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하는 아이요?

없어요.

by 멋쟁이 한제

망아지 같은 아들 둘을 키우며 영어 유치부로 출근을 하다 보니 "신기방기", "신통방통"한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취미 생활 외에는 단 15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아들들을 보다가 40분가량 되는 영어 수업을 앉아서 듣는 유아들을 볼 때 그렇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물론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적응의 동물인 사람의 아이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학습시간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집중도도, 집중 시간도 늘어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신통하기도 한 광경이다.


그렇게 기특한 아이들인데 학부모님들께서는 우리 아이가 영어를 못 한다는 걱정들을 많이 하신다. 한국어도 서툰 다섯 살인데 스피킹에 버퍼링이 걸린다고 유창성을 걱정하시기도 하고, 발음이 좋지 않다고 어떻게 연습시키면 좋을지 문의를 주시기도 한다. 아직 다섯 살이니 한국말도 온전치 않을 때라 걱정하실 것 하나도 없다고 말씀드리지만 그래도 걱정의 끈을 영 놓지 못하실 때가 많다.


아이들이 일곱 살쯤 되면 쓰기, Writing 이 영 션찮다는 걱정을 하시기도 한다. 한글로 한 문단 쓰기도 어려운 아이들인데 영어로 쓰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기특한 일이지만 취학 전에 미국 초등학생 2-3학년 수준의 읽기와 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영어 유치부에서는 흔한 걱정이다. 일단은 원서 동화를 더 많이 읽을 것, 영어 영상이나 소리에 더 노출을 많이 시킬 것을 권유드리지만 이미 아이들은 충분히, 넘치도록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어른들의 걱정으로 더 움츠러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이 된다.


초등부에 가도 그렇다. 자기의 학년보다 높은 미국 초등학생 수준을 목표로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학원 진도와 숙제를 따라가느라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그것을 채워주느라 개인 과외를 두기도 한다. 당장 레벨테스트에서 통과를 못 하면 큰일 날 것처럼 걱정, 걱정, 한 걱정을 하시는 학부님 앞에서 레벨을 낮추어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주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레벨을 낮추게 되면 다른 학원으로 옮기거나, 컴플레인을 크게 거시고 선생님 교체를 요청하시기 때문이다. 정규 교육과정에 비하면 앞서도 너무 앞서는 선행이지만 왜 우리 아이보다 학년이 높은 미국 초등학생을 기준 삼아 아이를 못 한다고 다그치는 것일지, 미안할 때가 많다.


아이의 발달보다 한참 앞서는 학습을 진행하려다 보면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무섭게도 해야 한다. 초등교사로 근무하는 친구가 영어 유치원 출신의 아이들이 첫 1학년 단체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흔하다고 하는 걸 보니, 무리한 학습이 아이의 정상 발달에 지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학습에 중점을 맞춘 아이들은 더 잘하도록 지적을 받고, 혼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학부모와 선생님의 "근심거리"가 되곤 하지만 교실 외의 아이들의 모습은 밝고 예쁘기만 하다. 수업 시간에 영어 문장을 따라 하지 않는다고 지적받은 아이이지만 쉬는 시간에는 그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놀기도 하고, 한 문단 정도 되는 스피치를 외우지 못해 엄마한테 매번 혼이 나고, 선생님과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이지만 흘러나오는 K -pop 노래에 누구보다 예쁜 자태로 춤을 추기도 한다. 놀이를 잘한다, 춤을 잘 춘다고 칭찬을 해 주면 더욱 신이 나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못 한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제 나이를 충분히 벗어나게 잘하는 아이들인데, 설령 또래보다 영어를 조금 못 하면 그건 좀 어때서 말이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래도 문명의 시대에 태어난 행운아라서, 나름 나쁘지 않은 머리로 칭찬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만약에 내가 석기시대나, 스파르타 시대에 태어났다면 칭찬을 받을 일이 있었을까, 혹은 살아남을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작은 몸, 약한 체력으로 엄마에게 한 걱정을 안겨주는 "근심덩이"였을 거라 생각하면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같은 마음으로 영어 유치부에, 영어 학원에 있는 아이들을 본다. 이미 제 몫을 넘치도록 해 내고 있는 아이들인데 왜 이 시대에, 이곳에 있어서 영어를 못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듣고 있을까. 우리 아이가 영어를 못 해서 걱정이라는 학부모님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더 해 주시면 좋을지 먼저 상담을 드린다. 파닉스가 부족한 아이라면 파닉스 연습을, 단어양이 부족하다면 단어학습을, 스피킹에 자신감이 없다면 스피킹 연습을 하도록 먼저 말씀 드린 뒤, 부족한 점을 굳이 찾아보지만 우리 아이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집에 돌아와 망아지 같은 아들 둘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불과 몇 시간 전 학원에서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려보면 그 화가 조금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굳이 부족한 점을 찾지 말고,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수학 문제 푸는 것이 영 마뜩잖은 마음, 삐뚤삐뚤 해 온 영어 숙제를 싹 지우고 다시 쓰게 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든다.


못 하는 아이?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이미 잘하고 있다. 설령 공교육에서 시행하는 진단평가에서 학습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한들, 그 아이가 못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파르타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란 인간은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아이에게 못 한다는 말을 최대한 삼가 보자고 말해보고 싶다. 별로 오래 살은 인생이 아닌데도 인생이 성적순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인생의 재미와, 반전과 기회는 지금, 더욱이나 어린아이들이 하는 공부의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 살아내기 나름이고, 사는대로 살아지는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인생을 살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 부모의, 어른의 몫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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