 영어 유치원 한 반의 정원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아기 같은 다섯 살 첫째가 받을 돌봄을 생각하면, 네 살까지 때 한 반에 대여섯 명 되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스무 명 넘게 늘어난 교실에서 혼란을 겪을 소심한 아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정원이 적은 영어 유치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정원이 적은 것이 무조건 좋다고만 생각했다.
지금 아이들은 한 반에 스무 명이 넘는 초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다시 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일반 유치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한 번에 정원이 스물몇 명인 곳으로 아이를 내 던지겠다고 말할 것이다. 여러 친구들 틈에서 치여도 보고, 싸워도 보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험을 쌓게 해 주고 학교로 보내겠다고.
지금 내가 출근하는 영어유치원의 정원은 여덟 명이다. 각 한국인 담임과 원어민 담임이 있어 아이들의 학습과 수업을 책임지고 두 반에 한 분 정도 보조 선생님이 계셔서 아이들의 생활, 예를 들면 밥 먹기, 화장실 가기 등의 돌봄을 맡아주신다.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학습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틈이 없이 유치원 생활을 잘하고 있다. 같은 블록을 동시에 갖고 놀고 싶어 하는 일이 생기면 한 친구가 기다리거나 양보하기보다 얼른 다른 블록을 갖다 주신다. 진심은 "괜히 말 나오느니 이게 낫다"는 주의이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적고, 기다리는 일이 있어도 시간이 일반 유치원에 비하면 매우 짧다는 생각이 든다. 학습 면에서도 1대 1 케어가 자주 이루어진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한국인 선생님에게 부족하거나 어려운 부분을 바로 피드백받을 수 있다. 이것이 영어유치원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우리 유치원만의, 나 만의 생각일까.
조금 특별한 이유로 영어유치원에 오는 아이도 있다. 많이 아파서 제대로 기관 생활이 힘든 경우, 면역력이 너무 약하다 보니 정원이 많은 일반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걱정스러워 소수로 운영되는 영어유치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이의 등원 목적은 기관 생활이고, 이런 경우 부모님은 더 밀착 케어가 가능한 영어유치원을 선택하신다. 또 미국에서 생활했던 아이, 이민이나 부모님의 주재원 파견으로 외국 생활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 국제 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이 등 "극성 학구열"뿐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에 온다.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고 준비 중인 학부모라면 집에서도 충분히 영어 환경을 노출해주셔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보낸다고 다가 아니고 집에서 숙제도 봐주고, 영어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때에 따라서는 싫어도, 힘들어도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사실은 유아의 발달 과정에 상당히 어긋나는 일이라 영어 유치원에 나왔다고 모두가 그냥, 자연스럽게 영어를 잘하고,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 주셨으면 한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노력도 많이 들고, 일부 아이들에게 높은 효율로 아웃풋을 낼 수 있지만 일부 아이들에게는 부작용도 나타난 다는 점, 또한 결핍이 결핍인 장점이자 단점인 상황을 잘 극복하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점을 예비 영어 유치원 학부모님께 전달하고 싶은 바이다.
오며 가며 받는 영어 유치원과 일반 유치원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시시콜콜 말하기가 어렵다. 나의 조언이 그 아이의 인생에 어떤 부분에 영향을 끼칠 것이 두려워 그렇다. 무조건 좋고, 무조건 나쁜 것은 없으니 아이의 성향, 부모의 상황을 잘 고려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아이들은 일반유치원을 선택하여 보냈고 선택에 후회하진 않지만 영어유치원을 무조건 나쁘다고, 없어져야 한다고, 법적 제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만 아이의 영어 실력이 월등히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이에게 꽤 많은 학습량을 감당할 수 있는지, 얼마나 지혜롭게 그 학습을 아이에게 시키는지 등등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어 유치원을 다니지 않아도 꾸준한 학습과 노력으로 중고등학교 때는 더 뛰어난 실력과 점수를 받는 친구들도 많으니 영어 유치원 선택이 영어공부, 영어 성적 때문이라면 그 걱정은 잠시 넣어 두셔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