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하루종일 있어본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불도 빨고, 베란다도 치우고 다 하려고 했는데 몸은 그냥 늘어지고 시간도 많으니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매우 인간적으로다가.
처음 일하러 나가는 날을 빼고는 아이는 일 하는 엄마를 잘 받아들여주었다. 등하굣길이 혼자라는 것, 갑자기 비가 와도 엄마가 데리러 올 수 없으니 작은 우산을 신발주머니에 넣어주며 비상용으로 쓰라는 말에도 그냥 고개만 끄덕이던 아이였다. 퇴근을 하고 후다닥 들어오면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어두컴컴한 집에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어 내가 불을 켜주곤 했다. 엄마가 없어도 무섭지 않았다고, 배고프면 과자를 뜯어먹어도 된다고 했는데도 깜빡했다며 간식도 안 먹은 채로 저녁시간까지 보내던 아이.
그러다가 엄마가 집에 있게 된 상황도 잘 받아들여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엄마~ 하고 들어오고 나를 보고는 배가 고프다고 간식을 내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뭐 먹고 싶어? 아까 엄마가 만들어 준 햄버거. 아침에 소고기 다짐육으로 패티를 빚어 모닝빵에 미니 버거를 해 주었는데 그것이 맛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보자마자 배고프다는 녀석이 그동안은 있는 과자도 안 뜯어먹고 어떻게 기다렸나 모르겠다. 미니 버거 하나를 낼름 먹어치운다.
그리고는 데면데면하게 오후 시간을 보낸다. 아기가 있어 내 일상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제 우리는 서로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만큼 자랐다. 내가 반찬을 하나 만들고, 컴퓨터를 쓰는 동안 아이는 종이접기를 하고 숙제를 한다. 조금 있다가 동생 누가 데리러 나갈까? 하는 말에 내가 나가서 데리고 올게,라고 대답하는 조금은 듬직해진 첫째를 본다.