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Feb 13. 2024

서울 역사박물관

옆에 돈의문 박물관 마을

 큰 아이와 역사책 읽기를 하고 있다. 2 회독을 마치고 엄마가 주최하는 가족 골든벨 대회를 하기도 하였는데 휴일에 낮잠 자다 끌려 나온 아빠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아이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직 옛날이야기 수준이지만 "그럼 몽골이 여진이랑 거란이랑 다 제치고 고려로 온 거야?"라는 기습 질문을 받기도 하고 노국공주가 죽기 않았더라면,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정조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 보기도 한다. 역사가 발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사회로 가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스스로 그 평등의 길을 찾고 있었다고, 천주교를 들여와 공부하기도 했고, 양반을 풍자하는 글이 쓰이기도 했고, 과학과 상업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었으니 지배층이 더 현명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대화가 가능해지기도 하였다. 그런 박해의 와중에도 천주교를 믿었을 거냐는 질문에는 엄마는 모르겠다고, 아이는 어쩌면 믿을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하느님은 내가 더 오래 알았는데, 본능적인 믿음과 확신은 아이가 더 깊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서울 역사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설 연휴를 마무리해 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가장 익숙한 조선의 역사부터 돌아볼 수 있는 곳, 그곳을 메인으로 둘러보고 그 옆에 엄마의 어린 시절이 박제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있으니 겸사겸사 나들이 삼아 돌아보는 것이 계획이었다.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첫째와 둘째에겐 박물관 투어는 그저 나들이일 뿐,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살펴보고 생각을 나누는 일은 아직 지루하고 어렵다. 다행히 미디어 영상 상영관이 잘 되어있어서 그런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아이는 아는 것들이 나오면 반가워한다. 한강 유역을 살피며 삼국시대의 한강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 쓰였던 무기과 전태일 열사를 알아보기도 했다. 사람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던 사람이라고 정확히 기억하는 아이, 한 달에 하루 쉬었다는 그 시절을 나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데 아이에겐 어떤 느낌일까,



조선의 전 후기, 대한 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니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고 전시에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이 등장한다. 나는 80년대생, 나의 시절은 어느덧 박물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말 할아버지가 와야 놀이기구를 체험해 볼 수 있었던 시절을 아이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이런 걸 왜 타고 노느냐는 질문부터, 왜 놀이터가 없는지, 키즈카페가 없는지 일일이 설명해 주기가 힘들었다. 레코드판을 보고면서는 고길동 씨네 집에서 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둘리의 광팬)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조선의 시대상을 보여주러 간 곳인데 어째 엄마의 어린 시절에 더 포커스가 맞추어진다. 나의 학창 시절이었던 90년대는 어느덧 30년 전이 되었고, 그것은 마치 내가 학창 시절 육 남매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신기해하던 그 정도의 시간의 거리가 되어버렸다. 90년대의 30년 전이었던 육 남매, 2024년의 30년 전인 90년대, 내가 그렇게 옛날 사람이 되었나, 내가 태어난 80년대는 내가 느끼는 1950년대의 느낌일까, 그럼 우리 엄마 아빠가 그리워했던 6-70년대는 정말 우리 아이들에겐 내가 일제시제를 느끼는 시간의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찾은 아빠들은 전시되어 무료체험 할 수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와 테트리스에 열광하며 아이들과 추억에 잠기고 엄마들은 종이인형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이 전시된 곳에서는 내가 공부했던 교과서들이 있었는데, 그 시절 함께 칼단발을 하고 볼펜을 굴리며 필기를 했던 마흔다섯 명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나갔다 했다.


엄마아빠의 어린 시절도 돌아보며 간단히 역사를 맛보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지루하고 학습적이지 않고 체험 공간이 잘 되어있으니 어린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조금 큰 아이들이라면 전시된 것들의 설명을 들으며 좀 더 깊은 역사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역사 과목을 좋아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아이랑 그림책을 읽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 즐겁다. 승부욕 있는 아이는 퀴즈 맞추기를 즐기고, 남자아이라 그런 이순신의 23전 23승의 임진왜란 이야기도 즐겨 읽는다. 수급을 베었다는데 나는 어릴 때 그 의미를 알았을때 놀라 자빠질뻔 했는데 이 아이는 의외로 담담하다. 아직 모르나. 여하튼 아이와 함께 다시 배우고 자라는 것 같은 기분도 좋다.



겨울 방학을 보내는 가장 큰 프로젝트가 역사 그림책 읽기였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아이는 한국사에 흥미를 가졌고, 엄마는 뭐라도 조금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우리가 나눌 대화가 조금 더 생긴 것, 그것이 가장 좋다 할까,


아니면 끝이 보이는 방학이 좋은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