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영어 극과 극

아롱이와 다롱이

by 멋쟁이 한제

지금까지 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이 어디냐고 물어보신다면, 남자아이들 열두 명으로 구성된 초등 1학년 반을 2년 동안 맡아 가르쳤던 일이라고 하겠다.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아이들로 구성되는 기초반에 남자아이들로만 꽉 차게 되었고 그 반을 내가 맡게 되었는데 정원이 꽉 찬 그 반을 2년이나 끌고 갔다. 중간에 그만두는 친구가 없었으니 새로 들어오는 친구도 없었고 그 천둥벌거숭이같은1학년 꼬꼬마들을 3학년까지 키워 다시 레벨을 나누고 시간대와 요일을 바꾸어 반을 찢을 때 아쉬워 속으로 울었던 기억도 있다.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 있던 반이기도 하다.


어학원에 있으면 1학년에 입학하는 3월에 기초반을 등록하여 A, B, C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 정식으로 라는 말의 뜻은 각 알파벳의 음가와 쓰는 법, 첫소리 끝소리 단어들을 배우고 일부 암기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거의 모든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대부분 놀이식이고 아이들은 배웠지만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1학년 친구들은 기초반에서 알파벳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유치원에 비하면 한참 형아 같아도 아직 1학년 아기들이라 연필 잡는 것도 서툴고 한글로 알림장 쓰는 것도 서툴다. 레슨플랜으로 한 달 치 수업과 숙제 계획이 나가긴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쓰는 실력 향상을 위해 알림장에 몇 글자라도 쓰게 하는 편인데 1학년 아이들 중에는 날짜의 숫자를 쓰는 것도 어려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휴, 이런 애기들이 무슨 영어를 배운다고 싶다가도 원어민 선생님 시간에 울던 아이가 점점 적응을 하고,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며 영어 문장을 읽기 시작하고 간단한 문장을 쓰기까지 내 품에서 가르치다 보면 그 보람은 실로 엄청나다. 그동안 아이들과 나 사이에 쌓인 유대관계라든지, 상담을 하며 어머니들과 수다를 떨 수 있을 만큼 친해진다는지 하는 정서적인 친밀함도 커진다. 그러면서 2년, 아이들이 3학년이 되면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기초반에서 알파벳을 시작할 때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리딩책을 또박또박 읽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그렇게 쭈욱 영어 공부를 해 나가면 중등 영어 정도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진다. 진짜 똘똘한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이 되면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성장하기도 하는데 정말 뿌듯한 순간이다.


어학원이라 조금 난감한 경우가 3학년정도 되었을 때 기초반을 문의하는 경우이다. 정규 교육과정에 맞는 지극히 정상적인 경우이지만 어학원의 경우 3학년에 기초반이 개설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아이는 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게 된다. 1학년과 3학년의 학습 능력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에 3학년에 기초반에 들어와도 몇 개월 정도 꾸준히 노력하여 파닉스를 마치면 같은 학년의 친구들이 있는 반으로 레벨업이 가능할 만큼 실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어렵더라도 같은 학년의 친구들이 있는 반으로 옮겨서 추가 학습을 하며 바짝 적응기간을 거치면 얼추 비슷하게 학원 생활을 할 수 있어진다. 아이가 확실한 의지가 있고, 부모님께서도 숙제를 봐주시고 챙겨주시는 등 아낌없이 아이를 격려해 주시면 충분히 가능하다.


더 난감한 경우는 5,6 학년인데 기초반에 문의가 오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학습 결손일때가 많다. 고학년 아이를 1학년 반에서 공부하게 할 수 없으니 4학년 정도 되는 반에 넣어주고 따로 보강으로 진행을 하기도 하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같은 학년 까지는 못 가도 동생들과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도 포기하고 그만두는 친구도 보았다. 학교에서도 영어 수업이 진행되는데 그것에서도 결손이 있는 경우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다른 과목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안타까웠던 일이었다.


드물지만 영어 유치원 출신의 "영포" 초등학생도 있다. 영어 유치원을 착실하게 다니다가 3학년쯤 되어서 영어가 너무 싫어 학원을 그만두었다가 초등 고학년이 되어 다시 학원으로 붙잡혀 오는 경우이다. 아이의 영어에 대한 정서는 매우 부정적이고, 엄마와의 관계도 틀어진 데다 사춘기가 시작되어 아이를 케어하기가 가장 힘든 경우이기도 하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들인 돈과 시간이 얼마인데 얘가 이런다고 답답해하시고, 그 입장 백번 천 번 이해하지만 지금 그 과거에 계속 연연하시면 아이가 더 힘들어지니 아깝고 안타까워도 예전 일은 잊으시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봐주시라고 상담을 드린다. 아이는 자기가 느끼기엔 영어가 쉬운데, 문제를 다 틀리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다. 보고 들은풍월이 있어 다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법 문제나 영작 문제 같은 숙제 하기가 너무 어렵고 단어 스펠링을 외우는 것도 매우 어려워한다. 틀린 영어로 계속 말해도 아이가 스트레스 받을 까봐 적절한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그것이 굳어져 기본적인 문법이나 영작도 어려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아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런 경우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아까워도 답답해도 왕도는 없다. 그저 영어에 대한 부정적 감정, 결여된 자신감을 없애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몇 백 명이 다니는 영어학원은 아이들의 케이스도 다양하다. 대형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무조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안 다니면 영어공부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일화들을 공유하며 학부모님들의 자녀 영어 교육에 대한 고민에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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